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내가 세네갈로 넘어가며 우린 예상보다 이른 혼인신고를 하게 되었다. 코로나가 터졌고, 알렉스는 재택근무가 가능해진 탓이다. 그리고 2021년엔 브라질에 방문해 혼인신고를 마쳤다. 2021년에 결혼식을 하자는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나날이 심각해지는 코로나와 복잡함, 번거로움으로 내년으로 미루어버렸다. 그리고 미루던 2022년이 다가왔고, 우리는 한국에서 결혼식을 먼저 하기로 한다.
결혼식을 생각하며 여러 가지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들이 있었다. 내가 생각한 결혼식과 실제로 이루어지는 결혼식들이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몇천만 원을 들이지만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끝나버린 것이었다. 주변의 기혼자들에게 메세지를 보내 결혼식이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1. 굳이 큰돈을 들일 필요는 없지만 신랑 신부에게 더욱 집중된 결혼식이면 좋겠다.
2. 평생 지인들과 같이 기념할 수 있는 기념일을 만드는 거니 큰돈은 쓰지 않되 기억에 남는 예식을 만들라.
3. 지나고 보면 별게 아니니 큰돈 들이지 말고 그 돈 아끼자.
4. 너무 부모님 행사에 치중하지 말라.
열댓 명 기혼자로부터 받은 조언은 대부분 비슷했고, 위 네 가지가 대부분의 조언의 내용이었다. 사실 처음엔 아주 맛있는 갈빗집을 예약해서 사람들을 초대해 천만 원, 이천만 원어치의 정말 맛있는 식사 한 끼만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고민을 했더랬다. 하지만 기혼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나니, 맛있는 밥도 좋지만 기억과 경험, 감각적인 부분도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던 것 같다. 이후 나는 플래너 리스트를 만들었고, 조금 비싸지만 감각이 있는 플래너를 고용하였다. 너무 마음에 드는 예식장이 있었는데, 온라인상으로는 상담을 해줄 수가 없다는 그들의 말에 세네갈에 있던 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선택한 플래너는 요즘 흔히 말하는 스몰웨딩을 하는 플래너였는데, 주로 고택이나 야외웨딩을 준비해 주는 플래너였다. 나의 경우 시댁식구들이 대거 오기엔 너무나 멀고 연로하신 분들이 많아 최소의 인원만 참석할 예정이라, 스몰웨딩이 적절했다. 하지만 준비를 하며 스몰웨딩이 결코 가격이 스몰 하지 않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알렉스가 웹사이트를 만들었고 동생이 한국식 청첩장을 만들었다. 홈페이지에는 3개 국어로 번역하여 올렸고, 처음엔 간단한 인사말만 쓰기로 했는데 쓰다 보니 알렉스는 짧은 말로 우리의 이야기를 다 표현할 수 없다며 풀스토리를 썼다. 고된 번역작업이었다.
웹페이지:
https://binalex.herokuapp.com/en-gb/
사실 한국에서는 참석자 리스트를 별도로 작성하지 않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우리의 경우는 시골의 한 고택을 빌려 의자, 테이블, 식사까지 하나하나 모두 준비하여야 했기에 사전에 참석자 리스트를 미리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이 홈페이지에서 참석자 등록을 하여 입국일, 출국일, 참석일, 버스사용 유무, 숙박유무 등을 정리하여 예약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매우 든든한 전문가의 작업이었다. 소프트웨어 디벨롭 관련 업무를 하는 남편이 제대로 일을 하고 있긴 하나보다 하는 순간이었다.
결혼 준비하다 보니 나 혼자 하는 것 같고, 한국에서 한국시스템을 잘 이해하는 내가 정말 혼자 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 서운한 순간들이 정말 많았다. 기혼자들의 여러 조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조언인 " 결혼 준비하다 보면 서운한 게 많을 거예요. 신랑 다 용서해 주고 잘 봐주세요. " 이 말을 열심히 상기시키며 그가 열심히 도와주려 한다는 것을 열심히 되새겼다.
