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갈레인줄 착각하고 있는 하얀 뚜밥의 이야기
한참 다이어트를 하느라 고생을 했던 적이 있다. 당시 건강악화로 두 차례의 수술을 받아야 했고 순식간에 불어난 살로 수술이 끝나고 회복 후에는 살과의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약 20킬로의 감량 후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언가, 트라우마 같은 것이 생겨났다.
초기에 세네갈에 와서 당황하고 힘들었던 것이 있었다. 너무 맛있는 현지식과 생각보다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좁은 활동반경과 나날이 쪄오르는 살들이었다. 한국에서 한참 다이어트를 할 때 도와줬던 오빠가 있었다. 이름하야 '쌀집 최씨'오빠. 우리는 그를 쌀 오빠라고 부른다. 여하튼, 쌀 오빠에게 다시 SOS 요청을 했고 다시 쪄오르는 살과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나의 말에 그는 대답했다.
'이X끼 아프리카에서 살 빼기 쉬워 임마'
'사바나에서 그냥 서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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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물론 쌀 오빠만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 테다. 내가 아프리카에 간다고 하니 매일 사자들과 뛰어놀고 초원 한복판에 천 쪼가리만 두르고 살 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열중에 다섯은 됐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거기 인터넷은 되냐?', '핸드폰은 쓰냐?'라는 1차원적인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도착 후 나의 삶들의 사진들을 보며 대부분은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현대적이고 생각보다 한국에서의 삶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화로 6만 원이라는 다달이 비싼 돈을 내며 빠른 인터넷을 쓰고 있긴 하지만 영상 통화도 하고 이렇게 글을 쓰고 올릴 정도로 잘 되고 있으며(물론 한국만큼 빠르거나 그렇지는 않지만 생활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는 않는 정도) 핸드폰은 한 사람당 두세 개씩 쓰는 사람도 꽤나 많다. 이곳은 한국처럼 다달이 요금제를 내는 후불식 방식이 아니라 크레딧 카드를 구매해 긁어 충전해서 쓰는 방식으로 핸드폰을 쉽게 바꾸고 몇 개의 번호를 쓰는 사람도 꽤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한 달에 한화로 만원 정도 내면 2기가의 3G 데이터를 쓸 수 있으며 카x오톡을 쓰고 페이x북을 열심히 하고도 남을 정도로 여유롭고 빠르게 쓸 수 있다.
처음 세네갈에 오면 많이들 당황해하는 것이 있다.
첫 번째로 '꽤나'발전된 수도의 모습이다. 유럽인들과 레바논계 사람들이 상권을 대부분 잡고 있으며 사뭇 유럽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곳도 꽤 많다.
두 번째로 생각보다 비싼 '물가'이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시골마을이나 이곳은 조금 덜한 편이지만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공산품은 유럽에서 들려오기 때문에 모두 수입산이라고 보면 된다. 특히 프랑스의 지배 때문인지 프랑스산 제품들이 꽤 즐비하게도 널려져 있다. 또 외국인으로서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물론 그에 대한 대가는 치루어야 마땅하다. 현지인과 어울려 현지인으로써의 삶을 산다면 그 물가는 조금은 부담을 덜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도 외국인은 '외국인 바가지 부가 별도 텍스'라는 것이 붙지 않는가. 하하.
그 외에도 승차 전 택시 흥정, 산다가 시장에서의 삐끼 문화, 무슬림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즐길 것들이(?) 많은 유흥문화까지.
수도에서는 이 외에도 수영장, 호텔, 각종 피트니스 클럽, 볼링장 등 여럿 시설들을 즐길 수 있다. 이 사진들을 보고 내게 진정 세네갈에 살고 있냐고 물은 지인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처음에 세네갈에 도착한 날 선배 단원들과 케밥집에 갔다. 그날 케밥집에서 내가 결제한 금액은 약 3500세파. 한화로 7000원 정도 된다. 친구에게 도착한 날, 잘 도착했다는 안부인사를 했고 케밥을 먹기 위해 약 7000원 정도 결제를 했다고 하니 그 친구가 하는 말,
"너 현지어를 배워야겠어. 바가지 쓴 거야!"
