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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은 Nov 04. 2019

공무원의 아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8

우리 상처는 받지 말자... 그건 너무 아프니까

필기시험이 끝난 후 남편은 그동안의 피곤을 풀려는 듯 잠을 무척 많이 잤다.  먹고 자고를 반복하는 신생아처럼 거의 일주일을 그렇게 보냈다.

신생아 시기가 지나고 나니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찾기 시작했다. 워낙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도서관에서 책을 왕창 빌려와 읽기 시작했다.

발육이 무척 빠른 셈이다.^^

평화로웠다. 우리는 합격 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이렇게 보내자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생이던 딸아이가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친구들이랑 오늘부터 장기자랑 연습해야 돼!! 우리 집에서 할 거야! 친구들 데리고 가도 되지?"

" 니들은 무슨 일 년 내내 장기자랑 연습이니?~~ 알았어 친구들이랑 와~~"

시어머니의 DNA를 오롯이 물려받은 딸은 중2 군단들도 껄끄러워한다는 초딩군단의 군단장급이었다.

꽃샘추위 매섭던 3월부터 시작된 장기자랑 준비는 여름방학을 며칠 앞두고도 계속되었다. 장기자랑으로는 아마 국내 최장기 프로젝트일 것이다. 

문제는 도대체 이 놈의 장기자랑은  날짜가 언제인지 아무모른다는 것이다. 아마 아무리 용한 점쟁이를 데려와도 맞추지 못할 거다.

엘리베이터에서 땡 소리가 나더니  까르르르 하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귀청에 울렸다. "엄마~"하며  현관을 여는 딸아이 뒤에 고만고만한 딸 친구들이 거의 동시 합창으로 "아줌마 안녕하세요~!"를 외쳤다. 귀여웠다.

소파에서 책을 읽던 남편이 깜짝 놀랐다. 이내 아이들을 보고 귀여운지 웃었다. 한 친구가

"어! 너희 아빠 집에 계시네!" 하더니 "안녕하세요! 와 근데 아저씨 잘 생겼다"했다.

딸과 친구들은 집이 떠나가게 까르르르 웃어댔다. 나는 같이 웃어야 될지 어째야 될지 몰랐는데 남편은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민망한 일이었다.

그렇게 딸 친구들은 거의 매일 우리 집에 왔고 나는 몇몇 아이들과 긴 얘기도 나눌 정도로 친해졌다.



그러던 중 한날  잠깐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엘리베이터에서 이웃 아줌마를 만났다.

가볍게 눈인사만 나누는 사이인데 처음으로 그 아줌마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아니... 저.... 내가 궁금해서 그러는데 거기 아저씨 말이에요. 요새 낮에도 자주 보이시던데... 집에 계시나 봐요?  그죠?.."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자기의 예측이 맞다는 것을 어서 확인하고 싶어 하는 그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마디로 나는 상처를 받은 것 같다.

"아... 네... 명퇴했어요.... 그래서 지금 집에서 좀 쉬는 중이에요...."

아줌마는 퀴즈 정답을 맞힌 듯 눈가는 웃고 있었지만 내게 "아~그렇구나~뭐 더 잘 되실 거예요. 너무 걱정 마세요"했다. 나는 "고맙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순식간에 갑자기  딸이 생각났다. 혹시라도 집에 있는 아빠를 보고 친구들이 상처 주는 말을 하지나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현관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딸방으로 들어갔다

딸에게 "혹시 친구들이 아빠 집에서 노냐고 놀리거나 묻거나 하지 않았어? 너 엄마한테 거짓말하면 안 돼!"하고 물어보았다. 아이는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엄마의 질문에 한참 눈을 깜박거리더니

"엄마! 내 먼저 친구들한테 말했어. 아빠 회사 그만뒀다고. 시험공부한다고.  걱정하지 마. 내 친구들 그런 거 신경 안 써~"딸은 말했다. 휴~하고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다 문득 딸의 방에서 레고 블록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 완성시킨 후에 다시 분해하고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쌓을 수 있는 레고..

레고는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약속하는 장난감이다. 오늘 비록 맘에 들지 않게 쌓았더라도  뭐 어떤가? 내일 다시 쌓으면 되는 것을..

어쩌면 우리 가족들은 레고처럼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쌓여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우리 상처는 받지 말자. 그건... 그건 너무 아프니까.....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딸

레고를 좋아해서  아직도 가끔 블록을 사 오곤 한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났다. 필기시험 발표일이 다가왔다. 마음 졸이며 켠 컴퓨터 앞에서 남편과 나는 생명줄 같은 수험번호를 찾았다.

"요기 있네~"

역시 침착한 남편. 반대로 나는 2002 월드컵이 울고 갈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필기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나와 남편은 두 손을 꽉 잡았다. 표현 불가능한 기쁨이었다.


그날 저녁 정말로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외식을 했다. 딸이 좋아하는 돼지갈비를 먹었다. 달콤한 갈비의 맛이 가족들의 그간의 노고와 상처와 아픈 기억들을 치료해주는 것 같았다.


장기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정말 기쁜 밤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구독해주시는 분들의 기대에 못 미칠까 봐 걱정입니다. 부족하지만 읽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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