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움에서 따뜻함을 느낀 적이 있는가? 유년 시절에 지방에서 올라온 나에게는 서울이란 어려운 도시였다. 아니 차가운 도시였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과 끊이지 않는 교통체증 그리고 언제나 달리고 있는 큰 쇠, 지하철이 있는 모습을 보면 차갑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서울에 올라온 건 겨울이었다. 전시를 좋아해 무작정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 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나의 목적지는 예술의전당. 서초역 2번 출구였다. 혼자 지도를 보고 노선도를 보며 2호선에 안착했다. 너무나 긴장을 한 나머지 목적지가 정해진 열차에 타니 긴장이 풀렸다. 차가워 보였던 지하철의 의자는 나를 녹아버리게 만들었다.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떠보니 두 정거장 지난 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흐르고 있었다.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열차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내선 순환 열차에 타서 같은 곳을 돌아가며 계속해 잠자리에 들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본인을 깨워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각자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때의 나의 몸은 따듯했지만, 마음은 차가워졌다.
서초역에 도착했다. 밖이 온통 새하얗게 변했다. 마음이 차가워져서 그런지 하늘도 차가워졌다. 버스를 타고 가야 했지만 언제 도착할 지 모른다는 기계의 화면이 나를 마주해주고 있었다. 나는 눈을 뚫으며 걸어가기로 했다. 눈이 나의 모자를 때리는 소리가 들리다 갑자기 조용해진다. 옆으로 보니 한 여성분이 자신의 우산을 씌워줬다.
― 감기 걸려요
누군가의 말소리가 내 귓가에 도착했다. 뒤돌아보니 검은색 긴 코트를 입은, 검은색 장우산을 쓴 여인이 보인다. 갑작스러운 호의에 나는 당황한 나머지 웃음만 나왔다. 당황한 나를 보며 그는 눈웃음을 치며 나의 행선지를 물었다. 말이 잘 나오지 않아 가려는 곳의 방향을 찾으며 두리번 거리는 나를 보며 나의 행선지를 알아챈 그는 나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자신과 같은 방향이라고 하며 나를 이끌었다.
― 어디에서 오는 길이에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속셈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의심도 잠시 내가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는 나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어주고 있었다.
― 저도 그랬어요.
나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한 말이었다. 그 순간 우산 밖 세상은 차갑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전쟁터 같았지만 우산 안은 나에게 있어서 따뜻한 동굴보다도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녀와 대화를 하다보니 멀던 길도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 꼭 또 마주해요.
한 마디하고 그는 사라졌다. 차가운 도시 속에서도 따뜻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치열한 삶을 살다 그렇게 원하던 미술관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의 따뜻함을 잊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그를 다시 마주하고 싶어서 일까? 눈 오는 날에는 언제나 골프 우산을 들고 서초역 2번 출구를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