결단코 바가지를 쓴 것이 아니다. 그럴싸한 빌딩의 외국인이 꽤나 많은, 그리고 특히나 레바논계나 프랑스계 사람들, 외국인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나 상점 바 같은 곳은 대부분 유럽의 물가를 반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나 피자는 한 플레이트당 10000원에서 13000원 정도의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다만 이는 '수도'와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교집합이 있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시골마을인 께베메르의 현지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쩨부젼이 단 2000원에 판매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느끼기에 세네갈은 한국과 꽤 닮은 점이 많은 나라다. 먼저 역사적으로 세네갈은 많은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지배를 받았고 그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나라다. 한국의 아픈 시간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긴 시간을 힘들게 보냈겠지만, 처음 아픈 역사를 접하고 괜히 모를 동질감 비슷한 것을 느꼈던 것 같다.
한국인도 자존심 쌔기론 말로 다 할 수 없다고 생각 들지만 세네갈 사람들도 만만치 않게 자존심이 쌔다. 혹여나 모멸감을 주거나 상대를 치욕스럽게 하는 날이면 뒤통수와 손가락 혹은 손목 정도를 조심해야 할 것이다.
또 그 외에도 비슷한 문화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밤에는 손톱을 깎지 않는다던가 붉은색 펜으로 이름을 쓰지 않는다던가. 만국 공통의 문화 일지는 몰라도 괜스레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특히나 공감되었던 것은 자본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국에 비해 땅은 넓지만 국토의 약 12%만이 경작이 가능하고 또 하필이면 그 땅에 땅콩재배를 중심으로 한다. 땅콩을 재배한 땅에서는 다른 작물이 자라기가 힘들다. 여하튼, 본인의 생각으로는 세네갈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은 인력자본이 가장 크다고 느꼈다. 머리를 땋는다던가 가방을 만든다던가, 목공예품을 만드는 것을 보면 존재 주가 없진 않은 것 같다. 물론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자세히 보면 울퉁불퉁, 정교하지 않고 섬세하지 못하다고. 그건 그간 받아온 교육의 질을 생각하면 충분한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 든다.
* 수도 옆 띠에스의 빌라지 아트 제날: 손수 작업한 공예품들을 파는 곳이다. 직접 실로 뜬 천 이외에도 모양을 찍어낸 천, 가죽 가방, 목걸이, 액세서리 등 여럿 공예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나도 세네갈에 온 초기에 이곳에서 가방과 목걸이를 구매했었다.
마지막으로, 이슬람의 국가지만 술을 구할 수 있고 유흥을 즐길 수 있는 나라. 이곳은 소수의 가톨릭이 존재하지만 꽤 조화롭게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며 잘 지내고 있다. 하루는 어떤 친구가 내게 종교가 뭐냐는 질문에 불교라고 답했다. 궁금한 게 많아지는 시점이다. 한국에는 불교가 많은지, 이슬람 사원은 있는지, 무슬림이 한국에도 있는지. 차근차근 내가 아는 한해서 이야기해줬다. 이태원에서 이슬람 사원을 한 곳 봤는데 너무나 이쁘고 멋지게 지어져 있고 최근에는 한국에도 할랄식품에 대해 많이들 인지하고 할랄 레스토랑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이때 한 친구의 질문이 너무 귀여웠다.
"한국에는 불교를 위한 사찰이 몇 개 정도 돼?"
그래서 나는 대답 대신 제안을 했다.
"세네갈에 모스케(이슬람 사원)가 몇 개인지 알면 나도 대답해줄게"
그리곤 모두 다 같이 한바탕 웃어줬다.
*(왼쪽부터) 바바카와 요프 비치, 은고르 비치에서 세네갈 맥주 가젤
이곳에 와서 친해진 친구가 한 명 있다. 그의 이름은 바바카. 직업은 비치에서 바를 운영하고 있고 서핑 강습 또한 하고 있다. 우연히 그의 동생 매장에 들렸다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의 바에서는 선베드에 누워 맥주를 마실 수 있고 꽤 자유롭다. 당연히도 그가 가톨릭의 종교를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몇 번째의 만남에 그의 말끝에 '인샬라'라는 말을 듣고 종교를 물어봤다. 본인은 무슬림이란다. 인샬라는 미래는 오직 신만이 알고 있다는 뜻으로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인샬라'를 붙여준다. '내일 만나 인샬라' 같은 낌이랄까? 어쨌든 이슬람의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술을 팔아도 되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대답한다.
"여기는 외국인이 많아. 그리고 호텔에서도 술 팔지? 여기는 이슬람 국가지만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도 술을 팔아. 왜냐면 돈벌이가 되거든. 그래서 나도 술을 마시지는 않지만 맥주를 파는 거야. 그리고 네가 찾잖아. "
글쓴이. 김은빈
직업. 영감님처럼 동네 시찰 나가기
부업. 세네갈의 작은 마을 께베메르에서 아이들 요리교육을 하며 지내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