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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야 Oct 23. 2021

다정한 사람

"언니, 요즘 사람들 너무 이기적이고 못됐어."


내 눈에 그저 아기 같기만 한 동생이 취업하고 나서 내뱉기 시작한 말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를 한 동생이었고 누구보다 사람을 좋아하던 동생인지라 나는 그 말에 놀란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동생을 그랬다.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아이, 게으름 피우지 않는 아이, 무뚝뚝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여린 아이. 


사실, 취업이 됬다고 했을 때부터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 동생인지라 그 일이 얼마나 고될지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20대 초반부터 해온 일들이 모두 서비스 관련 쪽이었다. 처음에는 꽤나 성취감도 있고 뿌듯함도 있다. 친절을 베푼 만큼 같이 응해주는 사람들을 볼 때 '아, 이 일을 시작하길 잘했어.'라는 생각도 했으니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좋아해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시작하면서도 대부분이 사람에게 질려 일을 그만둬버리는 게 부지기수였다. 나 역시 다를 바가 없었다.

진상 한 명이 주는 상처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는 다정함보다 깊었다.

그 상처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나중에는 많은 부분에서 시니컬해진다. 혹여 동생도 나처럼 될까 걱정이 되었다. 


"언니, 나는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으려고 하며 살았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다정하려고 노력했어!

그런데 남들은 왜 그렇게 이기적이고 못됐는지 모르겠어. 나는 일을 하는 사람일 뿐인데, 그 사람들은 내게 그렇게 무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정말 모르겠어. 사람 자체가 지긋지긋해지려고 해."


힘이 없는 목소리 사이로 날카롭게 들려오는 말이었다.

뭐라고 답해줘야 할까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참을 생각했지만 도무지 떠오르질 않았다.

온몸으로 겪어본 나였으면서도 선뜻 너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가 없었다.

내 경험만으로 어줍짢게 너의 상처를 위로할 수가 없었다.

섣부른 위로는 더 큰 상처가 될지도 모르기에.

그래도 언니라면 너에게 뭐라도 위로의 말을 건내야 하는데.... 뭐라도 힘이 되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는 내가 속상한 걸 아는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가는 동생의 말에 가슴이 저릿했다.


얼마 전에 이런 일도 있었다고 했다.

햄버거를 포장해서 온 날이었는데, 막상 집에 와서 보니 감자튀김과 케첩이 빠져 있었다는 것.

이건 부당한 거 아니냐며 전화해서 따져야 되는 거 아니냐며 남편에게 말했더니, 남편이 "전화해서 따진다고 쳐. 빠진걸 다시 준다고 해도 어차피 매장에 가서 다시 가져와야 되고, 귀찮잖아. 그냥 먹자, 별거 아닌데 뭘 그래."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너는 거기서 더 큰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 했다. 

"남들이었으면 난리가 나도 났을 거야! 우리만 착하게 산다니까 우리만!" 동생은 많이 억울했는지 울분을 토했다.


일하면서 사람에게 많이도 데인 듯, 까칠해져 있는 동생의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어쩌겠냐며 나중에 다 너한테 좋은 것들로 돌아올 거라는 흔한 말로 동생을 달랬다.

제대로 된 위로의 말 한마디도 건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언니한테 말이라도 하고 나니 후련하다."라고 말하는 조금은 밝아진 네 목소리에 안심이 되었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네가 괜찮다면 나 역시 좋았으니까...


"또 전화할게 언니!"

"그래 너무 속상해 말고, 잘 지내고, 자주 전화해"


.

.

.

.


<동생에게 해주고 싶었던 나의 이야기>


아기 같기만 하던 네가 언제 이렇게 커서 어엿한 직장인이 됬는지, 시간 참 빠르다 그렇지?

창창할 것만 같던 직장생활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너도 알거야.

사는게 참 각박하지?

나도 그랬어.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누군가에겐 나도 이기적인 사람이더라고.

물론 나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말이야.

억울했었어. 당하고 사는 건 나뿐인 것 같았으니까. 

다정한 사람이고 싶었어. 많은 사람들에게 다정하려고 애썼고 착한 사람이고 싶었어.

그런데 그래서인지 결국엔 질려버리더라고.

사람한테도 그런 나한테도. 그래서 이제는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다정한 사람으로 살려고 해.

그러니 너무 억울해하지도, 속상해하지도, 사람을 미워하지도 말았으면 해.

결국엔 사람으로 많은게 잊혀지고 사람에게서 사랑을 찾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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