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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KOO RN Aug 26. 2020

때로는 시간이 답이다

토종 한국인의 영어 스피킹

  내 수능 영어 성적은 2등급이었고 대학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쳐본 토익 시험은 730점이었다. 영어를 싫어하진 않았지만 좋아하지도 않았다. 딱히 미드나 영드를 즐기지도 않았고, 미국이나 영어권 문화에 관심도 크게 없었다. 아마도 내 직업이 간호사가 아니었다면 영어회화를 제대로 공부하지도, 미국에 오지도 않았을 것 같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영어를 10년 넘게 공부했지만 영어라는 과목으로 공부했을 뿐, 의사소통을 위한 영어공부는 소홀했다. 중간에 가끔 회화학원을 기웃거리긴 했지만, 그저 비슷한 실력에서 맴돌 뿐이었다.


  미국 간호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점수는 아이엘츠 종합 6.5 스피킹 7이다. 토플이나 아이엘츠 뭐든 관계없지만 토플 스피킹 26점이 아이엘츠 스피킹 7점보다 어렵다는 평이 있어 대부분 아이엘츠를 많이 준비한다. 난 토플 아이엘츠 그 어떤 것도 공부해 본 적이 없었기에, 아이엘츠 준비를 시작했다. 2016년 10월 병원을 퇴사하고 본 아이엘츠 시험에서 스피킹 5 종합 5.5 점을 받았다. 뭔가 전반적인 기본기를 쌓아야겠다 싶어 퇴사 직후 퇴직금을 털어 아일랜드로 6개월 어학연수를 떠났다. 아일랜드는 영어권 국가 중에서는 가장 저렴한 곳 중 하나였다. 또 난그 전까지 한 번도 유럽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기에 매력적인 곳이었다.




 2016년 10월, 아일랜드의 코크로 떠났다. 아일랜드는 의외로 우리나라랑 비슷한 구석이 있다. 사람들이 정이 많고 술과 음악(음주가무...)을 좋아한다. 특히나 코크는 남부지방 해안도시이며 우리나라 부산과 비슷한 느낌이다. 아일랜드 제2의 도시이며 영어 사투리가 심한 편이다. 내가 간 어학원에 한국인은 거의 없었고 주로 남미나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다. 이 친구들의 하나같은 특징은 정말 여유롭고 급한 게 전혀 없었다. 매일 어울리며 새로운 문화를 익히는 시간들이 즐거웠다. 다만 내 영어실력은 거의 늘지 않았다. 내가 어울렸던 친구들은 나와 같이 외국인이었고 어학원 선생님들은 우리가 알아듣기 쉬운 표현으로 표준 발음으로 수업했기 때문에 뭔가 내 영어실력이 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실제 현지 사람들과 깊이가 있는 대화하는 건 여전히 힘들었고 미드도 자막 없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돌이켜보면 전반적으로 어학연수 자체는 후회하지 않는다. 특히나 해외 경험이 없는 나에게 잠시나마 타국 생활은 이민 전 예행연습하는 기분이었다. 내 첫 유럽 여행이자 유럽 생활이었고 수많은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문화를 알아가는 게 재밌었다. 아일랜드에 간 첫 달은 홈스테이 생활을 했는데, 좋은 홈스테이 식구들을 만나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가족 여행에 나도 함께 가기도 했고, 내가 간 10월이 딱 할로윈 시즌이라 본 고장인 아일랜드에서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또 아일랜드의 억양은 굉장히 센 편이라 하드코어 훈련을 하는 느낌이었다. 아일랜드 영어를 듣다가 갑자기 미국 영어를 들으면 굉장히 또박또박 들렸다. 영어에도 수많은 억양과 표현이 존재하고 영국 영어, 미국 영어, 아일랜드 영어의 크고 작은 차이를 비교하는 게 재밌었다.


 2017년 2월, 아일랜드 연수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끝도 없는 구글링 과정에서 미국 이민 스폰서를 찾아 계약했다. 이때 영어 이력서 작성하는 법이나 이메일 쓰는 법도 익혔다. 모르는 게 생기면 매일 유튜브나 구글에 검색했다. 이때부터 난 한국의 검색 엔진은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정보가 제한적이었고, 광고성 글 들도 너무 많았다. 아일랜드 연수 중 본 아이엘츠 시험에서 내 스피킹 점수는 5.5점 고작 0.5점이 올랐다. 한 달 정도 연수기간이 더 남긴 했지만, 스폰서도 구했고 보다 빨리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한국에 돌아가 집중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서 예정보다 일찍 한국에 돌아갔다. 대체 어떻게 대비할 수 있을지 그저 답답하기만 해서 1:1 과외 같은 것도 알아보았는데 간호사 전문이라는 몇몇 사람들은 시간당 기본 5만 원부터 10만 원 이상까지 불렀다. 시험 성적 보장도 안되는데 시간당 그만큼의 돈을 투자하는 건 부담스러웠다.




