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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elsilvere Nov 12. 2015

Can art change the world?

#2.무의 영역과 유의 영역



소란스러운 주일 오후 스타벅스의 풍경은 변함이 없다.

사랑을 속삭이며 떨어지지 않는 연인들

무언가에 몰두한 채 시선 한 번 돌리지 않는 사람들

온갖 잡다한 이슈로 끝도 없는 대화를 이어가는 여성들

그속에서 나 역시도 숱한 단어를 뱉고 있었지만

그런 내 눈에 띈 두 명의 남자 그리고 그들의 대화는

공간의 한계와 언어의 한계를 뛰어 넘어

그들만의 영역에서 그들만의 몸짓으로 언어를 전달하고 있었다.


빠르게 느리게 강력하게 때론 부드럽게

손가락의 움직임도 손 끝의 유연함도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표정과 실제로 단어를 내뱉는 것처럼 움직이는 입술

듣고 있다는 듯 또렷해 보이는 귀

너무나 잘 보여 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 눈빛

그들은 온 몸을 이용해서 말하고 있었다.

단지, 음성을 사용하고 있지 않았을 뿐.


나는 그들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그들의 움직임과 동작을 자세히 바라 보았다.

손가락으로 연필을 집어 올린 뒤,

새하얀 종이에 정성스럽게 써내려 가는 것처럼

그들의 손 끝은 날카로웠지만 부드러웠다.




예술가들에게 무의 영역과 유의 영역은 로스코 그림의 경계처럼 모호하다.

그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자본에 유익한 행위를 해야만 하고

자신을 위해 무형의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한 무의 행위를 의식적으로 행한다.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나는 그러하다. (나는 예술가인가?)


현대무용을 보면 볼수록 몸으로 대화하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소리를 몸으로 표현해 내는 사람들과

대화를 손가락과 눈으로 풀어내는 사람들의 경계에 서서

모든 감각을 온전하게 소유한 나는

무엇을 세상에 가지고 오는 사람인가?



Yves Klein


이 그림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어떠한 용도로 혹은 어떠한 이유로 혹은 어떠한 도구로 이러한 그림을 그린 것 같은가?

이 그림은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Yves Klein의 Interactive Art의 한 장면,

마치 랩탑으로 영화를 보다가 딱 좋아하는 장면을 캡처해 소장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의 작품이다.

이브 클라인은 본인의 사유를 색으로 표현했다.

동시대를 그리는 다른 작가와는 달리 기술적인 장벽을 뛰어 넘어 본인만의 색을 재창조 했다.

블루, 시대의 날카로움을 상징하는 그 블루는 그만의 블루 IKB_International Klein Blue

를 만들어 냈고 색의 창조에서 멈추지 않고 그는 또 다시 다른 것을 또 다른 무언가를

재창조 해냈다.

바로 이렇게-





 또렷하진 않지만 1962년, 그 시절 그는 이러한 것을 만들어 냈다.

여성의 나체는 도구였으며 그들의 움직임은 너무나 당연스럽게도 우연해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댄디한 정장을 차려 입은 연주자들은 모두 남성으로 채웠으며

은빛의 차가운 Flutist가 유난히 눈에 띈다.

차가움과 남성의 결합에 더욱 차가운 블루에 뜨거운 피가 흐르는 여성의 나체를 뒤섞어

적절한 체온을 만들었고

벗은 여성과 입은 남성의 대조를 통해 또한 적절한 의상을 갖추었다.

퍼포먼스가 시작되기 전, Overture를  통해 거대한 오페라가 곧 시작될 것 같은 장엄함을 보여준다.

보는 내내 흡족한 그녀들의 몸짓은 여성인 나에게도 미적인 충만함, 입꼬리가 씨익 올라가는 효과를 준다.


색 + 퍼포먼스 + 음악 + (회화적 요소 충만한) 작품 한 점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그는 동시대를 살아내는 아티스트들 보다

앞서가는 예술가이자 본인의 그림을 너무나 잘 파는 사업가였다.



사유를 위한 사유를 하고 있는 요즘이다.

불가결한 요소로 둘러 싸여있는 곳에서 견디며

불필요한 모습을 갖춘 모든 것들을 배척하지 않고 수용하며

사적인 욕망은 마음 깊숙히 담아놓고

공헌을 위해 살아가는 척 지내는 과정이라

무의 영역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하지만

유의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 다면

무의 영역 역시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모든 것에 있어 자유로울 순 없지만 최소한

정말 최소한의 것에서의 억압을

최소화 할 방안이 필요하다.

온 몸을 벗어재낀 채

우아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그녀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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