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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elsilvere Mar 01. 2016

Art Concert/ 아트인콘서트

"작은 변화가 기적을 만든다" , 트레버

연주        #8. Por Una Cabeza “간발의 차이로”

지난가을, 홀로 내려간 경주에서 만난 인연은 해를 넘고 가을을 넘어 살포시 내게 다가왔다.

말 그대로 '워크숍 진행'을 위해 홀로 내려간 1박 2일 동안 만난 KNOC분들은

따뜻하고 정스러웠으며 때론,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의를 듣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기도 하셨다.

떠나기 전 단체 사진까지 찍어 드린 뒤, 다음 주에 진행할 "이병률 시인과의 북콘서트" 가 끝나면

정리해서 보내 드릴게요.  참고하세요. 라며 담당자 과장님과 인사했고 가끔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며

울산에서 잘 지내고 계시는구나, 다음에 안부  여쭤봐야지.라곤 생각했다.

이병률 시인과의 북콘서트는 성황리에 마쳤다. 공무원들과의 협업이 녹록지 않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잘 흘러갔다. 시와 가야금의 조화로움은 가을밤에 잘  녹아들었고

퍼포먼스를 마친 뒤, 늦지 않게 아트 콘서트 제안서를 과장님에게 송부해 드리곤 난 그 회사에서 퇴사했다.

정확히 말하면 정직원으로 계약하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았다.


12월은 바삐 흘렀다. 반 년 가까이 놓고 있던 소소한 것들 (예를 들어 엄마와 꽃시장 가기, 평일 낮 가족과

점심 먹기, 서점에 가서 시간 보내기, 마음껏  늦잠자기)을 하다 보니 몇 주가 금세 흘렀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연말이 지나자 마음은 내 어깨를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너 지금 그럴 때 아니야, 뭐하고 있는 거야? 얼른  움직여야지!라고.

여기저기 나름의 제안서를 보내야 하나? 싶다가도 아직은 준비가  덜됐다는 핑계로 날 다시 의자에 앉히고

그래도 어디든 걸어야 하는 거 아냐? 라며 벌떡 일어나 의자 주변을 빙빙 맴돌기를 수차례.

어느 날,  지난가을  KNOC 담당 과장님께서 카톡으로 "은별 씨,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라고 하셨고

곧이어 울산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급하게 승급자 교육 스케줄이 잡혔는데 한 세션에 아트 콘서트를 넣어 보고 싶다고 하셨고 그  날부터 난,

주말 내내 (하필이면 금요일 낮의 통화였다.)

머릿속을 부유하던 아이디어를 텍스트와 이미지로 뱉어내기 시작했다.

인상주의, 고흐와 드뷔시 이야기, 불가능을 가능케 했던 이야기, 문학 + 음악 + 그림, 이 셋의 조화로움을 위해

20시간 정도를 보낸 것 같다.

하지만 HR이 대부분 그렇듯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 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였기에

우리가 잠정적으로 결정한 책은 '트레버' , 영화 역시,  '트레버'였다.


현악 4중주를 꾸렸다.

작년 ,진성이라는 철강회사에 함께 갔던 바이올리니스트와 통화를 했고

그와 함께 나의 이야기를 들었던 그녀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그들은 금세 원래의 팀을 내게 소개했고 나 역시 그들을 반겼다.

책을 다 읽었다.

구정은 고스란히 독서와 영화를 보는 시간으로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

대략의 프로그램을 짰다.

곡은 총 12곡 정도 연주될 예정이었고 중간중간 책의 장면들을 낭독하는

"특별한 낭독회" 콘셉트가 가장 어울리는 것 같았다.

연기자를 섭외할까? 도 생각했고 성우를 섭외해볼까? 도 생각했지만 예산이 맞지 않았다.

우선은 내 한 몸으로 만족할 수 있는 퍼포먼스를 끌어내야만 했다.

세부적인 프로그램을 짜기 시작했다.

시나리오를  세분화시켜서 쓰기 시작했으며 컷마다 어떤 이미지를  넣을지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어느 정도

결정을 지어야 했다. 그래야 키노트로 작업할 때 수월 할 테니.

연주자들은 메시지에서 조차 매력적이었다.

예술가를 만날 때, 특히나 본인이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이들을 만날 때, 그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너무 맛있고 귀한 디저트 같아서

입 안에 넣기 전 눈으로 보면서 한 번, 코로 향을 맡을 때 한 번, 혀로 맛볼 때 또 한 번, 입 안에 우물거릴 때 한 번, 삼키기 아쉽지만 녹아버린 마카롱 같은 느낌을 느끼곤 한다.

그리고 그 달콤함은 내 기억에 남아 무엇을 하든 미소로 귀결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어찌 됐든 우린. 모두. 경주로 향해야 했다.

편의를 위해 하루 전, 보문단지에 있는 리조트를 예약했고 당일에 가서야 우리가 가야 할 경주가

보문단지에서 40km 정도 떨어진 산  속이라는 걸 알게 됐지만 그것 조차 나, 우리에겐 즐거움이었다.

어찌 됐든 트레버를 소개하는 특별한 낭독회는 내일, 열리게 될 테니 말이다.


 KNOCK TO KNOC

그들의 마음을 두드리기 위해 우린

서울, 경기도, 대전, 부산, 천안. 정말 전국 각지에서 달려갔다.