 2017년 3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영어공부와 동시에 학교 병원에서 연구간호사 업무를 시작했다. 환자 간호를 하던 때와 비교하면 훨씬 수월했다. 좋은 교수님들을 만나서 좀 더 편안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었고 임상시험 업무 자체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이 분야에서 계속 내 경력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한 번씩 본 아이엘츠에선 스피킹 6점이 연달아 나왔다. 한국에서 일하는 것에 만족도가 커지면서 동시에 영어성적으로 이렇게 쩔절 매는데 과연 내가 미국에 가서 일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커졌다. 고민 끝에, 2017년 여름 이민 수속 계약을 취소하고 싶다고 스폰서에 알렸다. 영어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게 나의 가장 큰 이유였다. 스폰서 측에선 아직 많이 진행되지 않아서 잠시 보류할 수 있고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얘기해 달라고 했다. 이때 나는 아이엘츠는 모두 접고 영어를 그냥 있는 그대로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이민 수속도 멈춘 상태에서 더 이상 급할 것도 없었다.


 시험공부는 멈추었지만 영어 공부는 계속했다. 사실 공부라기보다는 내 모든 환경을 영어 속에 두려고 노력했다. 미국행이 아니라 한국에서의 업무를 위해서도 영어는 필요했다. 가장 많이 이용한 건 유튜브와 팟캐스트. 궁금한 게 생기면 언제든 구글링 혹은 유튜브에서 정보를 찾았다. 내가 흥미 있는 분야를 영어로 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더 많이 영어에 노출될 수 있었다. 당시 난 인천에서 서울 강남까지 출퇴근했는데 왕복 거의 3시간이었다. 오가는 지하철에서 팟캐스트를 정말 자주 들었다. 쉐도잉이나 딕테이션은 따로 하지 않았고 단어나 표현을 집중해서 들으려고 노력했다. 화상 영어도 주 2-3회는 꾸준하게 했고, 틈틈이 외국인들이 많이 가는 홍대 언어 교환 카페나 펍에 갔다. 특히 언어교환 카페 갈 때는 항상 혼자 갔다. 친구랑 가면 아무래도 새로운 친구 사귀기가 힘들어지고 영어로 대화하는 것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져서 혼자가 편했다. 여기서 캐나다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우리나라에 온 친구도 만나고, 영국에서 Kpop이 너무 좋아 한국어를 배우려고 한국에 온 친구도 만났다.


 2017년과 2018년은 끊임없는 진로 고민의 연속이었다. 임상시험 분야에서 계속 일하는 게 맞을지, 다시 외국행을 준비하는 게 맞을지 혼란스러웠다. 연구간호사 업무는 괜찮았지만 복지가 대부분 형편없었고, 회사에서는 이래저래 눈치만 봐야 하는 을이 된 느낌이었다. 간호사로서 느끼는 사명감이나 전문직의 정체성을 찾기 힘들었다. 2018년 여름 다시 한번 아이엘츠 시험을 보았다. 마지막 시험을 본지 거의 1년 만이었다. 그동안 내가 했던 건 원어민 친구들과 어울리고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습관적으로 계속 듣고 온라인 원서 읽기 모임으로 중급 난이도의 원서도 한 달에 한 권 꼴로 읽었다. 시험 2 주 전부터 캠브리지 최신판을 연습 삼아 풀어보았다. 이 시험에서 리딩 7 리스닝 7.5 스피킹 7 점을 받았다. 때마침 보류 중이었던 이민 1차 서류(I-480) 이 완료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다시 스폰서에 연락을 해서 진행하고 싶다고 알렸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영어를 위해 쓴 돈은 시험용 영어에만 매달렸을 때 보다 훨씬 적었다. 내 방법은 단기간 급하게 점수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을지 몰라도, 조금 여유를 두고 보면 스트레스 없이 실력도 늘리고 돈도 아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 온 지 1년 반이 다 되어가는 나에게 여전히 끝이 없는 숙제이다. 매일 새로운 표현을 어디에선가 접하게 되고 듣고 읽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감과 물어보는 걸 언제나 주저하지 않는 것! 그리고 때로는 그저 반복하며 자연스럽게 나에게 흡수되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시험용 영어를 준비하다 보면 조급함이 앞서게 되고 영어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리기도 쉽다. 지치고 더 이상 오를 기미도 안 보일 때 한 박자 쉬고 여유를 가지고 내가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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