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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콩 Apr 05. 2019

이 여행자의 여행하는법


 근래에 나를 알게 된 사람들은 나를 무척이나 털털하고 용감하게들 본다. 그리고 나의 유년시절 이야기를 듣고 나선 다들 ‘헉’하고 말을 잊지 못한다.(말잊못..) 내겐 기억이 없는 나의 어린 시절 나는 하루에 옷을 세 번씩 갈아입는 아이였단다. 그 이유는 나는 색이 있는 옷이나 특히 까만 옷은 더러운 옷이라는 인식으로 입지 못했다고 한다. 엄마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까만 옷을 입히면 흰옷으로 갈아입을 때까지 그렇게 울어댔단다. 그리고 흰옷을 입고 조금이라도 뭐가 묻으면 바로 갈아입어야 직성이 풀렸단다. 어릴 때 엄마, 아빠는 특히나 계곡으로 휴가를 보내러 가는 것을 좋아들 하셨고 캠핑도 종종 했었다. 그럴 때면 그 불편함에 매일 투정을 부렸고 집에 가고 싶다고 울었단다. 그럴 때면 엄마는  “이런 게 여행이야! 매일 더러운 곳에 자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이니 이 자연을 느껴봐!”라고 하셨다. 사실 언제나 그 여행들이 반갑지 않았고 즐겁지 않았던 것 같다. 기억에 나는 가족여행 중 포항 해병대로 여름휴가를 간 적이 있었다. 군부대 안에 들어가 막사들을 구경하고 군사지역의 막사를 구경했었다. 군사지역 해변에서 우리끼리 수영을 했던 기억도 난다. 꽤 오래된 여행이었는데 불편한 막사에서의 하룻밤은 나를 정말 괴롭게 했다. 아빠는 특히나 계곡, 시골, 자연 이런 곳들을 좋아하셨는데 그런 이유로 우리 집엔 아주 큰 대형 텐트, 소형텐트 이렇게 두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어릴 때 이런 나의 모습과 지금 모습은 너무나 상반되어 사람들이 믿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과거는 저러했고 대학을 가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고 홀로 여행을 하기 시작하며 엄마가 말했던 이런 여행을 하게 되었다. 특히 세네갈에서 비오는 어느날 옆집 꼬맹이들이 우리집 창문에 소리를 지르며 “빈따!!! 비온다!! 목욕하자!!!”라는 말에 그간 왜 비가 오는 날 비맞을 것에 대해 두려워했나 자각하기 시작했던 그 날은 잊혀지지 않는다. 비를 맞으며 소리를 지르고 춤을추고 아이들과 뛰어놀던 그날은 내가 가장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세네갈의 하루다. 그리고 지금은 여행을 하며 일주일씩 씻지 못하는 날도 생기고 하루 종일 땀에 젖어 저녁이 되어서야 씻기도 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좌) 아르헨티나 고속도로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다가 레인커버도 없이 텐트에서 잔날.결국 비가옴. (우) 엄마와 나, 내가 흰옷만 입었던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참 잘하는 사람들은 독일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독일인들의 여행을 유심히 봤던 것은 스페인에서였다. 10대 후반의 고등학생 세명이 까미노 산티아고를 온 것이었다. 그 당시 17세, 18세 정도였던 것 같다. 종일 걷고 저녁을 같이 준비해 먹은 후 식탁에 앉아 서로 여행에서 느낀 점, 역사 등을 토론하는 모습이었다. 그냥 토론이 아닌 책을 펼치고 메모장에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필기하거나 그 사람이 말한 다음 할 말들을 정리하는 모습에 경악했다. 너무나 배울만한 점이 아닌가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이후 세계 어디를 가도 독일인은 정말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항상 여행 중이고 여행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독일인들. 또 그저 어디엔가 ‘방문’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역사를 배우고 그들의 삶을 깊게 들어가 보는 모습에 감명받았고 나의 여행은 그들을 닮아가고자 노력했었다. 남미에서의 여행은 나에겐 너무 먼 와 닿지 않았던 세계사를 공부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고 까미노에서는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을 만나며 그들을 알아가는 시간들이었다.


