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로부터 나오는 생각5
줄곧 올곧게 살아가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가치있는 일인줄 알았다. 마음이나 정신 상태 따위가 바른 것, 줄이 반듯하고 완전하거나 제대로 되어있다고 표현하는 '올곧음'은 나의 삶의 척도가 되었고, 진심을 다하는 것 혹은 전심을 다하는 것이 사람 앞에 가장 귀중한 일이 되는 줄 알았다. 올곧은 진심이란 진실 앞에서 가장 빛나기에 진실이 없는 곳에는 진심이 없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되물었다. 진심은 무엇이고 진실은 무엇일까. 나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타인의 그름을 지적해야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삶일까? 내가 진실하고 싶다는 가치관에 따라 상대의 거짓을 부각시키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일까? 나의 주관과 기준에 부합하기 위하여 그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 과연 올곧한 삶일까. 어쩌면 진심을 다한다는 변명으로 주변을 볼 수 없게 만들고, 진실하다는 것이 상대의 아픔을 무시한 채 고통을 주며, 올곧다는 헛된 기준으로 인해 상처를 낼 수도 있는데, 과연 이 모든 것들이 올곧다는 말에 부합한 행동들일까.
나는 그동안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자부를 하며 살아왔다. 내가 무슨 색깔을 좋아하는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관심을 갖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 이런 것들이 진정 나를 아는 힘이었을까?, 알고 있다는 착각이었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잘 안다는 헛된 생각이 '어떠한' 테두리를 만들어내 그 '테두리'에서 조금이라도 엇나가지 않으려는 강박이 생긴 것만 같았다. 가령, 봐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게 눈을 가리고 있었고, 해야 할 용기를 내지 못하게 묶어두었고, 나의 갖잖은 기준을 들이밀며 상대를 이해하려는 시도 조차 하지 않았던 것만 같았다. 즉, 내가 세운 기준에 상응하려는 행동을 통해 '성취'라는 감정을 맛보려다가, 결국 자아도취에 취하여 유함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딱딱한 것은 보이기에는 단단해보이나 단 한순간에 뿌러지기 쉽상이다. 세상에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생각일 뿐이지 옳지 않는 일들이 태반이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의로움을 가질 수 없도 없고, 그 누구도 의로워질 수도 없다. 받아드림과 수용의 자세에서 인간들의 삶이 지속되는 것이고, 이해의 교류 속에서 사람과 삶이 움직이는 것이다. 올곧은 것이 틀렸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올곧음은 분명 경의로운 것이다. 다만 올곧음이란 동경으로 인해 자신을 가두는, 냉랭한 마음으로 사는, 그러한 딱딱함을 갖지 않길 바란다. 내 자신에게 말이다. 되려 앞으로 더욱 '올곧으며' 견고해지길 바란다. 그 안의 부드러움과 기다림을 함께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이 역시 내자신에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