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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elsilvere Apr 04. 2016

인생은 한 걸음부터

빛의 발자국,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avec 류백희

덕지덕지 붙어있는 불빛들 사이로 자그마한 체구의 여성이 걸어 나온다.

불빛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는 표현 자체 만으로도 억지스럽지만 그녀의 걸음걸이는 더욱

억지스럽다.

빛을 피하는 듯, 빛을 튕겨 내는 듯 골반을 튕기는 그녀의 연속된 발걸음은

일반인의 그것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평소에 사물이든 사람이든 "관찰" 하는 것을 즐기는 내게

앰비규어스의 몸짓은 항상 관심의 대상이다. 볼 때마다

저건 정말 앰비규어스스러워! 라며 감탄하게 되니 말이다.


상주단체가 된 이후로 그들의 안정적인 (예전에 비해) 작업을 보며

나 역시 무언가 벅차고 알 수 없는 감사가 지속되는 요즘이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지만 말이다. 그저, 응원뿐!)


새로운 실험을 한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었지만

일주일간의 여행의 피로와 시차, 귀국하자마자 시작된 여정으로 인해

몸과 마음은 사실 지쳐 있었다. 하루에 두세 시간 밖엔 자지 못했고

당일치기로 김해를 오가며 낯선이 들 앞에서 매 순간이 평가였기에

더욱 그리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함께 하지 못하는 엄마와 이모와의 시간 역시,

내 인생의 중요한 일이었기에 그 모두를 소화할 수 있는 일정을 만들어야만 했다.

결론은 그녀들과 함께 주변에서 점심을 먹고

그녀들이 산책하는 사이 나는 살짝 공연을 보고 오는 것으로!

"엄마, 이모 요 앞에서 차 마시면서 기다려. 아니면 같이 볼래? 좀 난해 할 텐데.."

"괜찮아, 같이 가지 뭐."

하지만 40분이라는 말에 그리고 인생에서 처음 마주 할 현대 무용이라는 것 때문에

그녀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와 동행했고

말 그대로 생애 첫 현대무용을 접하게 된 것이다.



난해하다


라는 표현이 오히려 난해할 만큼 앰비규어스의 퍼포먼스는 언제나 해학적이다.

그들이 꺾는 골반을 한 번이라도 본다면 일반인 누구나 만족스러워할 것이다. 내가 장담한다.

이번엔 조명감독으로 십 년 이상 레퍼런스를 갖고 계신 "류백희" 조명감독님의 지휘 하에

그들의 퍼포먼스가 이어지는 형식이었다.

처음 무대는 말 그대로 빛의 향연 이었다.

잘 계산된 빛이 질서 정연하게 움직였으며 나란한 빛과 서투른 빛이 조화롭게 그리고 오묘하게 섞여 있었다.

"빛"

이라는 단어가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표현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물질은 존재하지 않았고 물리적인 힘 조차 실재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무대 위에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무대 위에서 누군가 춤을 추고 있었다. 바로, 빛이 춤을 추고 있는 것이었다.


빛은 우리에게 말을 걸었고

내가 이런 색을 갖고 있노라, 이렇게 강약 조절 만으로도 난 빛날 수 있노라

말하고 있었으며

빛의 움직임에 맞춰 겨우 공간을 차지하는 댄서들은

무대장치와 인간의 역할이 뒤바뀐 역할극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나이 들수록 더욱 체감하는 것 중 하나가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본다는 것

이다.

그리고 아는 만큼 보이고 볼 수 있는 만큼만 본다는 것 역시

동일하다.


내가 이번, 앰비규어스 퍼포먼스에서 보게 된 세 가지 장면(scene)은

The Life of Tree , Gustav Klimt  1909 "클림트, 생명의 나무"


첫 번째, 클림트의 그림 중 생명의 나무의 '나무'였다.

무대 뒤에서 보이는 조명들의 변화는 마치 클림트 그림을 전면으로 보고 있는 듯한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두 번째, 여자 무용수가 잔잔한 발걸음으로 걷는 scene은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영화 클로저(Closer)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영화 클로저 중 한 장면 "Closer"

바로 이 장면이었다.

물론, 핏빛 같은 붉은 색감이 더욱 자극적이었지만

오브제가 음영이었던 것 역시 비슷했고 슬픔을 안고 있는 듯한 그녀의 실루엣 역시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마지막 scene은

The Pleasure Principle, Portrait of Edward James 1937 Rene Magritte  


마그리트의 그림이었다.

빛이 한 인생을 삼킨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이 그림

그리고 빛을 머금은 그 남자의 정갈한 손 모양


무언가 아름답지 않은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실제로 질문을 하기도 했지만

어둠 속, 아무도 보이지 않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끝도 없이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 이었다.

우린 언제나 빛을 향해 나가고 싶어 한다.

빛나고 싶어 하며

빛나는 것을 좋아하며

빛나는 무언가를 탐내곤 한다.

정작 자신의 빛은 찾지 않고

남에게서 빛나는 무언가를 찾아내려 한다.

하지만 그들은

빛에 속하기 위해 뛰기도 했고

빛의 부재 속에서도 땀을 흘리며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어쩜 그것이

인생이 고단한 이유이며

삶의 보편적 모습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학부 졸업 연주곡으로 쓴 곡 중에 이런 가사가 있었다.

(앰비규어스의 공연을 보고 기억해 냈다는 놀라운 사실!)


내 빛은 어디에 있는가?

로 시작되는 극을 쓴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쓴 극에 등장하는 세 명의 친구들은

서로가 각자 빛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한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그 길을 걷다 보면 네 빛을 네 길을 찾을 수 있을 걸?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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