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한국에서 여행을 하며 무엇보다도 잘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히치하이킹이었다. 많은 지인들로부터 우려의 목소리와 걱정들로 가득한 한국에서의 히치하이킹여행이었다. 무엇보다 누구보다 우리의 히치하이킹을 응원해 준 사람은 바로 우리엄마였다. 대구로 돌아와 또 나의 이야기를 귀길울여주고 토론공방을 함께 벌여준 사람도 우리엄마였다. 해외에서의 히치하이킹은 응원해줄 만하지만 한국에서 31세의 내가 하는 히치하이킹은 조금 부끄럽거나 가난으로써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사실 사실이기도 하지만) 오늘 나의 한국에서의 히치하이킹 이야기를 함께 공유해볼까 한다. 사실 생각보다 부족한 시간으로로많은 차를 얻어타진 못했다.
대구에서 지리산으로, 화성에서 전주로, 전주에서 서울로. 우리가 얻어탄 차는 스님차를 포함하여 6대정도로 6명의 운전자를 만날 수 있었다. 때때로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카우치서핑이나 히치하이킹이 그저 "공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히치하이킹과 카우치서핑은 무상으로 지낼수도있지만 더 큰 목적을 '배움'과 '교류'를 더 큰 이유로두고싶다. 나는 한국인으로써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왔지만 한국에 대해 꽤 잘 모르고 살아왔다. (알렉스의 말을 인용하자면, 우리엄마는 지극히도 한국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 사람으로써 나는 그 교육을 받고 자라온 탓에 다른 한국인과 조금 다르다고 했다.) 이번 히치하이킹은 '힐링'이라는 주제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잦지않는 대화와 교류로 잘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이야기였다. 내가 만난 아버지들은 그 어느때보다 진솔하고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낯선 내게 진솔한 이야기들을 털어 놓으며 가족들에겐 솔직하지 못했음을 당신들이 더욱 크게 깨달았을것이라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의 히치하이킹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최대 30분이내에 차를 얻어탈 수 있었고 박스에 싸인을 다 쓰기전에 차가 멈춘적도 있었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나와의 대화를 멈추지 못하고 120Km를 더 가는 등, 나에게 털어놓음으로써 힐링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스트레스로 가득 찬 얼굴에서 평화로운 얼굴로 떠나는 그들을 보며 내심 뿌듯하고 기분이 좋기도 했다. 우리는 듣거나 보는것에 익숙하지만 표현하는 것엔 서툰 문화를 가지고 있다. 작은 질문 하나에 그들의 설렌 대답은 나에게 많은 교훈을 가져다 주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들은 극도의 외로움을 토로했다. 우리가 한국에 도착 후 몇일이 지났을까, 알렉스는 한국의 남성의 자살률이 얼마나 높냐고 물었다. 이유인즉, 남성들이 너무나 외로워 보인다는것이었다. 가족구성간에 번복되는 마찰로 결국 대화 단절에 이르렀다. 평생을 가족을위해 일하였고 또 그 투자에비해 만족적이지 못한 자녀의 진로나 방향성에 여전히 속에는 화남을 비롯 속상함과 억울함이 가득했다. 어떤 아버지는 자녀가 다 컸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빚에 은퇴를 앞두고 있음에도 노후를 위함이 아닌 빚을 청산하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돈을 적지않게 벌지않음에도 불구하고 삶에대해 회의감과 후회가 가득한 아버지도 많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내게 결혼을 하지말라고 강하게 조언을 해주었다. 특히 그들은 멀리 떠나고싶고 여행도하고싶고 조금 더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은데 가족들 때문에 하지못한다고 했다. 가정이 있다는 것에 대해 나는 잘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그들의 갑갑함을 말속에서 느껴질 수 있었다. 지리산에서 만난 한 아저씨는 3주의 휴가를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대기업에서 근무중이며 적지않은 돈을 벌고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 3주 휴가가 쉽지가 않잖아요, 왜 지리산으로 오신거에요? 가까운 해외라도 나가지 그러셨어요!"
"나? 여기 시간떼우러 온거에요. 지리산 화대종주하면 3-4일은 우습게 지나가잖아요. 해외? 그런거 몰라요. 나는 휴가 필요없어요. 월차 남은것들을 돈으로 안주고 이제 월차나 휴가로 쓰라하더라구. 그래서 갑자기 생긴 휴가에요"
우리는 너무 바쁜 일상들로 적응되어 여유시간이 생겨도 쓰는법을 잘 모르게 되어버린것이다. 또 와이프의 눈치와 아이들 걱정으로 비행기를 타는일은 언감생심인것이다. 한국에 돌아와 여행을하며 크게 느낀것은 한국은 물가도 너무비싸지만 사람들이 돈을쓰는것에 대해 무감각하다는 것이다. 조금 고생하기보다 편안한 생활을 하는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특히 나이가들어 고생하는 여행은 '치욕스러운'일로 생각하는 경우를 많이 본 것 같다. 우리는 여행을하며 전세계의 나이많은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이 가진돈이 아무리 많아도 백팩킹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스스로 나이를 먹는것에 대해 가두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여튼, 가족이라는 틀이 아주 중요하지만 그 틀이 족쇄가 되어버리는 순간 가족에 대해 갑갑함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같이 휴가를 맞출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서로의 자유에 대해 조금은 인정해주어야 하는것이 아닐까? 몇몇의 유부남 아저씨들을 거친 후 우리는 결혼 한 아줌마의 차를 얻어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주에서 서울가는 날이었다. 마침, 우리는 결혼 한지 30년이 넘은 아줌마의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이분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무역상을 하시는 분이었다. 남편분보다 조금 더 많은 벌이가 있으신분이었다. 이번엔 남성운전자들이 내게 이야기해준 것들을 다시 설명하며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다. 한국의 결혼한 여성들이 조금 더 독립적이고 경제생활을 한다면 남편에게만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영위하게되고 남편에 대한 집착을 많이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세상에는 내 뜻대로 되는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하셨다. 자연 그대로 내버려두고 그 길을 인도하는것이지 자녀가 공부를 잘하길 바란다고해서 많은 돈을 투자한다고 해도 다른곳에 재능이 있는 자녀를 수학공부만 시킨다면 이것도 저것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한국을 여행하며 알고있었음에도 몸소 깨닫게 된 것이, 우리는 다른것에 대해 인정하기를 어려워 한다는 것이었다. 그림에 재능이 있는 친구가 있는가하면 게임에 재능이 있는 친구도있고 수학에 재능이 있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학교가 말하는 성적을 우선시하며 아이들의 재능을 무시하고 남들이 최고라고 하는것에 올인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로인해 실망하고 아파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과정인것이다. 그녀의 자녀는 꽤 성공적인 모델이었다. 큰 아들은 하버드 대학에서 연구원으로써 지내고있고 딸은 회계사로써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경제권을 가진 어머니로인해 아버지가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그녀는 현명하게도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가령, 자녀가 전화해 필요한것을 요구할 때 그녀는 이렇게 말 했다고 한다.
