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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elsilvere Mar 31. 2016

한국인의 초상

27개의 몽타주


"아들, 강남 가서 잘 살아! 희뿌연 막걸리처럼 살지 말고
투명한 앱솔루트처럼 살아! 앱솔루틀리!!!"

핫핑크의 향연, 프로그램북


나는 한국인이다.

1985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대구, 수원, 화성, 충남 각지를 떠돌면서 20년의 세월을 살아냈다.

모든 게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는 계절이 바뀌는 냄새를 거름냄새, 논을 태우는 냄새로 알아차렸고

사랑에 목말랐던 이십 대에는 도시와 건물의 사이를 오가며 커피를 처음 마시고 처음으로 소주를 입에 대고  

와인을 사기 시작했으며 당시 연인의 손을 잡고 거리를 누볐다.

몇 년 되진 않았지만 삼십 대가 된 지금은 하고 싶은 건 대부분 할 수 있고 사고 싶거나 갖고 싶은 건

대다수 소유할 수 있다. 풍성하진 않아도 기본은 있고 사실, 나이 먹으면서 물욕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남 부럽지 않은 집과 차와 가정과 가방과 핸드폰과 펜과 노트와 헤어 스타일과 신발과 커피를

갖고 싶은 욕망은 여전하다.

무엇을 위해 "그것"을 욕망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냥, 욕망을 욕망하게 되기에 그러한가 싶다.


거리를 걷는다. 오늘 아침에도 집 앞에서 그러한 현상을 보았다.

허리가 잔뜩 휜 할아버지는 본인의 키보다 훨씬 높은 무언가를 잔뜩 쌓아 올린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간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가 붙어 있는 동네에서 아이들은 등교하며 해맑게 웃고 있고

겨울에서 벗어난 봄이 활기찬 아침이었고

산만한 대기에 새소리가 섞여 있는 그런 아침이었다.

그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아 보이는 손수레를 끌고 나보다 작은 보폭으로 갓길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의 50년 전을 회상해 보자.

1960년도 정도였을 것이고 그는 지금의 나보다 어린 청년이었을 것이다.

꿈과 미래, 의식주를 위한 노력을 해왔겠지?

하지만 지금의 그는 폐지와 고물을 줍는 노인이 되었다.

그가 노력하지 않아서일까? 아니.

그가 운이 없어서 일까? 아마도, 아니.

한 인간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건 돈이 된다. 노년에 가면 그러한 현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뭐, 돈이 많아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지만 돈이 많은 그들은 적어도 폐지를 줍기 위해

거리를 배회하진 않는다.


모처럼 괜찮은 연극이 있다는 소식에 그리고 엠비규 어스 멤버가 안무를 지도했다는 소식에

단번에 찾아가서 보게 된 "한국인의 초상"은 최근 내 생각을 지배하고 있던 물질 만능주의와

자본에 대한 이야기에 중년 배우들의 연기가 아닌 삶이 녹아있는 사실극이었다.


평소 연극을 찾아보려 하지만 대학로 연극은 시간 비례 아쉬움이 컸고

내한하는 극이나 예술극장에서의 극은 가끔 보긴 했지만

이 연극처럼 중년 배우가 많이 등장하는 아니, 대다수의 배우가 중년 이상인 극은 처음이었다.




여기까진 약 열흘 전에 쓴 글이다. 그로부터 열 흘이 지난 지금, 새로운 관점에서 극을 회상한다.



서울역 맞은편 골목에서 네비는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골목길 한편에 차를 세우고 조심스럽게 동네를 관찰하던 나는 역시나 십 분 정도 늦었지만

그 골목길에서 실을 엮는 할아버지, 미싱을 돌리는 할머니를 보았으며 모처럼 습한 기운 뿜어 내는

세탁소를 구경할 수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었고 유일한 한국인 할머니에게 길을 물어본 뒤

다시 차를 갖고 국립극단을 찾기까지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십 분 정도 늦었고 허겁지겁 달려가

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바로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나는 방금 운동을 마친 사람의 땀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뛰었고 걸었으며 허리를 비틀었고 목을 갸우뚱했다.

갓 태어난 아기를 쓰레기 통에 버리는 비련의 여주인공 만도 못한 현실적 여성의 모습

일자리를 얻기 위해 새벽이면 인력시장에 출근도장 찍지만 나이 많다는 이유로 매일 거절당하는 노인의 모습

가난한 동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아이만 물에 띄워 보내는 비참한 아빠

열다섯, 열여섯. 걸그룹으로 데뷔했지만 기획사 대표의 아이를 가진 채 수술을 해야 하는 소녀

그리고 그 소녀의 부모들의 표정

춤추는 그녀들, 모두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나 나올 것 같은 노인의 백발 그리고 춤 그리고 노래




단, 일주일 파리에서 지내고 왔다.

관광지와 뮤지엄은 대부분 돌아다녔고 많은 시간을 호텔에서 보내긴 했지만

관찰자의 눈으로 바라본 그들의 삶은 우리와 달랐다. 아니, 그들은 항상 그렇게 살고 있었다.

모두가 해맑진 않았지만 진중했고

삶에 대한 고민이 부랑자에게조차 느껴졌다.

방에선 항상 켜놓았던 TV 클래식 채널에 나오는 연주자들의 눈빛은 아, 정말이지 살아 있었다.

그럼,

나는? 우리는? 내 친구들은? 대한민국은?


더 나은 곳에서 살아~ 라며 아들을 떠나보내는 아빠

막걸리보다 깨끗한 보드카 마시면서 살~~~ 아~~~ 알~~~~~~~~~~~지~이이이이~~ 이~~~~~~

100원씩 나눠주는 여자 목사 앞에서 어떻게든 그 돈이라도 받으려고 줄 서는 노인들, 부랑자들

땀 흘리는 그들과 집요한 눈빛으로 지켜보는 나

모든 상황이 너무 열악했다. 메시지도 날것이었고 그들의 숨소리와 땀냄새도

즉각적인 퍼포먼스도 음악도 공간 그 자체 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잿빛을 대변하는 듯 보였다.


우리는 언제부터 삶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 걸까?

우리는 왜, 상실의 시대를 살아 내야만 하는 건가?

나도 알지 못하는 사람과의 비교를 견뎌야 하며

순리를 거스르는 상식 밖의 행동들을 당연한 듯 행하며 살아가는 걸까?


그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화려한 조명은 꺼졌으며

가로등 불빛만이 무대를 온전히 빛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해를 봐, 해를 보라고. 해 봐! 해 보란 말이야! 그럼 다 돼. 해를 보면 다 돼!

라고.



해보라는 말을 단어 그대로 "해"를 보라는 문장으로 이해했던 나는

가로등 불빛 속 어둠을 더듬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나 자신에게서부터

"해봐"라는 문장이 슬금슬금 피어오르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잿빛의 형상이 가득했던 그들의 극은 결국,

해 보면 할 수 있다는 프로그램북의 핫핑크에 가까운 희망을 말하고 있던 것이었고

나의 아빠, 엄마 또래의 배우들이 사우나에 앉아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며

뛰어도 웃을 수 있었던 건

그들의 극이 지금 세대를 대변하면서도 역설적으로는 희망을 뿜어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오늘부터 아니, 열흘 전 그 날부터 다시금 해보고 있는 중이다.

변함없이 우리를 웃게 하는 해를 보며 해보고

기미와 주근깨가 볼에 솟아날지언정 몸에 쌓일 비타민을 위해 해보며 더 많이 걸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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