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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은 Nov 01. 2019

공무원의 아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5

엉덩이가 머리를 이기는 시간-- 남편의 공부법

아침 8시부터 시작하는 남편의 공부는 밤 11시 귀가로 마무리가 지어졌다.

점심을 먹고 나서 30분 정도 낮잠을 자고 30분 정도 핸드폰을 했다.

저녁을 먹고 나면 1시간 정도 티브이를 보고 다시 독서실로 갔다.

그 시간을 빼고 나면 나머지 시간은 오롯이 독서실에 있었다.

단 토요일은 저녁을 먹고 나서  독서실에 가지 않았다.토요일은 우리 부부가 항상 맥주를 마시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일주일 공부의 피로를 그것으로 푸는 것 같았다.

남편은 항상 밤에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나와 함께(여기까지 쓰고 보니 왠지 19금 ^^;)

'우리말 나들이'를 했다.

그 날 공부한 국어 내용 중 맞는 말 틀린 말을 내게 고르게 했다.

쉬운 예를 들면 풍지박산이 맞아, 풍비박산이 맞아? 이런 식으로 열개 정도씩 물어봤다.

학창 시절부터 찍는 것은 작두타기 일보직전의 능력자였던 나는 곧잘 맞췄다.

그러면 항상 남편이 하는 말

"와 잘한다! 너도 공무원 시험 봐라! 더 늦기 전에 한번 도전해~"했다.

나는  "아이고 그냥 찍은 거야~나 찍는 거 도사야~~"했다.

하지만  속마음은 이랬다.

'내가 공부하면 삼시 세 끼는 누가 차려......'




어느 토요일 저녁에 남편과 맥주를 마시며 나는 도대체 공부가 잘 되냐고 물어봤다.

공부라는 것도 관성의 법칙인데 벌써 학교를 졸업한 지가 꽤 되었고 책과 담쌓은 일상이 너무 길어졌기 때문에 나는 그게 걱정이 된다 했다. 시중에 나와있는 합격자들의 공부법이나 성공담을 보는 것은 어떠냐고 권하기도 했다.

남편은 자신의 공부 철학과 공부법을 이야기해줬다.

"사람 생긴 게 모두 다른 거처럼 공부법도 사람마다 다 다른 거야. 하지만 원칙은 있겠지. 그건 자기만의 방법으로 절박하게 하는 것!"

그리고 한 가지 국어, 영어, 한국사 중에 자신 있는 과목이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전문용어로 먹고 들어가는 과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은 영어가 먹고 들어가는 과목이었다.

한국사는 최태성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다고 했다. 근본이 있는 강의라고 했다.

최태성 선생님이 강의 중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라고 한 말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살짝 글썽거리는 거 같았다.

'이 남자 벌써 갱년기 왔나?' 싶어 걱정이 됐다. 

행정법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나는 뭐라 위로해줄 말이 없어 "당신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인데 법을 공부하려니 얼마나 힘들겠어" 하는 뚱딴지같은 말을 했다.

내 말을 들은 건지 만 건지 남편은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먼저 무조건 인강을 무한 반복한다고 했다.  나중에 들으니 영어를 제외하고 전과목을  배속을 늘려가며 7회 이상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안 외워지는 부분은 무자비한 깜지 쓰기를 한다고 했다. 나중에 공부한 깜지들을 보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것은 정말 종이에 표현한 가장의 절실함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어떤 예술작품보다도 더 대단한 것이었다.


끝없이 쏟아져 나온 남편의 깜지들.. 나는 이 종이들을 끝내 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결국 탈이 나버렸다. 남편의 어깨가 고장이 난 것이다.

한 날 밥을 먹고 나서 남편의 표정이 좋지가 않았다. 나는 왜 그러냐고 물었다.

"어깨가... 어깨가 조금.. 안 좋아...."

남편의 어깨에 약간의 마비증세가 온 것이다.

깜지로 인한 과도한 필기가 부른 병이었다.

왼손으로 밥을 먹고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는 사람이라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나는 당장 병원이나 한의원에 가라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나에게 그냥 찜질만 해달라고 했다. 우리는 실직 이후 처음으로 언성을 높여가며 싸웠다.

하지만 내가 졌다. 나는 밤마다 어깨를 찜질해주고 파스를 붙여주었다.

다행히 증세는 나아졌지만 시험공부가 끝날 때까지 나는 혹시 또 탈이 날까 노심초사하였다.


우리는 '가장의 어깨가 무겁다'라는 말을 쉽게 듣고, 쉽게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남편의 어깨를 찜질하고 벌겋게 달아오른 맨살에 파스를 붙여주며 그 무게를 가슴속으로 절절히 느꼈다.



그러므로 모든 가장들은 위대하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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