"얘야, 어떤 이유든 네가 나에게만 전화해서 부탁을하거나 안부를 전하면 너희 아버지가 너무 쓸쓸하지 않겠니? 이번일은 아버지께 전화해보는게 어떠니?"
하고 아버지께 안부라도 전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이, 좋은것을 바라보면 좋은방향으로 향하기 마련이고 나쁜것을 말하고 나쁜것을 생각하다보면 나쁜쪽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라 했다. 자녀 교육에는 일절 코멘트가 없었고 흐르는대로 흘려보냈고 성숙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기위해 최선을 다한것밖엔 없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믿음과 부모님의 성숙한 모습을 보고자란다. 그 믿음은 아이 스스로가 올바른길을 갈 수있도록 인도해주고 부모님의 성숙한모습은 아이들의 꿈을 키우게 한다.
한 운전자의 아버지는 자녀가 둘이있었는데, 첫째는 한국에서 잘나가는 한의대를 나와 한의사가 되었고 둘째는 같은 돈을 투자해 공부를 시켰는데 무명대학의 게임학과를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둘째에 대한 투자에 아주 실망하고 속상해했다. 그리고 그로인해 부부간의 대화가 단절되고 잦은 싸움으로 이어졌던것이다. 그는 둘째가 대학을 졸업하고 1년이 넘도록 집에서 게임만 하고있는 모습에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아버지는 쉼 없이 불평과 불만을 토로했고 아이는 아버지를 피하는 수 밖에 없다. 아이가 조금 부족해도 우리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우리가 보고있는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 아이는 날개를 펼치기위해 잠시 웅크리고 있을 뿐인데 가장 믿음을 주어야 할 부모가 그 날개를 꺾어버리면 아이는 그 어디에도 날아갈 곳이 없다. 잘하고있다, 잘 될것이다 라고 반복해주면 언젠가는 잘 될것이다. 그러면 와이프와도 싸울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세계여행을 하며 사람들이 가장 행복해보이는 곳은 아프리카 대륙이었다. 동남아를 시작으로 브라질, 남미대륙, 한국, 미국이었다. 우리는 발전을 하면서 행복을 내어주고 편리함을 사게 되었다. 발전이되면 더욱 즐거워야하고 행복해야하는데 편리함에따라 불행을 자초하고 있다. 아프리카에 살면서 또 그곳을 끊임없이 갈망하게 되는 이유는 결코 그들은 내게 "너 왜그랬니?" "다 네 탓이야"라는 말들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실수로 벌어진 일에도 그들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다 잘될것이라는 희망의 메세지만을 내게 주었다. 우리는 분명 잘못 발전하고 있다. 우리는 분명히도 행복해야할 여건속에서 불행을 이야기하고 발전속에 불편함만 되뇌이고 있다. 우리의 삶은 너무나 외롭다. 이 발전을 중단시키고 주위를 둘러보아야한다.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는지. 무엇이 나를 불행하게 하고 있는지. 가족구성원안에서 끊임없이 외로움을 느끼는 가족들, 돈이 많은데도 돈이 부족하다고 아우성대는 사람들, 자녀에게 월급의 반 이상을 투자해 교육을 하는데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자녀의 교육.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삶의 본질인가? 나는 세계여행을 하며 정말 화가 났다. 우리는 분명 행복해야할 권리가 있다. 그 권리는 남들이 말하는 여행에서, 회사를 때려쳐야 찾는것이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우리의 일상에서 행복함을 느끼지 않으면 그 어떤 여행에서도 우리 스스로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다시 불만과 불행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많은 여행가들이 회사를 때려치우고 여행을 간 이야기들을 한다. 그것은 그들의 해답이지 우리의 해답은 아니다. 모두가 다른 해답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 스스로가 되 찾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불행을 느끼는 어떤 한국인들에게 큰 호흡을 전해본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전원을 끄는것도 좋을 것 같다. 큰 한숨을 쉬고, 가볍게 차한잔을 하며 햇살과 바람 그리고 가벼운 소음들을 먼저 느껴보자. 그리고 긴장된 가슴을 쓸어내리고 나는 오늘 참 행복하다 하고 입밖으로 내뱉아 보자. 바쁜 시간내에도 우린 하루에 10분정도의 이런 여유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