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영은 Nov 03. 2019

공무원의 아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7

결전의 날이 밝았다

드디어 시험이 바로 다음날로 다가왔다.

남편은 독서실에서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들어왔다. 조금은 긴장돼 보이는 얼굴을 하고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평소 말이 많은  나조차도  묵언수행 중이었다.

'만약 내일 시험을 잘 못 보면... 앞으로 어떡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은 기하급수적으로 자가증식을 하고 임계점에 이르면 사람을 꼴까닥 넘어뜨린다. 그 꼴까닥 일보직전에 '그래, 이래서는 안 되지' 하고  나는 남편 옆에 앉았다.

"많이 긴장돼?"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한참 대답을 안 하더니

"일찍 자자"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내일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근엄한 표정으로 오늘은 떠들지 말고 일찍 자라고 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싸운 거로 생각하는듯했다.

침대에 누웠지만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베개만 닿으면 삼초 안에 잠드는 취침 인의 경지인 내가 그날은 정말 초롱초롱했다.

나의 취침달인 라이벌인 남편도 뒤척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 자는 척을 했다. 

실직 이후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갑자기 눈에 눈물이 맺혔다. 심지어 콧물까지 나오는 것 같았다.

자는 척은 해야 되는데 곤란했다. 남편의 반대편으로 등을 돌렸다. 이미 남편도 내 반대편으로 등을 돌리고 누운 상태였다.


아침이 밝았다. 새벽녘에 잠깐 눈을 붙이긴 한 것 같다.

전날 이미 끓여놓은 남편이 좋아하는 소고기 뭇국을 최대한 센 불을 켜고 끓였다. 가스불이 힘차 보였다.

그 힘찬 기운이 남편의 기를 살려주었으면 했다.

항상 그렇듯 차분하게 준비를 마친 남편은 가방을 메고 나를 보며 "갔다 온다"하며 씩 웃었다.

나 역시 씩 웃으며  "갔다 와"하며 배웅을 했다.

그냥 예전에 가방 메고 출근할 때 보이는 서로의 모습이었지만 오늘은 그 가방 안에 수험표가 들어있다.

남편은 그렇게 현관문을 열고 출발했다.

시험날 메고 갔던 남편의 오래된 가방  

수험표는 아직도 내가 보관하고 있다.


남편이 나간 후 잠깐 소파에 누웠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 보다. 얼마나 흘렀을까 귓가에

"물 떠놓고 빌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자고 있네 자고 있어" 이런 소리가 들렸다.

나는 꿈을 꾸는 줄 알았다.

눈을 게슴츠떠보 눈앞에 웃고 있는 남편 얼굴이 악 보였다. 시험을 마치고 벌써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기가 막히게도 까무룩 자고 있었던 것이다.


길고 힘들었던 남편의 시험공부가 그렇게 끝이 났다.

예전 티브이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트의 승려들을 본 적이 있다. 진정한 해탈을 위해 자신을 고통으로 내던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전율을 느꼈다.

오체투지까지는 아니지만 남편은 정말 시험공부에 온몸을 던졌다. 하루를 이틀처럼 쓰려 자기와 타협하지 않았다.

게슴츠레 뜬 눈으로 남편을 보며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이미 합격이야!'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글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부족하지만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이전 06화 공무원의 아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