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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콩 Nov 17. 2016

개도국에서 산다는 것.


개도국에서 산다는 것은 사실 조금의 불편함 외에는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 조금의 불편함을 인지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 게 중 몇 가지 불편함에 대해 생각해보니 단수, 정전, 편의시설? 정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이것도 수도에서 사는 사람들은 크게 인지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가끔 수도에 갈 때면 정신없는 도로 위의 자동차들, 시끄러운 사람들, 무표정의 사람들로 서울에서의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지난 1월 말쯤이었을까, 우리 집은 극심한 단수가 시작되었다. 내가 1월 초에 이사를 했으니 집을 구할 때 확인했던 콸콸 쏟아져 나오던 물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고 앞집 아줌마와 서로 물이 나오는지 확인하며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도 완전한 단수가 아닌 새벽에는 물이 나왔기에 물을 받아놓고 살았었다. 우기철 반짝 낮에 나오는 물은 오아시스와 같았다. 두어 달이 넘어가자 새벽에 받아둔 물을 세탁기에 수동으로 부으며 20만 세파라는 한화로 약 40만 원에 해당하는 드럼세탁기를 산 내가 원망스럽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들쭉날쭉한 단수로 익숙해져 가는지 알았다. 보름 전쯤, 그러니까 내가 10개월쯤 살았을 때 다른 집에는 물이 잘 나오는데 우리 집에는 잘 나오지 않는 물을 보며 화가 나 집주인에 쫓아가 왜 우리 집은 물이 안 나오느냐 화를 냈더니 수압의 문제인지 2층은 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수도공사에서 해결이 되어 물이 콸콸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새벽에 물을 받아놓지 않았다. 오늘 아침 일어나 외출을 준비하려 씻으려던 찬라, 다시 단수가 되었음을 알았다. 이 세상에 물은 대체 누가 다 쓰는지 왜 우리 집에까지 올 기미조차 없는지 악을쓸 힘도 없이 고양이 세수를 한 채 출근을 했다. 그러니 내게 기관 사람들이 왜 화장을 하지 않고 출근하느냐 묻지 않았으면 하는 쓸데없는 핑계다. 사실 긴 시간 단수를 겪으며 몇 가지 팁들이 생겼는데 밤 12시에 밀린 설거지를 하고 다음날 먹을 요리들을 미리 준비해 끓이거나, 볶거나 취사만 누를 수 있게 만발의 준비를 하고 잔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음날 밀린 설거지들을 하고 또 요리를 해둔다. 그렇게 단수임에도 손님을 받을 수 있었고 밥을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설거지를 하고 싶을 때 못한다는 사실이 어느 순간 화가 났었다. 이게 쓸데없는 곳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화풀이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 단수가 풀려도 결국 설거지는 밀려 밤에 하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타에 의해 밤에 밀린 설거지를 하는 것과 내가 설거지를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다는 그 자유로움이 얼마나 큰 차이를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 역시 단수 풀렸다고 자랑하면 알라가 질투한다. 이제 단수 풀렸다고 자랑하지 않을 테다. 마샬라! 


