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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elsilvere Jan 07. 2016

Every Thing Will Be Fine.

에브리 띵 윌 비 파인




Every Thing Will Be Fine.

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난 저 영화를 봐야겠어! 라고 이야기 했고

그 소소한 말을 잊지 않은 친구 덕분에

상영관이 몇 없음에도 불구하고

코가 흘러나와 영화 보는 내내 휴지로 코를 닦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영환 내 2016년 첫 영화이자

올 해 최고의 영화가 될 것이라는 걸

오프닝 장면에서 알 수 있었다.



한 남자가 눈을 뜬다. 그의 방은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크기이다.

그가 바라보는 창 밖은 추위와 적막함이 맴도는 눈 쌓인 어느 시골이다.

햇빛에 반사되어 둥둥 떠다니는 먼지를 보며

그는 노트를 꺼내 들고 무언가를 끄적거린다.

그리고 담배를 피기 위해 문을 열고 나간다.

라이터를 찾지 못하자 그는 담배 대신 전화를 건다.

그의 와이프에게.

이 장면에서 난, 남자에게 여자란 라이터가 없을 때 번호를 눌러 별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는

그런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아주 잠시 했다.

만약 라이터가 있었다면 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담배를 태웠을 테고 잠시 그녀를 떠올리기만 했겠지.

그녀와 그의 감정의 골은 깊다.

남자는 글을 쓰고 싶어 하고

여자는 애기를 갖고 싶어 한다. 그 평범한 일상이 남자의 목을 옥죄어 오기 시작한다.

모든 곳에서 모티브를 얻는 그 남자는

무엇보다 자극적인 소재가 필요했을 것이다.

공사 중 돌린 차로 인해

그리고 눈이 한가득 쌓인 길을 헤치고 가며

집착하듯 걸려오는 여자의 전화를 받기 위해

잠시 망설이지만 이내 받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는 순간

눈썰매가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을 보고 만다.

그는 눈썰매에 타고 있는 아이를 치게 될까?

영화는 극적인 묘사를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다.

단지, 음악의 흐름과 이미지를 잘라 붙여 놓은 것 같은 편집으로

보는 내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든다.

그래, 그렇다.

내가 긴장하는 것이 아니라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관객을 몰아가는 것이다.

모든 것에 대한 묘사가 그렇다.

빛을 받는 사람의 표정도

현상을 투영하는 실재하는 인물의 에피소드도

흰 눈이 쌓인 언덕에 봄날, 싱그럽고 푸른 언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잃은 엄마의 슬픔과

동생을 잃은 형의 별 생각 없음 _그는 그저 본인이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실소하는  듯하다.

자극적 이벤트로 인해 글의 메타포가 달라진 작가,

그가 놓고 싶어 하던 그녀도 갑작스럽게 사라지고

몇 년 후, 몇 년  후,라는 자막이 흥미로울 만큼

매력적이다.




그는 그들이 잃은 삶을 살아간다.





소설가로서 성공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평범한 안주를 할 수 있는 본인의 지지자와 함께 가정, 아닌 가정을 꾸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의 딸의 손을 잡고 놀이동산에 가는 평범한 남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며

모녀를 품에 안고 행복한 웃음을 짓기도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아?

라고 묻는 친구에게

 "응,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아. 이 영화는 이대로 끝이 날 거야."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느 영화와는 달리

억지스럽지도 화려하지도 기교를 부리지도 아름답지도 순수한  척하지도 않고

날 것 그대로 삶에 대해 사유하며  이야기하기 때문이었다


마치, 발가벗은 몸을 그대로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근데, 그 발가벗음이 수치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은은한 빛을 받는 진한 올리브색 소파 위에 누워 있는

실루엣만 반사되는 여인 같은 느낌!




삶은 순간의 연속이다.

어느 날, 사고를 내기도 하고 사고가 나기도 하며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괴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죽음에 직면하는 우연의 순간,

좌절처럼 느껴지던 삶의 회한이

나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바라다보면 어느새

그렇게 가고 있는 날 발견하는 것이다.

흰 눈이 쌓여 있는 해변가에서 바라보는 망망대해처럼

파랗게 보이는 바닷물이

손에  한 움큼 쥐어보면 투명한 것처럼

이상하리만큼 역설적이고

역설적이기에 흥미로운  것이다.