디자이너인 동생이 청첩장을 만들어줬고, 그 결과물은 정말 놀라웠다. 동생은 돈 받고 비슷한 청첩장을 만들어준다면 대체 얼마를 받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그녀는 디자인부터 프린트까지 근사한 결혼선물을 해준 것이었다. 모두들 한입모아 너무 유니크하고 예쁜 청첩장이라 했다. 청첩장엔 우리의 까미노길, 남미, 파타고니아, 한국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던 스토리도 들어있고, 클라이밍, 스케이트보드, 기타, 해수욕을 담아 우리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게 했다. 특별 출연으로 동생이 키우던 라온이와 세네갈에서 돌봐주던 피넛, 미국에서 지내던 빈첸토까지 알뜰하게 담아주었다.
해외생활을 한지 고작 8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가장 사회생활을 활발하게 하고 성인으로써 사회생활을 하며 배워야 할 것들을 배워야 할 순간에 해외생활하며 잘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결혼식도 한 번밖에 가보지 못했고, 나에게 일어날 일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식순이나 행사 방식을 눈여겨보지 않은 것에 대해 매우 후회가 되는 순간이었다. 생각보다 우리가 스스로 짜야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고, 기본 베이스가 없어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몰랐다. 성혼선혼문이라는 것도 인터넷에 열심히 검색했고 우리의 입맛과 우리의 색에 맞게 준비했다. 마지막까지 혼란스러웠다. 준비가 잘 되어가고 있는 것인지, 전체적인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하객들이 스쳐 지나가는 짧은 인스타그램 영상 같은 결혼식이 아니라 모두가 같이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여행하는 방법,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함께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한국에서 바라보는 나는 매우 가난하고 안정적이지 않은 사람이지만 떠돌이로써 가치와 의미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의 의미, 가치관들을 함께 누리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랐던 것 같다. 시간에 쫓기듯 하는 것보다 여유를 가지고 술 한잔 하고, 구경하고, 바람을 느끼고 음악을 느끼는 시간들을 가지기를 바랬다.
결혼식 준비를 하며 놀랐던 것이 꽃값이었다. 향기로운 생화를 쓰고 싶었고, 아름다운 붉은 장미와 호접이 어우러지기를 바랐다. 플래는 완벽하게도 그 그림을 만들어줬다. 하객들이 돌아가는 시간에는 꽃다발을 만들어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그 향기가 먼 길 돌아가는 길에도 전해져 설렘이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다행히도 먼 거리에서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지인들이 많이들 참석해 주셨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는 후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 장소를 정하며 거리에 대한 감각이 별로 없었던 것이, 우리는 해외를 다니며 수십 시간의 비행을 하고 주말엔 4-5시간 운전해 여행을 가는 등 시간과 거리에 대한 사고가 달랐다. 하지만 결혼식 한 달 전, 한국에 돌아와 한국 생활을 해보니 4시간의 거리는 정말 어마어마한 것이었고 한국에서의 주말이 소중함은 정말 다른 의미였던 것이었다. 고된 근무시간과 교통체증으로 출퇴근 시간에도 어마어마한 소비를 하는 친구들을 가까이에서 보니 너무 미안했다. 28시간이 넘는 비행을 통해 온 해외에서 온 나의 스무명 넘는 소중한 친구들, 그 마음들이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결혼식이라는 건 그냥 파티일 뿐, 별거 아닌 결혼식이라 생각했던 나는 결혼식을 준비하며 정말 많은 깨달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나를 아껴주고 챙겨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고 그 소중한 마음들을 받으며 벅참을 느꼈다. 내가 준비한 결혼식은 24시간 하루라는 시간이 너무 짧다고 느꼈다. 최소 2박 3일은 같이 있어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얼굴을 보고 시간을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커플은 사람들을 좋아하고 속 깊은 곳 무언가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꼭 어릴 때 친구들처럼 말이다. 5월에 브라질에서 마지막 결혼식을 하려 한다. 사람 좋아하는 오지랖 국제커플은 바쁘다. 브라질에서 참석하지 못한 가족들과 친구들이 마음 쓰여 그냥 지나치지는 못하겠다. 더욱 재미있는 스토리로 브라질 결혼식을 준비하려 한다. 또 재미있는 결혼식 이야기를 가지고 올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