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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elsilvere Apr 25. 2016

이방인의 노래

매 순간 자라는 그녀, 이자람. 



학부 시절 기억나는 몇몇 강사, 교수님들이 있다. 

그중 한 강사님은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한 그것도 국내에서 가장 우수한 서울대를 나온 분이었다. 

딱 봐도 우아했고 말투나 손짓 모든 아우라가 "나 방금 차이코프스키 듣다가 벤츠에서 내린 여자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근데, 그런 그녀의 수업은 "한국 토리" "국악"에 관한 것이었다. 

유럽에서 열린 짧은 여름 캠프에서 다른 친구들이 모두가 "자기 나라 음악"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정작 한국에서 클래식 작곡을 전공한 그녀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고 한다. 

난 이걸 잘 쳐, 난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해, 당연히 지휘는 카라얀이지!라고 말하기 이전에 

"한국은 무슨 음악이 대표적이야?" 

라는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국악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어느새 국악에 빠져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역마다 다른 토리 (멜로디, 가락, 선율을 의미한다)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일을 

했다고 했다. 

넓은 콘서트홀에서 울리는 그녀의 음성과 그녀의 머리카락의 웨이브는 마치, 아르헤리치 같았는데 

그녀가 가르치는 내용은 지역 곳곳에 숨어 있는 _전해지지 않은 멜로디, 한의 정서 

우리의 것들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나의 학교를 싫어했다. 아니, 어쩌면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도피 유학을 꿈꾸기도 했고 아예 관둬야 하나를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많지만 

그러한 고민의 시간 속 남아 있는 몇몇 수업 중 하나는 그녀의 토리 수업이었다. 

그레고리안 선법보다 유수한 우리나라의 우리 선율, 가락은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 해 해금곡을 쓰고 해금 연주하는 친구를 쫓아다니며 연주를 부탁했고 

어찌어찌 연주를 해냈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남아 있는 기억은 온통 오 월 햇살의 먼지 냄새뿐이다. 

수업으로 달라진 것도 없고 당장 바뀐 것도 없지만 그 이후 이어진 미술사 수업, 연극 수업, 미학 수업, 

현대 무용 수업에서 뭐랄까, 나의 예술적 자아가 어느 정도 생겨나기 시작한 것 같다. 

_그리고 지금 난 카라얀이 지휘 한 차이코프스키 심포니 6번의 4악장을 듣고 있다. 


스물한 살, 유럽에 처음 갔다. 

해가 지는 언덕에서 이탈리아 친구는 기타를 쳤고 독일 친구는 묵묵히 사색했고 

스페인 친구는 (친구라기 보단 꼬꼬마 녀석) 뭔가 찾아 헤맸고 

프랑스 친구는 기타 선율에 맞춰 향긋한 춤을 추고 있었다. 

일본인 친구는 내게 물었다. "너 음악 전공이라며, 작곡 전공 이라며? 기타 한 번 쳐봐~"

"아... 나는 첼로는 오래 배웠고 작곡 전공이라 피아노는 치는데 기타는 못 쳐..."

"아?? 그래??" 

지는 해만큼 얼굴이 붉어졌고 너는 대체 음악을 하는 거니?라는 자문이 들긴 했지만 

지금의 나는 여전히 기타를 싫어한다. _아마도 조금 큰 정장을 입은 교빠들이 촌스러운 줄에 매단 기타를 치며 할렐루야~를 외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기타가 싫어진 것 같기도 하다. 하하 

사설이 길어진 것 같은데 아무튼 국악과 나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싫어하고 재미없게 여기던 국악을 93.1 채널 오후 5시면 억지로라도 듣게 되었고 

해금하는 친구 곁에서 우리 소리에 대한 새로운 음색을 배우기도 하며 그렇게, 가까워지는 시간이... 


오랜만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 차에는 지금 생각해보면 상상을 초월할만큼 많은 노래가 담겨 있었다. 

생소한 시절의 에피톤 프로젝트부터 토이 전 곡, 유희열, 조규찬, 루시드폴 등등의 노래가 

흐르는 그 차는 

앉아서 가만히 서너 시간을 보내도 될 만큼 다양한 음악이 허공에 날아다녔다. 

