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표가필요한 순간

잘 쉬어야 하는 이유

by eun

계획 없던 휴가

반강제적 휴가를 쓰게 되었다. 에어컨 없이는 살 수 없는 찜 더위로 전력을 아낀다는 명목 아래 꼬박 일주일을 연차를 차감하여 휴가가 정해졌다. 강제가 아니라도 나는 내 연차를 눈치 안 보고 효율적으로 쓸 수 있으나 이를 환영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전 세계가 코로나 감염증을 앓고 있고 나라는 방역단계가 완화되려는 차에 격상되고 연장되면서 지인들과의 여행 계획은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여러 차례 여행이 취소되자 나의 기대에 찼던 휴가는 차선으로 제주 아버지 댁으로 정했다. 간다는 소식 없이 현관문을 들어서자 아버지는 놀라시며 반겨주셨다. 2주 만에 간 제주이긴 했지만 나의 서프라이즈 이벤트는 성공적이었다.

아무 계획 없이 온터라 무얼 할 것도 없었다. 단지 내가 집에 있을 때처럼 지내도 좋을 것만 같아 할 것이라곤 책 두 권과 핸드폰이 전부였다. 제주 있는 내내 비가 전혀 안 온 것은 아니나 맞는 일은 없었다. 조금 오거나 실내에 있을 때에만 가려서 내리는 것만 같았다.

내가 머무는 곳은 제주 중턱에 자리하여 뒤로는 한라산이 보이고 앞에는 바다가 저 멀리 보이는 곳이었다. 낮에는 육지와 다를 바 없이 찜 더위였지만 밤에는 창문을 열고 방충만만 있어도 선선하게 잠을 잘 잘 수 있었다. 새벽에는 살갓이 차가워져 이불을 찾아 덮을 정도였고 풀벌레 소리와 커튼을 슬며시 밀치는 바람이 도심에서의 꽉 막힌 생활을 잊게 하였다.

아침에는 집 뒤로 난 동네 산책길을 나섰고 검은색 말과 눈인사를 건네었다. 낮에는 아.아로 한 모금씩 들이마시며 책 한 권 읽어내는 뿌듯함에 젖을 수 있었고 심심하게 느껴질 때면 안 보던 웹툰을 보고 그마저도 지루해지면 챙겨 온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고 눈을 감고 낮잠을 청했다. 가끔 사람 적은 카페를 찾아들어가 지인과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도심생활에서 누릴 수 없었던 여유를 만끽하였다.

장기 제주여행이 끝나고 돌아와 소파에서 똑같이 쉬며 누워있는데 제주에서 남은 기억이 맴돌아 여전히 기분 좋음에 머물렀다. 퇴근하면 저녁을 챙겨 먹고 다음날을 준비하기에 정신없는 나의 도심생활은 일주일간 쉼으로 지쳤던 몸과 정신을 회복시켰고 다시 돌아오게 하였다.

쉼은 그래서 필요하다. 휴식으로 인하여 다시 비우고 다시 또 채우기를 반복하며 살아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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