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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라이닝 May 24. 2022

우리는 왜 세상과 멀어지는 걸까

나의 행복회로는 맥주 따는 소리에서부터 돌아간다. 맥주 한 캔 따고 쥐포를 굽거나 과일을 깎고 경건하게 잔에 맥주를 따르다 보면 하루의 피로가 다 사라진다. 이 모든 게 아이가 일찍 자야 가능한 일인데 오늘은 11시가 넘어서까지 안 자겠다고 눈을 부릅뜨고  퍼즐 두 판을 가져왔다. 얘야, 좋아하는 걸 맺고 끊는 줄 알아야 어른이 된단다 ㅠㅠ

이름도 찬찬한 ALE 맥주 출처: pixabay



코로나 덕분에 그리고 육아 덕분에 술집이 너무 가고 싶어졌다. 맘 편히 이자카야에서 꿀떡꿀떡 맥주를 마시던 시절이 그립다. 오뎅 안주에 돌돌돌 소주 따르던 소리도 들은 지 오래. 팀 사람들과 오늘에 대해 이야기하고 부장 뒷담화하면서 어떻게 하면 프로답게 일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던 밤이 그리웠다. 웃으며 화내는 법, 화내면서 웃는 법의 차이는 뭘까를 고민하던 2, 30대가 지나고 이제는 후배들에게 내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밤에 보던 벚꽃이 그립다. 특히 음주 후 벚꽃 구경!

 

얼마 전 2주 가량 지방 출장을 간 남편을 따라 갔다. 아빠를 아이가 너무 찾는 바람에 출장지인 춘천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 아이 짐으로 가득 찬 배낭을 메고 기차를 탔다. 이박 삼일 동안 나랑 아이는 춘천 인근의 관광지와 키즈카페를 찾았다. 남편은 일하다 저녁이 되면 호텔로 퇴근을 하는 식이었다. 


춘천역 앞의 어느 키즈카페에서 우연히 한 엄마를 만났다. 그 엄마와 함께 아이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육아라는 공통분모 덕분에 초면에 속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니 차라리 모르는 사이라 술술술 이야기가 쏟아졌다. 그 엄마는 아버지 병간호차 춘천에 내려오게 되었고 5살까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혼자 키웠다고 한다. 여러모로 인내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유학시절 배웠던 영어를 잊어버릴까봐 아이에게 영어도 가르쳤단다. 그 엄마 몸엔 분명 부처가 들어있을 듯하다. 사리도 물론 있겠지, 분명.   

그녀는 미술을 전공해 결혼 전에 유학까지 다녀와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를 하던 화려한 커리어의 소유자였다. 그러니 손발 묶인 채 얼마나 갑갑했을까 짐작이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는 점점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했고 그러면 그럴수록 엄마는 세상과 멀어져갔다. 나 역시 그 고민을 하던 차에 서로 어떻게 하면 세상과 다시 교신할 수 있을까를 이야기했다. 처음 보는 사람과 가장 가슴 속 깊은 말을 나누며 짠하고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하나의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왜 세상과 멀어지고 있는 걸까. 아이가 주는 기쁨으로만 왜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놀이터에서도 마트에서도 키즈카페에서도 나는 이곳에 있지만 점점 잊힌 존재가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 때면 문득 주변의 엄마들을 응시한다. 저 엄마는 어떻게 살았을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는 엄마들도 많았다. 그러나 재택근무를 하면 엄마는 더 힘들다. 일과 애 케어에다가 밥까지 차려야 하니 말이다. 나 역시 알량한 알바한답시고 새벽에 일어나 잠깐 일하고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을 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화상회의는 꿈도 못 꾼다. 전업주부도 마찬가지다. 하루가 빠듯하다. 나처럼 양가는 물론 개미 손도 빌릴 데가 없는 사람은 아이가 클 때까지 미우나고우나 남편과 이인삼각 질주를 해야 한다. 그것도 박자가 안 맞아 자꾸 넘어지는 이인삼각을 어깨 아프도록 해야 한다.  


어렵게 얻은 아이라 너무 이쁘다. 이쁜데 힘들다. 어린이집 엄마와 늘 하는 이야기가 '너무 이쁜데 힘들다'라는 이야기였다. 육아는 행복하지만 점점 더 무기력해지는 시간 앞에 섰다. 시간은 많은데 붙잡지도 못하고 스케줄 조정은 꿈도 못 꾼다. 이러다 점점 밀려나기만 한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세상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 오늘도 캔맥주 하나 '따각' 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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