봄 날 이었을 거다. 오늘처럼 먼지 냄새 자욱한 (미세 먼지라는 단어조차 생소한 흙냄새 날리는 어느 봄 날) 

졸업 후 녹음실에서 일하던 나는 산소 공급장치 같던 그 사람의 차 안에서 이런 가사를 듣게 된다. 


길을 잃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길을 잃다
셀 수 없이 펼쳐진 길 앞에서 길을 잃다 
바닥을 알 수 없는 절망에 빠져 길을 잃다
길은 있다 하지만 어딘가에 길은 있다
끝내 내가 그 길을 찾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래도 어딘가에 길은 있다 


El Camino라는 윤상의 곡을 정재일이 편곡한 곡이었다. 

뒷 배경으로 들리는 꽹과리 소리가 아주 명쾌했다. 

길이 없다고 헤매는 사람에게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는 것처럼 

그리고 서양의 것인 현과 전자 기기의 소리

거기에 더해진 한국적인 가락이 아주 심오했다. 

차 안에서 그 곡을 듣노라니 

눈물이 눈물을 머금고 또, 

88개의 건반을 여행하듯 훑는 그의 손길이 느껴져 

음악을 한다며 설치는 내 모습이 낯설고 창피하게 여겨졌다. 


사실, 고 3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김동률의 2집 앨범을 가장 좋아했던 소녀인 나는 

그의 염원과 한국스러운 실험작들을 들으며 

나도 꼭 이런 곡을 써야지! 

라고 다짐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세월이 흐르고 자족하는 법을 몰랐던 나는 그저 

남을 탓하며 상황을 탓하며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아까운 시간들을 

계절처럼 흘려보냈던 것 같다. 


어찌 됐든 나는 그의 곡을 들으며 다시 한 번 찌릿한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 "이사 (移徙), 2002년 " 에 실린 윤상의 원곡을 들으며 

감동이 아니라 도전, 자극, 묘한 희열을 자극받았다. 

지금은 요리하는 남자로 대중은 인식하겠지만 내게 있어 윤상은 

아니, 그의 음악은 도전이고 음악의 결정체이며 음습한 습지에서 갓 피어난 수중 식물과 같은 

생명으로 느껴진다. 그 감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난 되도록 그런 프로그램들을 보지 않는다. 


계속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흐른다. 

마치, 독백처럼 시작해서 인터뷰로 마치는 것 같지만 이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그렇게 국악에 꽂힌 나는 

국악적 요소가 들어간 청소년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며 

국악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깡, 강단에 매료되고 

그녀의 작업을 간간이 도와주며 결국, 그녀를 위한 노래를 쓰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세월은 또 흘렀고 5년이나 지난 뒤, 

우리는 나이의 앞자리가 바뀐 채로 아주 자주 간접적이고 직접적으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다음 스텝을 준비하고 있다. 

꼬마로 보던 그녀 역시도 어른이 되었고 나 역시도 인생의 여러 맛을 다 먹어 본 

이제는 곱씹어 설명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기에. 


"언니, 저 진짜 오랜만에 공연 보러 가요. 부산에서 올라오면 꼭 같이 가요! " 

"그래, 우리 가자. 그나저나 무슨 공연이라고?"

"이자람의 이방인의 노래요. 마르케슨가 뭔가 독일 작가 작품을 판소리로 만들었대요." 

"판... 판소.. 리? (아, 피곤한데...) 그래, 이자람? 그래, 이 기회에 이자람 한 번 봅시다!" 

오랜만에 밟는 예술의 전당 (사실 몇 주 되지 않았지만 지방에 있다 보니 예당이 어찌나 반가운지!) 

은 아주 우아했다. 추위에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팥죽 한 그릇 먹어 주고 슬슬 자유 소극장을 향해 갔는데 

판소리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객석이 가득 차 있었다. 

이자람이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영향력이 정말이지 대단했다. 

무대는 아주 심플했다. 어제 본 잡스의 인도 여행 중 SImple is the Best라는 문장이 생각날 만큼 

간단했다. 마치, 한국의 정서는 여백과 선, 간결한 정갈함.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기타 치는 친구 하나, 소리북 치는 친구 하나, 각각의 의자에 앉아 있고 

두루마기 같은 기나 긴 천을 두른 이자람이 등장했다. 