 나는 언어에는 참 약한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내내 어려움을 겪었던 과목은 국어와 영어였다. 국어는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답이라 항상 그들이 말하는 ‘모범답안’을 찾는 것에 어려워했고 영어는 새로운 언어를 자연스럽게 가 아닌 문법, 읽기 등으로 배워가는 것이 어려웠다. 특히 영어의 필요성에 대해 이해하지 못해 배우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수학에 아주 강했던 학생이었는데 원인과 결과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어는 항상 ‘왜?’라고 물으면 선생님들은 ‘그냥 외워’라고들 하셨다. 새로운 언어를 배워본 적이 없었기에 새로운 언어라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여하튼, 랜드마크에 큰 관심이 없는 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듣고 말하고 교류하는 것을 더 좋아했기에 언어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 영어는 그렇게 20대가 되어서 여행을 하면서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 여행을 할 때 길거리 벼룩시장에서 저렴하게 산 불어로 된 나의 최애 오스트리아 작가 에곤 쉴레의 작품집을 샀을 때도 내가 프랑스어를 배울 것이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언젠내가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그런 날이 올까? 하고 0.2초 정도 계산하며 생각은 해보긴 했다. 세네갈에서 살면서 프랑스어를 익히고 상상해보지 못한 월 로프 어를 프랑스어로 배우고 이제는 브라질 남자 친구 때문에 간간히 인사 정도를 포르투갈어로 하게 되었다. 남미 여행을 하며 간단한 인사와 말도 안 되는 문법으로 내가 부르는 노래의 설명 정도는 했던 것 같다. 세상에서 언어 배우는 것을 제일 어려워했던 내가 이렇게 많은 언어들을 접하고 익숙해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여행하며 사람들을 만난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언어를 배우며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 또 있었다. 브라질에서 알렉스 친구들과 바에서 맥주를 한잔 하고 있던 찬라였다. 한 흑인이 우리에게 다가왔고 포르투갈어로 알렉스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물건을 팔러 온 것 같았다. 막 세네갈에서 온 나는 그가 세네갈레일 수도 있겠단 생각에 그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는 “세네갈”이라고 답했다. 그 순간 나는 월로프어로 그에게 인사를 건넸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라 했고 그 세네갈레는 나를 귀신 보듯 봤다. 포르투갈어도 못하는 한 동양 여자애가 브라질에서 아프리카 부족어를 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않았을까. 여전히 알렉스의 친구들은 나를 ‘어마 무시한 여자 친구’라고 한단다. 여행을 하다 보면 전 세계가 연결되어있고 언어로써 연결고리를 만들어간다는 것이 내가 언어를 배울 수 있게 해 준 흥미 중 하나였다.


 나는 휴양지 여행도 안 해본 건 아니다. 내가 꼽는 최악의 여정 중에 미국 올랜도에 있었던 것이다. 대학시절 교내 논문 분석대회에서 상을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해 올랜도 플로리다 주립대학의 로젠 컬리지에서 여름학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올랜도는 정말 늙은이의 도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씨월드도 있고 유니버설 스튜디오, 디즈니월드가 있어서 놀이공원으로 아주 대표적인 도시이지만 나에겐 너무 무료한 시간이었다. 그때 쿠바나 자메이카를 가지 않았던 것이 이렇게나 후회가 될 줄이야. 여하튼 플로리다에서의 여름휴가 때 어디에도 가지 않고 물놀이를 하고 맛난 걸 먹으러 다니고 그것이 전부였던 것이 지금까지도 너무 아까운 시간으로 기억이 되는 것 같다. 내가 가장 선호하는 여행은 역사를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현지인들에게서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 함께 지내보는 것이다. 가장 나를 배움을 많이 주고 성장하게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얼마 전 서쪽 상페드로를 다녀오고 나서 부소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은빈씨는 여행을 많이 다녀서 그런가 멀리 가는 게 무섭지 않나 봐요” 나 또한 겁이 아주 많고 무섭다. 하지만 배낭여행을 하다 보면 사람들과 쉼 없이 떠들고 수다를 떨게 되고 결국 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상대방을 다르지 않고 같은 사람으로서 대하면 그들 또한 내가 ‘외계인’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받아들이고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친구들(로컬)의 보호 속에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게 된다. 사실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기 전엔 세상 두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막상 그 삶 속에 들어가 보고 나면 별게 아니었고 혼자가 아님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그들 삶 속에 들어가는 것, 그것이 내가 여행에 있어서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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