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ebruary.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고개를 돌려 창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한낮보다 어둡고 아침보단 밝았다.
밤사이 잠시 멈춘 가습기 버튼을 on으로 바꾸곤 희한한 신음소리를 내며 허리에 힘을 준다.
일어나서 둘러보니 내가 살던 공간 그대로 내 옆에 눌려있다.
전신 거울 앞에 스윽 다가가 날 보니 입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여전히 꿈 속인가?
눈을 비비며 화장실로 가 세수를 하고 다시 한번 거울을 본다.
성숙해 보이는 여자의 얼굴이 거울에 비친다.
분명 어제는 새내기였는데 왜 오늘은 결혼을 앞둔 여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
-
습관처럼 캡슐 하나를 기계에 넣고 물이 끓어오르기를 기다리며
고구마를 두어 개 가져와 슥슥 씻고 껍질을 벗겨 썰어 비커처럼 생긴 두꺼운 유리로 만들어진 팟에 넣고 비닐에 넣어 전자레인지에 오분 정도 돌린다.
그 사이 은으로 만들어진 팟에 정수된 물을 넣고 불 위에 올린다. 약한 불을 켜고 커피 머신에 들어온 ready버튼을 확인한 뒤 버튼을 누른다.
16oz 머그잔에 반쯤 담긴 코스타리카 원두로 만들어진 드립 커피의 향이 온 거실에 번진다.
전자레인지에서도 소리가 난다. 두꺼운 티슈 몇 장으로 손잡이를 감싸 쥐고 가지고 와 달궈진 팬에 두른 기름에 물기를 제거한 채 하나 둘 조심스럽게 떨어트린다.
불을 조절하고 끓어 오른 은주전자를 오븐용 장갑을 낀 손으로 들어 올려 커피잔에 비운다.
전기포트가 주는 재빠르게 뜨거워진 물의 느낌이 아닌 수고와 성실함이 온몸에 밴 것 같은 느낌이 나는 물이 잔에 또로로 떨어진다. 그 압력과 텐션이 어찌나 경이로운지 물을 따를 때마다 자랑스럽다.
이젠 고구마를 뒤집을 차례다. 겉이 노랗게 익은 고구마를 티슈를 받친 채반에 하나씩 꺼낸 뒤 불을 줄이고 설탕을 두 스푼쯤 넣고 휘휘 젓는다.
한순간 갑자기 색이 변하며 모든 설탕이 녹아 버리면 고구마를 다시 넣고 휘휘 저어준다. 중국에서 먹던 맛탕의 맛과 완벽하게 같다. 거미줄처럼 실타래를 타고 올라오는 고구마들을 보며 한 번 씩- 웃곤 어디에 담아야 이쁠지 생각하다 투명하고 두꺼운 유리로 만들어진 네모난 오븐용 접시에 담는다.
후후 불어가며 제일 작은 고구마를 한 입에 넣어 보곤 오늘의 맛탕도 성공임에 자랑스러워한다. 그리고 은주전자로 끓인 물을 섞으면 더 맛있어지는 커피도 한 모금하다 피아졸라 음악이 듣고 싶어서 그 잔을 들고 내 방에 와 아이패드와 스피커, 덱을 연결하곤 침대에 앉았다.
오랜만에 맥북을 열고 글을 쓴다. 오늘의 내 모습을 상세히 그려본다. 그리고 더욱 친절한 글을 쓰겠노라 다짐한다. 언제 될지 모르는 작가라는 직업을 얻게 될 날을 고대하며 쓰던 소설을 다시 시작한다.
-
03학번으로 시작했던 나의 새내기, 음악대학, 작곡과 시절의 모습을 더듬어보면
촌스럽고 때 묻지 않은 내 모습이 떠오른다.
학교를 지독하게 싫어했고 강의가 끝나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 바빴으며
20명 정원에 10명은 재수생, 10명은 현역.
그중 30% 정도는 한 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자퇴를 했고 남자는 단 두 명뿐이었다.
키 큰 애 하나, 키 작은 애 하나.
여자들 중 내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수업에 가지 않아도 아무도 날 찾지 않았고 당연하게도 학교에 가기 싫어했다.
눈을 뜨고 가만히 앉아 TV를 보다가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남자 친구를 만나 포켓볼을 치거나 DVD방에서 기억도 나지 않는 영화를 보거나 구석진 자리가 있는 카페에 가거나 했었다.
그땐 내 주머니가 언제나 풍족했다. (뭐, 지금도 부족하진 않다)
시간과 돈을 함께 거머쥔 거만한 노인처럼 살았으며 내일도 미래도 내겐 불필요한 것이었다.
나랑 매일 놀아주던 남자 친구가 군대에 가던 날, 그 아이의 친구들과 함께 진주까지 내려가 엉엉 울던 내 모습. 첫 편지를 받아 들고 빈폴 가방에 한 달 넘게 가지고 다니던 내 모습, 첫 휴가에 너무 반가워 뭘 어찌해야 할지 몰랐지만 너무나 당연히 우리는 어딘가로 여행을 갔겠지.
그 아이와 난 각자 대학의 엠티를 가지 않고 언제나 둘만의 여행을 했었다.
그 여행은 로맨틱하지도 않았지만 지극히 탐닉을 위한 여행도 아니었다. 그저, 함께 떠나고 함께 닿아있고 함께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다.
차가 없어도 웃었고 가끔 엄마들의 차가 있으면 신나게 어디든 다녀왔다.
필름 카메라에 흑백 필름을 끼워놓고 씩씩하게 무엇이든 찍어대던 그 아이의 모습, 지금처럼 밝은 척조차 못하는 내가 아니 오히려 언제나 우울했던 내가 언제나 사랑스럽다던 그 아이의 모습, 김동률과 토이 노래에 빠져 살던 날 절대 이해하지 못하던 그 아이의 모습, 초여름, 그 어느 오후,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어색한 웃음을 짓던 그 아이의 모습,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말에 울지도 웃지도 않던 그 아이의 모습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너무 즐겁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떠한 영감을 주지도 않았고 그저 함께 웃고 놀고 즐겼을 뿐이었다. 가끔 커플티를 입고 가끔 훌륭한 레스토랑에 가며 그렇게…
-
그 시절은 바로 어제 같진 않지만 작년처럼 느껴지긴 한다.
나의 풋풋했던 이십 대 초반의 모습이 신기하리만큼 가까이 있는 것 같다.
서른셋이 된 지금도 뒤돌아보면 등 뒤에 서 있을 것 같은데
십 년도 넘게 지난 이야기가 어제 이야기 같은데
마흔이 돼도 오십이 돼도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든 무슨 이야기든 엊그제처럼 기억하겠지.
주름이 자글거려도 기억만큼은 주름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조금은 씁쓸하다. 어쩌면 그것이 신의 섭리라 할지라도 말이다.
-
생일을 마무리하며 언제나 애매한 나의 이른 봄 생일을 자축하며
글로나마 감정을 감춰둔다.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