경주의 밤과 아침을 만끽한 뒤, 여유로운 아침을 함께 먹고 산 속으로 향한 우리는

조금 일찍 찾아온 봄의 기운에 흠뻑 젖어 그저 웃고 있었다.

훈남 비올리스트 석호, 예술가 재현, 우아한 혜진씨, 듬직한 첼리스트 민!


작년 11월, 재현 씨와 혜진 씨와 대부도에 있는 곳에서 아트 콘서트를 진행한 뒤 점심을 먹으며 이런 대화를 한 기억이 난다. 당시, 재현 씨는 2달, 혜진 씨는 파리에서 돌아온 지 2주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예술가로 산다는 거, 쉽지 않죠? 저도 작곡을 전공했고 끊임없이 변해가는 꿈,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거든요. : )

-네, 특히 한국에선 쉽지 않네요.

-그래서 전, 그런 예술가들의 삶이 일반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변화시키는 자극제가 되었음 해요. 그리고 그들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고 싶어서 이 일을 선택한 거고요.

-그럼 저흰, 무엇을 하고 지내면 되나요?

-음... 가을 하늘을 보며 이건 라흐마니노프 피협 2번 1악장 같네, 보라색 향이 나네, 내가 연주하는 비발디 여름,2악장을 들으면서 사람들은 무슨 이미지를 떠올릴까? 뭐 이런 생각? 쉽진 않겠지만 꼭 필요하죠.

-네, 해볼게요.


희미한 대화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난 그들에게 다음 우리의 무대는

조금 더 화려할 것이고 조금 더 멋질 것이라고 약속 아닌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3개월 안에 지켜낸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이번 이벤트는 내게 조금 더

의미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리허설 중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음...내게 무언가 불만을 말하는 것 같다? ㅎ



이유 없이 누군가를 도와준 경험을 갖고 있는가?

배식 순서를 기다리며 한겨울, 길고 긴 줄을 선 채,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주린 배를 채우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해 본 적 있는가?

물론, 나 역시도 그런 경험은 없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본 적은 있다.

어느 겨울, 값비싼 호텔에서의 점심 식사를 위해 운전을 해 지나가던 중

신호대기에 걸려 길에 서 있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줄로 서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몹시 추워 보였고 배고파 보였다.

지저분한 모습으로 대로변에 길게 줄을 선 그들의 눈빛은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보며 신호가 바뀐 것도 모르고 있던 내 옆에 한 사람이 다가왔다.

저 멀리에서부터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온 그 청년은 내 또래처럼 보였다.

양 팔 가득 붉은 고무장갑을 들고 있었고 길가에서 신호 대기에 걸린 차 안 사람들에게

그 고무장갑을 팔고 있는 것이었다.

난 당장이라도 그의 그것을 사고 싶었다.

창문을 내리려는 찰나 나와 같은 또래의 그가 왠지 내게 파는 고무장갑을  창피해할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망설이다가 바뀐 신호에 출발했다.

출발과 동시에 후회했다.

내가 산 고무장갑으로 그는 따뜻한 밥을 먹을 수도 있었을 텐데

지나친 생각에 그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을 오히려 앗아간 것 같다고 생각되어졌다.

여기 한 꼬마가 있다. 그는 오히려 거리의 부랑자를 친구 삼아 집에 데리고 와서 씻을 공간을 주고 함께 아침을 먹으며 자기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어른인 그에게 차비는 있냐고 되묻는다.


로 시작된 아트 인 콘서트는 '냉정과 열정사이' 에 흐르는 음악으로 문을 열었고

시나리오대로 잘  흘러갔으며 두 시간을 꽉 채운 뒤,

아쉽게 그리고 홀가분하고 기쁜 마음으로 막을 내렸다.

"Vn1, Vn2, Va,VC_String Quartet"

함께 간 스텝이 없어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찍지 못했고 제대로 된 영상 한 컷 담아 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재현 씨 연주에 감탄해  마지않는 사람들의 눈빛을 보고

숨이 멎을 것 같은 탱고 음악을 듣기도 했으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꼬마의 메시지에 우리 모두 고민해볼 수 있기도 했고

조금은 보수적인 기업 교육에 예술이라는 콘텐츠를 얹어

인간에게 내제 된 영적인 감각, 본질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심미안을

건드려 본다는 것만으로도

나, 우리, 그리고 모두에게 어느 정도 의미가 전달되는 시간이었음에 그저, 감사하다.


현장에서 듣게 된다면 현기증 나는 그들의 음악 !
Nearer, My God, To thee / 내 주를 가까이 _부흥회인 줄..:-D   타이타닉에 등장하는 음악에 대한 콘셉트였는데.


다음엔 조금 더 좋은 조명 밑에서

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며

더 다양한 본인들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전달하고

또 다른 예술 장르와 융합된 모습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진정한 동기 부여의 시간으로

그들과 함께 할 수 있길 바라본다.

그리고 그 현장에는

내가 사랑하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열정과 마음, 노력과 결과를 마음껏 풀어낼 수 있게 되길 !


기대도 하지 않던 곳에서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처럼

그리고 그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온 것처럼

곧 도래할 다른 일, 기회, 퍼포먼스, 작업, 공연이 생겨나길

오늘 밤에도 무릎 꿇고 아이처럼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잠들련다.


너무 예쁜 안압지 전경은 덤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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