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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콩 Mar 07. 2023

서른넘어 오춘기

열아홉, 겨울에 상경하며 엄마의 품에서 벗어났다. 얼마나 춥고 눈 오는 날이었던가, 평소라면 잘 입지 않을 금장 포버튼 단추가 달린 새로 산 코트를 빼 입고 또각또각 3센티 구두를 신고 나섰다. 그때가 시작이었다. 새로운 독립의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 그때의 감정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아무것도 잘 모르는 내가 갑자기 보금자리를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두렵고 회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저 자유로움 앞에서 밤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마냥 신나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그 회피하기만 했던 시간들에 대한 책임이 따르는 순간이 왔고, 그 책임의 무게에 너무나 아파하고 힘들어했다.


 스스로 독립을 한다는 것,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미숙한 나 자신을 직면해야 한다. 그 순간을 직면하지 못하면 결국 나는 성장하지 못하고 꼬마아이로 겉만 늙은 채 시간이 흐르는 것이다. 그렇게 어느덧 십여 년이 흐르고 홀로서기가 조금 익숙해질 무렵, 새로운 친구와 함께 길을 걷기로 했다. 혼자 있으면 많은 것을 무시하고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하지만 동행자가 생기는 순간 내가 눈감아준 나의 치부들, 나의 아픔들, 기억 속에서 잊힌 나의 다른 모습들을 마주해야 하는 순간들이 상상 이상으로 잦다. 통제할 수 없는 감정들을 숨길 수 없어 들어내보여야 하고 나도 몰랐던 내 모습들에 여간 당혹스러울 수가 없다.

 또, 신기한 것이 기억 속에 잊혀졌던 어린 시절 기억들이 문득문득 떠올라 엄마에 대한 미움도 올라왔다. 그녀는 내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이렇게 말해줄 순 없었을까, 세상 많은 말들이 원망스러웠다. 서른 살의 오춘기가 시작되었나 보다. 이 시간들을 미워만 하지 않으려 이해하려 더 많은 고뇌와 더 많은 생각들로 시간을 감내해 냈던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더 이해하려 애쓰고 그 상황과 입장을 그려갔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완벽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행하는 실수들에 대해 담담히 받아들이고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을 했다. 많은 조언들은 마르쿠스 아리엘리우스 명상록에서 찾았고, 감정적이기보다 이성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심장에서 솟아오는 화를 열심히 컨트롤했다.


 우리는 코로나 때문에 예상보다 조금 이른 혼인신고를 했고 같이 살게 되었다. 처음 세네갈엘 와 정착하랴, 업무에 집중하랴,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함과 동시에 7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낸 남자친구도 남편으로써 맞이해야 하는 인생의 큰 변화를 맞이해야만 했다. 나라는 우주에 핵폭탄이 떨어진 기분이었다. 싱글로 살아오며 많은 혼자 있는 시간들을 보내며 내면의 혼란스러움을 다독이며 겉으로는 우아한 척 해온 시간들을 더 이상 지속할 수는 없었다. 모자란 내 모습을 자꾸만 마주해야 하고 어느 날이면 그 모든 것이 남편 탓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서로 큰 상처를 주고 서로 다독여주며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첫 해엔 이혼생각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그와 동시에 이별을 상상하니 두렵고 무섭기도 했다. 어려운 상황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첫 해 어느 날쯤 이탈리아 친구 마르게리따의 부모님과 저녁식사에서 축하 인사를 듣게 되었다. 참 많이도 싸우고 있는데, 나이가 들면 덜 싸우겠죠?라는 나의 말에 마르게리따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새 신부, 미안하지만 실망스러운 말을 해야 할 것 같아. 우린 결혼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싸워. "

그녀의 말에 나는 

"오 마이 갓!! 이 싸움을 평생 해야 한다고요?" 

"응, 하지만 싸운다는 건 맞춰가고 싶다는 뜻이고 현명한 싸움은 값진 시간일 거야."


언어적으로는 그녀의 말을 이해했지만 알듯 말듯한 감정이었다. 벌써 혼인신고한 지 4년째 되는 해가 시작되었다. 나의 감정선이 얼마나 어리고 미숙한가를 깨닫게 된 순간이 있었다. 그 감정들은 화라고 표현하고 사실은 혼란스러움과 슬픔이었다. 그 감정을 깨닫고 나니 감정조절이 가능해졌다. 여전히 싸우고 여전히 투닥거리지만 더욱 가깝고 소중한 사람으로서 동행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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