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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elsilvere Apr 18. 2017

면도날, 서머싯 몸

The Razor's Edge, W.Somerset Maugham, CH

“거기서 뭘 찾고 싶은데?"
“내 의문에 대한 대답들."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확실히 알고 싶어.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지도. 또 내게 불멸의 영혼이 있는지,
아니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인지 알고 싶어."



나의 바라나시 여행은 말 그대로 우연적 필연이었다.

몰랐던 사람이 아는 사람이 되고 그 아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

끝도 없는 연민과 애정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순수한 우연이었다.

상상할 수 없던 인도의 미지는 나에게 현실로 열렸고

나는 담담히 그 우연을

감내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일주일의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늘 그렇게 만나는 눈에 들어오는 책들을 보다가

인생의 베일, 달과 6펜스를 제외하곤 만날 수 없던 그의 소설이 눈 앞에 다가왔다.

묵직하게 잡히는 책을 들고 침대에 앉은 그 순간부터 나는

일어날 수도 없었고 음식을 삼킬 수도 없었다.


우연히 만난 바라나시가 내 손에 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도하고 본 것이면 차라리 나았을 그의 소설은

내 인도 여행에 당위성을 부여하였고

그 날 이후 나는 인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자가 되었다.



“처음에 인도에 가게 된 동기가 뭔가?”
내가 불쑥 물었다.
“우연히였죠. 적어도 그땐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몇 년 간의 유럽 생활 끝에 치러야만 했던 필연적인 결과였던 것 같아요. 그동안 저한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었죠. 하지만 돌이켜 보면 결국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마치 내가 그들을 필요로 할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죠. 인도에 간 건 쉬고 싶어서였어요. 너무 공부만 파다 보니까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졌죠. 세계 일주 유람선에 갑판원으로 취직했어요. 동양으로 갔다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해서 뉴욕으로 향하는 배였죠. 미국에 못 간 지 5년이나 돼서 고국이 몹시 그리웠어요. 그리고 의기소침해 있었죠.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오래전에 시카고에서 처음 선생님을 뵀을 때, 저는 정말 아는 게 없었잖아요. 그런데 유럽에서 수많은 책을 읽고 많은 것을 봤는데도, 제가 찾는 것에 조금도 가까이 가지 못한 것 같았거든요.”


바라나시에 도착하자, 제 나이 또래의 한 젊은이가 그 수행자를 마중 나와 있더군요. 수행자는 젊은이에게 제 방을 잡아 달라고 부탁했어요. 마헨드라라는 이름의 청년으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사람이었죠. 상냥하고 친절하고 똑똑한 친구라 무척 호감이 갔죠. 그 친구도 저를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그날 저녁, 그가 저를 배에 태우고 갠지스 강으로 데리고 나갔어요. 정말 신나는 경험이었습니다. 강가까지 빈틈없이 이어진 도시 풍경이 더없이 아름답고 장엄했죠.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 보여 준 풍경은 훨씬 더 굉장했어요. 동이 트기 전에 호텔로 데리러 와서는 다시 갠지스 강으로 데려가더군요. 저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했어요. 수천 명의 사람들이 강가로 내려와서 정화 목욕을 하고 기도를 올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 그때 제가 받은 인상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바라나시에서 6개월을 머물면서 몇 번이고 새벽에 갠지스 강으로 내려가 그 기묘한 광경을 보았어요. 그 경이로움은 감당하기 힘들 지경이었죠. 어떤 조건도 없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기도를 올렸던 겁니다.
저는 이 세상이 완전한 존재의 본질이 현시된 것이라면 어째서 그토록 혐오스러울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얼마나 혐오스러우면 인간이 신 앞에서 세울 수 있는 정당한 목적이 오로지 그 삶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될 수 있느냐고 말이죠. 가네샤 씨는 이 세상에서 느끼는 만족은 덧없는 것이며, 오직 무한한 존재만이 지속적인 행복을 줄 수 있다고 대답하더군요. 하지만 끝없이 존속한다고 해서 좋은 것이 더 좋아지지는 않으며 하얀 것이 더 하얘지지는 않죠. 새벽에 아름다웠던 장미가 정오에 그 아름다움을 잃는다고 해도 그것이 새벽에 가졌던 아름다움은 실제로 존재했던 거잖아요.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어요. 그러니 무언가에게 영원한 존속을 요구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겠죠. 하지만 그것이 존재할 때 그 안에서 기쁨을 취하지 않는 것은 훨씬 더 어리석은 거예요. 변화가 존재의 본질이라면 그것을 우리 철학의 전제로 삼는 것이 현명하죠.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순 없어요.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니까. 하지만 다른 강물에 들어가도 그것 역시 시원하고 상쾌한 건 틀림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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