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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은 Nov 02. 2019

공무원의 아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6

당신의 종교는 무엇입니까?

남편이 실직한 지 두 달 즈음되자 놀라서 버둥거렸던 일상들이 슬슬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이 사실을 아직 모르고 계시는 양가 부모님들께 알릴 때가 되었구나 싶었다. 설 명절이 지나고 그다음 주에 시댁을 찾아뵙고  말씀을 드렸다.

당신 아들이라면 하늘에서 구름 타고 내려온 존재 이상으로 생각하시던  시어머니께서는 얼굴이 사색이 되셨다. 참고로 어머니는 호랑이도 울고 갈  여장부 스타일이시다. 

"아니 어떤 눔들이 내 아들을 나가라 했다더냐? 우리 천사 같은 아들을!

그놈들 번호 대라! 이놈들 가만히 못 있지 내가!!"

어머니는 당장이라도 회사로 찾아가실 기세셨지만 이내 풀이 죽으셔서

"내가 통~요새 절에 불공드리는 걸  못했어.... 다 내 정성이 부족했지... 

에미 네가 힘들더라도 애 밥 좀 잘 챙겨 먹여라. 힘들수록 사람이 밥을 든든히 먹어야 되는 법이다" 하셨다.

"어머니! 그건 걱정 마세요! 제가 요새 얼마나 잘해 먹이는지 모르실걸요?"

나는 쌩긋 웃으며 어머니를 쳐다봤다. 어머니는 예상치 못한 내 미소를 보시고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이내 웃으시며

"아이구~~ 이 철부지야~"하고 어깨를 두드려주셨다.  

국적불명이었던 감자탕과 돼지등뼈 문득 떠올랐지만 빛의 속도로 지워버렸다. 

친정집에 말씀을 안 드릴 수는 없었다. 친정엄마는 사위도 걱정이었지만 아무래도 막내딸인 내가 더 걱정이 되셨는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셨다. 그러시고는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게 더 있겠나"하셨다. 우리 친정은 대대로 기독교 집안이다. 유일하게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은 나뿐이다.

종교가 남편 집안과 달라 사실 결혼도 못할뻔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 닥치니 왠지 다행이다 싶었다.

부처님 예수님 다 도와주실 것 아닌가? 시어머니의 공식 종교는 불교지만 점집도 잘 다니시기 때문에  단골 점집 산신령님도 추가 멤버다. 

마음이 든든했다. 뭐가 걱정인가?

엄마가 챙겨주신 성경책과 시어머니가 주신 염주

부처님 예수님 꼭 합격시켜주세요~ 


시댁에서 집으로 가려하는데 시어머니는 주머니에서 꼬깃한 돈을 꺼내 나에게 쥐어주셨다. 고기를 먹어야 기운이 나니까 고기를 자주 먹이라고 하셨다.

친정엄마는 남편이 좋아하는 생선을 자주 사주셨다. 내가 생선을 잘 먹지 않아서 평소 생선은 안 챙기시더니 사위 생각에 각종 생선을 집으로 보내주셨다.

그럴 때마다 한겨울 길가 노점에서 어묵 국물을 마신 거처럼 마음 한구석이 뜨끈해졌다.

어묵 국물에서 가끔 후추 맛이 느껴질 때처럼 알싸하게 찡했다.




친정아버지와 시어머니는 고인이 되셨다.

가끔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코스모스 꽃을 보거나 시어머니가 즐겨 드시던 순댓국을 먹을 때면 나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뜨게 된다. 그러면 두 분의 얼굴이, 웃고 있는 얼굴이 희미하게 보인다. 이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나만의 비법이다.

살면서 백척간두에 서있는 것 같을 때  너무 힘이 들 때 나는 눈을 가늘게 떠본다. 그때마다 보이는 부모님들의 얼굴에 나는  힘을 냈고 위로를 받았고 마침내 평화를 얻곤 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의 종교는 무엇입니까?'하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의 종교는 부모님입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부족한 제 글에 많은 성원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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