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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학씨-아저씨

폭싹 속았수다 리뷰: 오늘 우리의 교육 반성시간

by 은콩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나와 나의 남편은 오늘에야 폭싹 속았수다를 마쳤다. 남편은 한국에 종종 오기도 했고 나로 인해 한국의 문화들을 많이 듣긴 했으나, 폭싹 속았수다는 새로운 문화충격이었나 보다. 일본 망가 같은 건 관심이 많고 즐겨보지만 한국 드라마의 로맨스는 아직 이해하기 힘든 나의 남편이 폭싹 속았수다는 뭔가 새로운 드라마라며 보기 잘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사실 첫 에피소드에선 이걸 정말 끝까지 봐야 하느냐 물었던 그였는데, 애순이 성장하고 애순의 삶을 함께 살아가며 그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아직 뱃속에 있는 아이라 현실적으로 아빠가 되었음을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나의 남편도 애순의 셋째가 죽었을 땐 "아이가 있는 부모로서 이건 정말 너무 고통이야"라고 할 정도였다. 그나저나 오늘은 주인공인 애순보다 나는 학씨 아저씨, 부상길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학씨 아저씨, 부상길의 캐릭터는 정말 은근 한국사회에서 볼 수 있는 캐릭터인 것 같다. 내 주변에도 이와 비슷한 캐릭터를 가진 이가 있다. 나의 남편은 학씨 아저씨가 정말 존재하느냐,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행동할 수 있느냐(그는 asshole이라 표현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등의 감정을 표출했다. 서양에서는 젠틀함이 매우 중요하고 매너와 개인의 공간의 보장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을 매우 치욕스러운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젠틀하지 못하는 것은 나의 치부를 밖에 내보이는 것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아마 저런 캐릭터가 형성되기까지 살아온 환경이 영향이 미치지 않을까 라는 이야기를 했다. 학씨 아저씨의 어머니가 후기에 잠깐 등장하며 학씨 아저씨의 아버지도 바람을 피우고 다녔으며 학씨 어머니는 살고자 많은 것을 못 본 척하며 아이에게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다며 며느리에게 고백하는 씬이 나왔다. 학씨 아저씨는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아왔으며 삶의 방식을 부모로부터 배웠기 때문에 본인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결코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설령 인지했더라도 유년기의 하늘과 같은 부모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 누구도 가르쳐준 사람이 없기에 스스로 혼란스러움이 컷을 것이다. 또한 부잣집 아들로 본인이 원하는 것은 쉽게 가질 수 있었으므로 스스로의 문제점을 생각해 볼 기회가 많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이 든다.


우리는 실패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아이들이 여러 번 실패를 경험해야 하는 이유도 이러한 이유 중 하나다. 오늘날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실패를 경험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사실 이 감정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닌 지켜보는 부모가 견뎌내기 어려워 아이들에게 실패의 경험을 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아이가 실패 경험이 없으면 도전이 두렵고 결국 그 바운더리 안에서만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학씨 아저씨도 어릴 적 실패를 자주 경험해 봤다면 스스로 무엇이 문제이고 스스로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고민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노년이 되어서야 가족들이 떠나고 진정 실패를 경험하며 그제야 무엇을 잘못했는지, 주변을 돌아보며 반성할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학교 다니며 아이들은 실패하고 상처받고 또 또래 친구들에게 치유받고 이 과정을 겪는 것이 너무나 소중하고 값진 시간임을 잊어선 안된다. 부모도 교사도 이 시간이 괴롭고 힘들겠지만 우리가 같이 아이들의 성장을 기다려 주어야 훗날 덜 아픈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내 마음 깊은 곳에 짠-한 마음이 들었던 학씨 아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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