그녀는 남자 같기도 했고 여자 같기도 했다. 

낮잠 자기 전 읽은 짧은 소설에서 떠올렸다는 그 이야기는 

소리에는 쓰지 않는 위키피디아 같은 단어들이 촤르륵 얹혀 있었고 

1인 3역을 연기하는 그녀의 표정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무슨 말을 해도 소리 하듯 살아온 것이 내 인생이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녀의 표정과 스토리는 그녀 혼자 만들어 냈다고 보기에는 천재적일 만큼 

날카로웠고 따뜻했고 섬세했다. 


하지만 

혼자 비슷한 음색으로 90분 내내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 역시도 50분 가까운 시간 동안 연기하듯 혼신을 다해 스토리 텔링을 하는 입장에서 

집중도를 내내 유지하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사실, 무엇이든 17분 정도가 딱 적당한 것 같다. 그래야 다들 집중하고 끝낼 수 있기에. 

중반부터 나는 슬슬 졸기 시작했고 어느새 잠들었다. 그리고 꿈속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꿈이 많은 소녀였고 무엇을 하든 다른 관점으로 보는 소녀였다. 

향긋한 커피를 좋아해 이탈리아며 프랑스며 바람처럼 떠돌아다녔고 

상상하기를 즐겨하며 항상 소설을 읽었다. 

소설 속 주인공이 되며 희열을 느꼈고 난해한 이야기들을 친구들에게 혹은 가까운 이들에게 

자기식대로 소리로 흥얼거리는 걸 즐거워했다. 

래퍼가 일상을 랩으로 풀어내듯 그녀는 소리로 일상을 말했다. 

문장에 시김새를 넣어 불러 버리는 그녀를 보며 일반 친구들은 유쾌해했다. 

어디에 가나 시김새로 사람 웃기는 재주가 있던 그녀는 외국 친구들도 웃겨 보려고 한다. 

하지만, 한국만의 정서인 한글로 외국인들을 웃기기엔 조금 난해했다. 

그래서 아예 외래어를 본인의 시나리오에 다 넣어 버렸다. 심지어 한복 핏이라는 단어까지도 

합성어로 사용해서 써버렸다. 

소리를 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많이 고민해 보았지만 내가 소리 그 자체라는 걸 알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내가 소금인지 설탕인지 알기 위해 후추를 뿌려도 보고 육개장에도 들어가 보고 

다이아몬드를 핥아 보기도 하고 커피를 마셔 보기도 하며 

어디에 희석되고 어디에 부유하는지 매일 매일 확인해 보았다. 

실험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은 만족했고 어느 날은 좌절했다. 

그러던 어느 날, 늘어지게 낮잠을 자던 어느 날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던 성경 속 인물들처럼 

무언가 반짝하고 뇌리를 스쳤다. 

밴드 활동을 하며 편곡을 경험해 봤고 

완벽한 악보라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쓱쓱 한 번 써내려 가 보았다. 

문장으로 쓴 글은 곧 가사가 되었고 그 가사에 시김새를 넣어 보았더니 

흥미롭더라. 그래서 

기타 친구에게 이런 내용의 화음을 좀 넣어봐.라고 부탁을 했고 

소리북 치는 친구에게 이 부분에서 얼쑤~ 한 마디 해봐. 

라고 말하며 시작된 이방인의 노래는 

현세대를 아울러 가장 실험적이고 완벽에 가까운 

현재를 대표하는 판소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자람은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이자 

한 시대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마치, 인디음악이 새로운 장르가 된 것처럼. 


잠에서 깨니 그녀는 할아버지를 연기하고 있었다. 

눈썹 움직임과 목소리 변화를 배우고 싶을 만큼 그녀의 변화는 다양했다. 

소소한 만족과 잔잔한 감동을 주며 극은 끝났다. 

서둘러 차에 타자 마자 국악 소녀인 그녀에게 물어봤다. 

"너, 이자람 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머뭇거리는 그녀에게 난, 

때가 되면 다 각자의 자리가 생기는 것이라고 그리고 

네가 가진 음색은 그녀보다 훨씬 매력적이라고 그리고 

그녀 역시 너와 같은 시기를 분명 겪었을 것이라고 

씩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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