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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elsilvere Dec 13. 2015

La Traviata, 라 트라비아타

부질없는 사랑의 서막 , 국립오페라단 




 안나 네트렙코, 비올레타인 그녀.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화려한 삶을 추구한다. 매일 밤, 파티를 연다.
그리고 그곳에서  활짝 핀 꽃처럼 언제나 아름답다. 

모두가 돌아간 뒤, 술에서 깨어난 뒤 홀로 남은 빈 방에 앉아 

외로운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깐. 

밤이면 사람들은 파티를 하기 위해 찾아오고 

술과 노래와 춤과 남자와 여자가 뒤섞여 세상의 전부를 얻은 것처럼 

마셔댄다. 


비올레타, Violetta 그녀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술에 젖어 사는 밤의 향락을 믿을 뿐이다. 

그런 그녀를 남몰래 흠모하는 알프레도는 

어느 날, 갑자기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의 사랑을 의심하고 밀어내지만 결국,

 그녀는 

누구나 언제나 어떤 여자든 그렇듯 

더한 사랑으로 그를 받아 들인다. 


무대장치, 효과, 조명, 완벽한 호흡_ 국립오페라단 2015ver. 


파리 근교 별장에서의 밀애를 즐기던 그들은 

알프레도 아버지의 반대로 멀어지게 된다. 

아니, 아버지의 부탁으로 그녀는 그를 위해 사라진다. 

그녀의 부재를 

원래의 화려한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으로 오해한 알프레도는 

그녀를 찾아 파티에 나타나게 되고 비열하고 치졸하게 그녀를 조롱한다. 

비올레타,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받아 들인다. 

그의 보모처럼 그를 달래고 그의 화를 기꺼이 안아준다. 

그녀는 그를 위해 다시 사라지고 숨어 지내며 

얼마 남지 않은 재산과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유지하며 

알프레도만 기다리며 살아간다. 

이상하게 밝은 그 날, 

알프레도는 그녀를 찾아왔고 

오해를 풀기 위해 달려온 아버지와 함께 등장해 

그녀의 죽음을 지켜본다. 

그리고 그녀는 빛과 함께 쓰러진다. 


대략의 줄거리는 여기까지-





정말 오랜만에 오페라를 보러 갔다. 

내한공연 아니면 보지 않고 한국에서의 오페라는 뭐, 

기회가 생겨도 보러 가지 않는 편이었다. 

콘서트도 되도록 가지 않는 편인데 그 이유는 

기대에 비해 떨어지는 음향,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관객수준 등등 

시간 대비 쏟는 에너지를 따지면 차라리 차 안에서 음원을 듣는게 낫다. 

라는 결론으로 맺어지기 때문이다, 항상. 

하지만 내가 라트라비아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초대해준 그녀와 함께 모처럼 오페라 하우스로 향했다. 

예술의 전당은 언제나 기분이 좋아진다. 

뭐랄까, 살아 있다는 느낌을 인지하게끔 한다랄까? 그런.


겨우 구한 티켓 덕에 3층에 앉아서 공연을 봐야 했지만 

콘서트홀의 3층보다 훨씬 편안했고 아늑한 느낌이었다. 

오히려 뷰가 더 좋았다랄까- 

박스석에 앉아 보고 싶다. 왜 우리나라는 박스석을 오픈하지 않을까? 


워낙 좋아하는 작품이어서 흐름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 국립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는 시작부터 강렬했다. 

커튼이 올라가자마자 눈에 보이는 정지 상태의 배우들은 

아...하는 탄식이 나올만큼 완벽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마담투소에 온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랄까? 

무대장치, 동선, 아리아의 호흡, 앙상블의 호흡, 무엇하나 나무랄 것 없이 완벽했다. 

극 중간, 마법사들의 등장은 좀 의아해 할 수 있는 scene이었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것이 날렵했고 매끄러웠으며 극적인 슬픔을 안고 있었다. 






재미없으면 다음 인터미션에는 나가서 커피나 마실까요? 라고 말했지만 

끝까지 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선, 다음 무대를 기대하게 만든 연출자의 수려함이 있었고 

사랑의 부질없음을 노래하던 여자(비올레타)의 변화_진정한 사랑에의 몰입 

가 있었으며 

본인의 사랑에 빠져든 채 현실을 망각하는 멍청한 남자(알프레도)의 모습이 

연기가 아닌 현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 사랑은 부질없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단어가 띄고 있는 색은 무색에 가깝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지만 지나고 나면 그 무엇도 남지 않는다. 

첫 눈에 반해 일 년 넘게 흠모하던 그녀를 얻는 그 순간, 그는 행복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뒹굴거리며 몇 달을 살아가는 동안 그들은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부재를 그녀의 배신이라 생각했고 

그런 그녀를 진심으로 그리워하고 안아주기 보단 배신자라며 조롱하기 급급했다. 

그녀는 그녀를 찾아온 그의 아버지의 몇 마디로 인해 그를 떠났다. 물론,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이지만 

떠나는 행위 자체가 주는 막역한 서운함은 그와 그녀를 괴롭게 했다. 

죽어가면서도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주는 이 사랑의 증표를 보며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가 나타나면 꼭 말해 주세요.

내가 당신들을 위해 하늘에서 기도하고 있다고" 


얼마나 멍청한 사랑인가? 

사랑하는데 어찌 떠나갈 수 있었는가? 

사랑하는데 어찌 멀어질 수 있었는가? 

남자의 사랑은 힘을 쓸 곳 없어 뛰어 다니는 망아지와 같은 그 무엇이었고 

여자의 사랑은 낳아보지 않은 아들을 낳은 듯 보듬어 안는 보모의 무엇이었다. 

그녀가 죽었으니 그는 당연히 슬퍼 할 것이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더욱 진정한 사랑을 찾아 조심스레 걸어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것이 인간의 본능, 

아닌가? 





라트라비아타를 보고 나면 항상 남는 배아픔이 있다. 

제대로 식사를 해도 허전한 구석이 있는 것처럼

분명, 사랑이야기를 장장 세 시간 넘게 앉아 

그 어느때보다 더욱 더 깊은 몰입을 하며 봤는데 

무언가 끝나지 않은 듯 허전해진다. 

어제도 그러했다. 


할머니가 되어 라트라비아타를 다시 봐도 

아마, 

먹먹해지는 가슴을 잠재울 방법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지나간 사랑은 저렇게 허름한거구나. 

맞아, 그랬지. 하고 웃어 넘기는 게 

평화로운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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