우리 집은 정전이 심한 편이 아니다. 길어봐야 2시간? 3시간이면 끝난다. 대부분의 정전은 20-30분에 끝나는데 이 집에 살면서 두 번의 장시간 정전을 맞이 했었다. 이유는 전기요금을 내지 않아서였다. 한 번은 전기공사에서 고지서를 갖다 주지 않아서 요금을 내지 않았던 탓이었다. 두 번째는 앞집과 우리 집 고지서가 바뀌어 내가 앞집 요금을 냈었고 앞집 아저씨는 요금을 내지 않아 우리 집만 끊겼던 것이다. 수도가 끊겼을 땐 차라리 전기가 끊겼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냉장고가 24시간 돌아가지 않는 모습을 보자 무엇이 더 낫다 덜하다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정전은 하마탄(모래폭풍)이 심하게 불거나 우기철에는 비가 오기 전 거센 모래폭풍이 불며 전기가 나간다. 찐더위에 전기가 나가면 팁이라고 무엇이 있겠냐만, 쉬지 않고 물 샤워를 하고 누워 낮잠을 자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밤에 동네 모두 전기가 나가고 나면 나는 옥상이나 베란다로 뛰어간다. 그 순간 하늘의 빛들이 유독 찬란하게도 빛나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는 사막성 기후로 밤에는 조금 춥고 낮에는 더운 편이다. 풀풀 날리는 모레들로 베란다 청소를 하고 돌아서면 오늘 내가 베란다 청소를 했는지 헷갈릴 정도로 다시 수북하게 쌓인 모레들을 볼 수 있다. 그나마 우기 때는 매일 아침 베란다 청소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는데 오후에 돌아와도 깨끗한 베란다를 보며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건기는 하루에 두 번을 닦아도 날리는 먼지들로 기관지가 약해지는 기분이다. 나는 집안에서 맨발로 지내는데 사실 그 덕에 더욱 청소가 지치고 힘들다. 특히 초반에는 하루가 청소만 하다 끝나는 기분이었는데 이젠 조금 익숙해졌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청소를 마친다. 한국에 있는 엄마가 들을으면 놀랄 일이다. 자취를 할 때도 세상에서 제일 귀찮은 게 청소였는데 이곳에서의 건기는 청소를 하지 않으면 건조한 이 시기에 온 몸이 뼛속 깊이 건조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생각보다 이곳에서의 삶은 유유자적하고 여유롭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삶임은 분명하다. 빠듯한 스케줄에 짜여진 삶을 살다가 시간에 있어서 자유로움을 가지게 되니 당황스럽고 나태해지는 것 같다. 내 나름의 알찬 시간들을 보내기 위해 많은 것들을 노력했지만 또 이곳에서 바쁘게 지내다 보면 결과물 없는 바쁨에 맘 깊은 곳에서 허기진 느낌이 다가올 때가 있다. 한국에서는 일로써 빠듯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항상 무언가의 결과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곳에서는 사람들과의 교류로, 이동의 시간으로 빠듯한 삶을 살아보니 익숙하지 않은 형용할 수 없는 결과물들로 혼란이 오곤 했던 것 같다. 특히나 한국에서의 나는 관계 형성을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어디까지 배려를 해야 하고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고 그런 것들이 매우 서툴렀던 것 같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니 관계 형성을 하는 법을 다시 배우는 기분이랄까. 얼마 전 친구가 아기를 낳았다. 이곳에서는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1주일 뒤 태어난 아이를 위한 파티를 연다. 친구가 화요일에 아이를 낳은 것을 듣고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다음 주 화요일에 파티를 했던 것이다. 수요일에 만난 친구들은 왜 오지 않았냐고 물었고 그 파티의 존재를 몰랐던 나는 왜 초대를 하지 않았냐며 한참을 삐져있었다. 그 친구들은 내게 화요일에 아이가 태어난 것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다음 주 화요일에 내가 파티에 올 것이라고 생각했고 따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참을 삐져있는 내게 맘 소다와 은 돔보는 쉬지 않고 미안하다며 빌었다. 사실 정말 심하게 삐졌었다. 근데 알고 보니 오지 않은 내게 맘 소다는 삐져있었던 것이다. 서로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이 하루 이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무슈 은자이에게 영어공부를 하라는 조언을 했다. 코이카에는 여러 가지 연수 프로그램이 있는데 바뀌기 전의 소장님께서 기관장을 한국 연수 프로그램에 보내려 시도했지만 영어가 전혀 되지 않아 보낼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오늘 무슈은자이와 무슈 죱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 두 사람은 정말 기관에서 열심히 일을 한다. 기관의 자립을 위해, 기관의 발전을 위해 많은 것들을 시도하고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항상 내가 "너는 한국인이야!"라며 웃고 넘어가는데 오늘 영어공부를 시작해보라며 연수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다. 와이프가 영어 선생님인데 주말부부이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 배울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친구 중 L양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친구는 아침 일찍 출근해 대부분 20시, 22시에 퇴근을 한다며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하는 말이, "그렇게 많이 일하면 돈 많이 벌잖아! 그럼 된 거야"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친구 말이 돈은 어느 정도 모으지만 그 돈을  쓸 시간도 없을뿐더러 가족과 함께할 시간도 없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이해가 간다며 웃었다. 1년 만에 이런 대화를 나누는 내가 새삼스레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기관장이 자꾸 잔심부름들을 시킨다. 어떤 장부를 가져와라, 어떤 물건을 찾아와라 등등. 그리고 가지고 오라고 한 장부를 맞게 가져오면 그게 그렇게 재미있는지 자꾸만 심부름을 시킨다. 그리곤 오늘 말한다. "빈따 음바이, 앞으로 사무실에 계속 있으면서 심부름 좀 해! 하하"


... 앞으로 사무실 방문이 더 줄어들 것만 같다. 



편의 시설은 작은 편의점이 하나 있다. 수도에 있는 큰 까지노나 시티디아처럼 큰 편의점은 아니지만 시골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랄까. 하지만 생각보다 자주 이용하지 않게 된다. 마트보다 시장에서 파는 채소들이 더욱 싱싱하고 요리해먹기 좋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자취할 때는 매일 인스턴트식품들로 보내곤 했었다. 요리하기가 귀찮기도 했고 집 바로 앞에 편의점에 뛰어가면 손쉽게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 앞에는 뛰쳐나가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의 허기짐을 자극하는 빵 냄새가 가득한 빵집과 바게트를 굽는 빵공장(?) 같은 것이 있다. 행동의 자유로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독 같은 것인지 느껴지는 요즘이다. 편의시설이 많을수록 그것에 길들여져 내 삶을 그것들에 맞추어 산다는 것을 느낀다. 단 수처럼 말이다. 단수가 풀렸음에도 똑같이 밤에 설거지를 하고 또 만약 집 앞에 그런 편의시설이 있다면 편한 것들만 찾아 인스턴트 요리들을 먹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행동의 자유와 사고의 자유라는 것을 생각보다 누리지 못하고 산 내 삶을 인지한다. 자유로움이 닥쳐왔을 때 내 삶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또 그에 맞추어 살아갈 것임을 잘 안다. 한국에 돌아간다면 또 요리를 이렇게 자주 해먹기보다 자주 사 먹고 간편식들로 꾸며진 식탁이 눈앞에 선하다. 환경에 맞추어진 사람이 아닌 스스로 독립해 자각하고 이끌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러니 오늘 저녁은 오이무침을 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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