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한창 약해져 있을 때가 있었다. 심리적으로 불안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태였다. 나약한 게 아니라, 어리석은 게 아니라, 지나고 보면 별 게 아닌 데가 아니라,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 데가 아니라 당연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땐 조금만 건드려도 꺾일듯한 여린 가지여서 슬픔을 비집고 저 아래 감정의 밑바닥까지 다녀오기를 반복했다.
어떤 강연에서 슬픔은 감추지 말고 드러내어 공감으로 위로받으며 충분히 슬퍼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벗어날 수 있다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했다. 상담센터를 가게 된 것은 살기 위해서였다. 죽음의 문턱을 나설 때 벗어나 보겠다고 상담센터를 다니며 장기간 나 자신과 사투를 벌였다. 당시 상담센터는 알게 모르게 정신병자가 다니는 곳으로 인식이 있었기에 내가 나를 챙기는 데 왜 눈치를 봐야 하나 했지만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막상 상담센터는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덕에 상담센터를 다니는 건 부끄럽지 않았고 이겨내는 힘을 기르기 위해 애썼다. 상담센터 원장은 아직 젊어서 금방 회복될 것이라 말해주어 나도 그 말에 확신했었던 것 같다. 그 과정을 거쳐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리고 죽자살자 매달려서 새삼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알 수 있었다. 다시 우울감에 지더라도 이미 돌아와 봤기에 금방 회복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고 못 이겨내겠으면 다시 방문해도 좋다고 했다. 그 말은 맞았다. 지금도 가끔 나에게 질 때도 있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방법을 알기에 금방 회복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일이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내 곁에서 영원히 없다는 사실은 피부에 와닿지 않았고 부정하며 아직도 외출했다 집에 돌아올 것만 같아 나의 겉모습은 웃으며 아무 일 없는 듯이 지냈다. 그러나 차차 하루하루를 보내며 현실에 마주해야 했고 그 슬픔을 감당해내야 했다. 또한 개인의 슬픔의 크기는 저울질할 수 없지만 현실을 마주한 가족 모두 똑같았으므로 그 모습을 지켜봐야 했기에 나의 슬픔을 드러내는 게 조심스러웠다. 그 어느 누구도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았고 각자의 슬픔을 이겨내는 과정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라 짐작한다.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들었는지 분노하기도 했다. 나도, 가족도, 친척도 슬픔에 빠지게 만들어 밉기도 했다. 때론 그래... 얼마나 힘들었으면 말하지도 못하고 혼자 고민하고 감당했을지 가여워 타협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죽음에 대하여 수없이 생각한다.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은 무엇이며, 고통 없는 죽음은 무엇일까. 내가 죽는다면, 내가 나의 장례를 지켜본다면 남은 사람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기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 슬픔을 나로 인해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장기기증과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자원하여 수긍하기 시작했다. 나는 살기 위해 슬픔을 어떻게든 이겨내고 있다.
김재식 작가님의 글을 좋아한다.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빼놓을 수 없는 문장이다.
별일 없이 산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특별한 일은 없지만 우리 가족이 아프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부를 물으며 살 수 있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다들 영원히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보낸다. 사랑하는 이들이 별일 없이 안녕한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막상 별일이 생겨보면 그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그 사실을 잊고 행복하지 않다며 불평하며 살아간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지금 안부를 전하자. 오늘도 안녕한지. 별일 없다니 다행이라고
-김재식-
어떤 글에서는 힘들수록 주변 사람들을 더 챙기라고 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나를 지탱하게 하고 내가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한다. 만약 내가 죽음을 향해 갈 때 미련이 있다면 다른 건 제치고 사람과의 이별일 것이다. 이생에서 이룬 모든 것들은 가져갈 수 없다는 노래 가사도 있지 않은가.
죽음 앞에서는 평등하다. 나이, 인종,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바로 1분 뒤에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는 '나'이다. 그래서 평소에 잘하자를 늘 가슴 깊이 새겨 산다. 언제 가더라도 후회 없이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