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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은 Nov 07. 2019

공무원의 아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10

드디어 공무원이 되다-이제는 실전이다

남편은 마침내 9급 공무원이 되었다.

나도 말 그대로 공무원의 아내가 되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공무원분들에게 투덜거린 일들이 많았는데 남편이 공무원이 되다니....

나는 나도 모르게 숙연해져 버렸다. 사람일이라는 게 어찌 될지 모르는 건데 입바른 소리를 하며 살았구나 싶었다.

남편은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들로 근무 신청을 냈고 우리는 근무지 발표 마지막 날 배정을 받았다. 집에서 전철로 세정거장만 가면 되는 곳이라 너무 좋았다.

몇 년간 신새벽에 ktx를 타러 나가던 때가 생각났다. 특히 겨울에는 정말 밤처럼 깜깜한 새벽이었다.

창문으로 추위 속에  걸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 내 몸까지 한기가 스며드는 것 같아 몸오그라들었다.

태양보다도 더 빨리 하루를 시작하는 남편에게 들리지도 않지만

' 고생도 끝은 있을 거야'하고 속으로 얘기해주곤  했는데 정말 생각지도 못 한 방향으로 우리는 끝을 맺은 것이다. 

동이 터오기 전이 가장 칠흑 같다고 한다. 앞이 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저 멀리 서는 이미 미명이 싹트고 있음을 살면서 잊지 않으리라. 그것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출근날 우리는 마치 대학시절 첫 미팅을 나가는 것 같은 새로운 설렘을 느꼈다. 무엇을 입을지 옷도 별로 없는 장롱을 휘저었다. 나는 늦깎이 공무원인 남편이 조금이라도 젊어 보여야 될 텐데 걱정이 됐다. 남편은 조금 긴장돼 보이기도 하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출근을 했다. 

첫날은  생각보다 일찍 퇴근했다.

어땠냐고 물어봤다.

나이가 많은 신입이 들어오니 조금 술렁술렁했나 보다.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는 탄식이 나왔으리라. 선남선녀인 젊은 공무원들은 얼짱 또는 훈남의 싱그러운 신입을 기대했을 것 아닌가? 남편은 본인도 이만하면 중년 얼짱이라고 말도 안 되는 반박을 하겠지만...

예전 단체 미팅 나갔을 때 아닌 밤중에  복학생이라고 복학생 군단이 떼로 나와서 주선자 친구가 일 년간 욕을 바가지로 먹었는데 남편의 등장은 젊은 공무원들에게 그런 일일 듯했다. 구청장님께 하소연할 수도 없고 속수무책일 그들에게 내가 대신 사과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일엔 내일의 해가 뜨듯이 내년을 기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남편이 가져온 인사발령통지서

여러 가지 개인정보가 있는 관계로 요 부분만 찍었습니다. ^^;;


다음날부터 6시 30분 정도쯤 남편은 퇴근하여 집으로 왔다.

우리는 이렇게 빨리 만나도 되는 거냐며 놀랐다.

와 공무원이 되니 정말 칼퇴근도 하고 이런 세상도 있구나 하며 이게 진정한 저녁이 있는 삶이라고 좋아했다.

그러나..

우리의 순진하기만 했던 그 기쁨이란 놈공무원이 되고 받은 월급과 함께 먹튀를 해버렸다.

남편의 첫 급여는 우리에게 왜 공무원을 박봉의 직업이라고 하는지 정신을  번쩍 차릴 수 있게 얼차려를 주었다. 봉급으로 네 식구가 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나는 일을 늘려야 했다. 그래도 여전히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미 남편 실직 이후 줄여야 할 것은 거의 다 줄였지만 나는 더 줄 일 것이 없나 살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드는 비용까지 줄일 수는 없었다. 아이들은 학원 대신 학교에서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방과 후 수업을 들었는데 그것마저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부터 정말 실전이었다. 공무원은 합격하기도 만만치 않지만 살아내기도 그다지 쉽지 않은 세 글자였다.

나 쉬운 여자 아니야 하는 대사처럼

공무원이라는 세 글자가 새침하게 나를 보며 말하는 것 같았다.



'나 쉬운 직업 아니야~!'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구독자님들 감사드립니다. 끝까지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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