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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비 Oct 25. 2018

2. 내가 무언가를 결정할수 있는 사람이었다.

스타트업 적응기

팀에 합류해보니 할일이 참 많았다. 우선 오래 개선되지 못한 상태로 1.0버전의 프로덕트가 방치된 상황이었고, 여러모로 브랜딩도 다시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합류하자마자 리브랜딩을 하며, 2.0 버전 릴리즈를 준비했다. 


전면 개선이다보니 아무래도 꽤 큰 프로젝트였다. 당시 일하던 방식은 큰 방향은 경영진으로부터 전달받았고, 뷰 혹은 기능 단위로 프로젝트를 쪼개서 스프린트가 진행됐다. 나는 그 안에서 세부 기획과 UX 디자인을 담당했다. 겉에서 보기보다는 복잡도가 좀 있었고, 2.0고 함께 개선되는 기능들이 있었기 때문에, 목표로 한 기간이 좀 넘쳐서 거의 9개월 정도의 시간동안 개편작업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그런데 2.0 런칭을 눈앞에 둔 시점에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상황을 다시 설명하자면, 서비스의 특성상 유저들은 굉장히 충성도가 높은 편이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한 작은 시도를 몇 가지 해보았을때 그 반응도 꽤 긍정적인 편이었다. 하여 회사에서는 유저들로부터 결제 정보를 미리 확보하고자 카드정보를 입력 한 유저들만 콘서트 요청을 할 수 있도록 개발되어 있었다. (왜 결제정보를 확보하려고 했는지는 너무 길어져서 패스) 그러나 릴리즈를 앞두자 유저대상으로 지나치게 허들을 높이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불거져 나왔다. 하여... 릴리즈를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에 해당 기능을 가져갈지 포기할지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 내가 참여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 때 2.0 릴리즈 일정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꾸만 늘어지는 일정에 초조했고, 시간을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기능이 리스크가 크고, 문제가 있다며 회의에 초대된 것이었다. 당시의 내 마음은 이랬다.


" 이 기능을 도입하고 싶어햇던것은 경영진이 아니었나? 왜 갑자기 나의 의견이 중요해졌지? 정해진 방향대로 진행을 한 것 뿐인데 그간 아무 말이 없다가 출시에 임박한 상황에 왜 이게 문제가 되는 거지? 이런 것이 싫어서 대기업으로부터 나온게 아닌가?  "


솔직히 말하면 왜 이걸 나한테 물어보지 싶었다. 어쨌든 결정을 해야만 했고, 나는 그동안 회사가 가진 가설이 있었으니 (가설 : 아티스트의 극성 팬들은 공연을 현실화 시키기 위해서는 시간과 금전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을것이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기능을 포함해서 출시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꼭 나의 주장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회사는 그대로 그 기능을 출시했고, 결과는 처참했다.  


‘사기꾼들이다’ 가 가장 많이 들은 피드백이었다. 또한 kpop의 열광적인 팬들의 적지 않은 수가 10대들이었는데, 미성년자들은 신용카드가 없었고, 성인이라 하더라도 신용카드 자체가 활성화되지 않은 국가도 많았다. 


실패해서 위 내용을 알았으니 러닝이 있었다고 해야할까? 그렇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꼭 그렇게 비싸게 러닝을 할 필요는 없었다. 일단 우리 유저들의 나이대와 분포 지역, 전세계적으로 신용카드 사용도에 대한것은 간단한 리서치로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잃은 것은? 출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기능 삭제를 결정하고, 유저 플로우를 재정비하고 릴리즈를 하는데 두세달이걸렸다. 스타트업에게 두세달은 적지 않은 시간인데 그것을 허비해 버린 것이다. 그 사이 실망해버린 유저들과 떨어져버린 평판은 정량적으로 계산할 순 없지만 역시 큰 손실이었다. 사기꾼으로 욕먹으며 받은 내 마음의 상처는 덤이었다.  


또 한가지의 후회되는 점은 내가 결정을 하기 싫어서 피했다는 점이다. 내가 했던 주장은 정말 그 기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실제로는 결정을 피한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기능 개발 시점부터 완벽히 그 기능을 믿고 진행한 것이 아니었고 해야해서 했는데, 그게 그때까지 내가 일했던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 기능이 내 손에서 개발되어 나가는 순간 나에게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는데 그걸 그때는 몰랐다. 말로는 스타트업에서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일을 하고 싶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결정은 하지 않고 하던대로 일했을 뿐이었다. 



슬픈건 슬픈거고... 어쨌든 이 단계에서 몇가지 느낀점이 있었다.


스타트업 초기 멤버에게 회사는 남의 회사가 아니다. 
회사의 결정이 잘못되었을때 나에게도 타격이 온다. 회사의 잃어버린 시간은 곧 나의 잃어버린 시간이고, 그만큼 더 좋은 프로덕트를 만들 기회가 미뤄지는 것이다. 이 회사가 내 브랜드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좋은 프로덕트를 만들어야한다. 내 영역은 내가 확보하고 내가 결정하자.

유저를 알아둬라. 
유저에 대한 추상적인 이미지로 접근하지 말고, 누구인지 어디사는지 몇살인지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아무도 원하지 않는 기능을 만들지 않을수 있다.   

직접 만든사람(실무자)에게 이게 필요한 것인지 웬만하면 묻지 말자.
누구도 노력을 해서 만들어 둔 것을 스스로 엎어버리고 싶어하진 않는다. 회사도 만드느라 자원이 들어가긴 했지만, 실제로 구현한 사람(디자이너나 개발자들)은 자기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일이라서 더 그것을 버리기가 어렵다. 원래 사람은 자기것을 더 가치있게 판단한다는 경제심리학 실험도 있다!      




이 사건 이후, 회사에서의 내 태도는 좀 더 적극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회사가 그래도 나를 배려햐여 최대한 바람막이 해주고 있어서 잘 몰랐는데, 구멍이 뚤려서 한줄기 바람이 스쳐갔다 해야할까 ㅎㅎㅎ 아무튼 그때의 기분은 이런것이었다. 


아... 이게 그냥 하면 안되는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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