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영은 Oct 31. 2019

공무원의 아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3

무소의 뿔처럼 삼시세끼 차리기-감자탕과의 한판 승부

드디어 남편의 공무원 시험 준비가 시작되었다.

남편은 마치 무림고수가 되기 위해 소림사로 떠나는 사람처럼 미용실에서 머리도 짧게 깎고 왔다.

소림사가 아니라 노량진으로 떠나려나보다 했는데 남편은 길에서 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고 무엇보다 집밥을 먹어야 되므로 아파트 독서실에서 인강으로 공부하겠다 했다.

나로서는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는 것만큼 청천의 벽력 같은 말이었다.

집밥을 먹겠다는 것은 삼시세끼를 매일 차려야 한다는 말.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바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한석봉 어머니처럼 너는 시험공부해라 나는 떡국을 끓이마 하고 생각했다.

힘든 공부를  각오한 남편 앞에서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침 일곱 시가 되면 아침식사를 했다.

그러고 나서 남편은 독서실로 향했다.

그 뒤 정확히 12시에 집에 돌아오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점심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남편은 대낮의 신데렐라가 되었다.

나는 낮 12시 땡 하면 들어오는 남편에게 "공주님~ 다녀오셨어요~~"했다.

평소 웃음이 많은 남편이 그동안 웃지를 않았는데 그 말에는 꼭 웃었다.

가끔씩 일이 분 정도 늦으면 "호박마차 연착됐다~"하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힘든 시기에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었다.

웃는 능력을 가진 인간은 축복받은 존재다.


워낙 나는 음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당시 요리실력은 수능으로 얘기하자면 5등급 이하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왜 집밥을 먹겠다고 했는지 그 부분이 의문이다. 나만 고생할 순 없다 뭐 이건가? 하는 음모론만 혼자서 모락모락 피워댔다. 

하지만 공부하는 남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갸륵한 생각에 내가 더 놀라곤 했다.

집에 있는 먼지 캐캐 묵은 요리책들과 인터넷 레시피들을 찾아가며 나는 평생 안 하던 일을 시작했다.

'청기 올려, 백기 올려'도 아니고 매번 '김치찌개 올려, 된장찌개 올려' 밥상도 미안했다. 나는 무언가 남편을 위해 생각지 못한 요리를 내놓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남편이 좋아하는 감자탕이었다.




감자탕을 끓이려고  돼지등뼈를 사 와서는 한참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돼지등뼈들은 나를 얕잡아보는 것 같았다.

나는 인터넷 레시피에 나온 대로 최선을 다해보았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감자탕 속 등뼈는 식당에서 먹을 때처럼 부드럽지가 않았다.

애를 써서 끓일 대로 끓였지만 돼지등뼈들은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

남편의 식사시간은 다가오고 등뼈들은 미동도 안 하고 나는 식은땀을 삐질거렸다.

돼지등뼈에 신경 쓰는 동안 국물 맛은 산으로 가고 있었다.

결국 국적불명 신원미상의 감자탕을 끓여 올렸다.


돼지등뼈와 한판 승부를 벌였던 냄비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여러 가지 요리들을 해나갔다.

남편은 그런 내 모습에 놀라고 맛에 또 놀라는 것 같았다.

삼시세끼라는 책임을 성실하게 그리고 한결같이 해 냈던 나를 칭찬한다.




나의  요리실력은  몇 등급이 되었을까?

남편에게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