겨울이 지난 어느 여름날,

잘 차려입은 남자는 출간 기념회를 연 뒤

그가 사고를 낸 장소를 찾는다.

그곳에서 또 다른 그녀를 만나고 그녀와의 산책 속에

"무엇이든 하겠노라" 말하고 떠난다.

그녀는 새벽에 그에게 전화를 걸기도 하고

119 부르듯 그를 늦은 시간에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포그너를 좋아하냐 물으며

읽고 있던 책을  갈기갈기 찢어 벽난로에 넣는다.

난 그 장면에서 피식 웃어 버렸다.

포그너를 좋아하냐 물으며 아마도 넌 포그너를 좋아하지  않지?라고 묻는 그녀의 질문이

 꼭 나를 닮아 있기 때문이었다.

윌리엄 포그너의 '음향과 분노'를 집 앞 도서관에서 다섯 번 정도 빌린 것 같다.


폴 오스터가 자주 언급하는 포그너의 문체를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악어 고기를 먹는 것처럼 낯선 포그너의 필체는

아무리 곱씹어도 삼킬 수가 없었고 시공간을 초월한 그의 문장들은

도저히 삼켜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빌리고 반납하고 빌리고 반납하고를

반복했지만 여전히 포그너의 글은 내가  읽었다.라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아무튼 그녀는 포그너를 좋아하냐고 그에게 묻고 마구 찢은 책을 태우는데

그 책이 누구의 책인지 (그 혹은 포그너 혹은 제 삼자) 영화는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너네 멋대로 생각해.

_실제로 나는 그의 책, 친구는 포그너의 책일 거라 주장했다.







그는 그대로 그녀의 가정은 그녀의 가정대로 주변인들은 주변인대로 흐르듯 살아간다.



세월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빨리 흐르고

어린 아가였던 아이는 성장해 그의 책을 읽으며 스토킹 하듯 그를  쫓아다니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살벌한 결말이 났다면 (그 아이가 성장해 동생을 죽인 그를 죽인다던지, 자살한다던지)

아마  재미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전개해 온 꾸밈없는 흐름의 맥을 깨는 결말이었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영화는 그냥 그대로 끝이 난다.

스토킹 하듯 쫓아온 그의 집, 그의 침대에 오줌을 싸고 숨어 있는 아이를

나무 뒤 어딘가에 얹혀 놓고 (실제로 카메라 앵글이 그리하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이미 인지하고 있는 한 남자의 관점에서

마지막 이야기를 펼쳐간다.

그를 사모, 동경, 어쩌면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르는 어른 속 아이에게

마음의 문 같은 현관문을 열어 놓고

홀로 텅 빈 식탁에 등지고 앉아 그를 기다린다.

집 나간 강아지가 작은 구멍으로 들어오듯

망설이며 들어온 소년에게 콜라를 주지만 그 소년은

다 큰 어른이라는 듯,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신다.


그리고 아침이 되었고 새가 지저귀는 초록잎 무성한 곳에서

그들은 형제인 듯 서로를 꽉  끌어안는다.

잃은 아버지와의 재회,

잃은 동생과의 재회,

잃은 과거와의 조우를 그리듯 그들의 관계는 시작도 끝도 아닌 정점에 놓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 오랜만에 아주 어려운 영화를 보고 있구나.

라고 생각할 만큼

쉽지 않았다.

사춘기, 그 예민한 시기에 친구가 숨겨놓은  일기를 들춰본 뒤

홀로 구석에 앉아 친구가 좋아하는 교회 오빠와 내가 좋아하는 교회 오빠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것처럼

남이 써놓은 하지만 나도 공감하고 있는 무언의 감정을

알아버린 것 같아 110분 간의 러닝타임 내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오르셰를 다녀온 뒤 느꼈던 먹먹한 감정,

무수히 많은 아름다운 작품을 한 순간, 두 눈동자로 바라본 뒤

가슴을 조여 오는 아름다움에 대한 죄의식 비슷한 감정을

끝도 없이 곱씹으며

생에 대한 막역한 감사를 느꼈다랄까?



어쩌면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가 보는 현상과

그가 체감하는 상황의 적절한 부조화가

마치 내 것인 양 느껴졌기에

이 영화가 더욱 특별하게 보인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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