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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라이닝 Jun 02. 2022

혼자가 혼자가 아니야

직장생활에서의 '혼자 있는 시간'

나에게 오지 않아도 좋고 나를 좋은 친구라 인정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렇게 믿는 거리에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 혼자가 혼자에게


거리는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 모두 서로의 어떤 부분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자리를 인정해주고 존재를 안아주는 거리가 중요하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거리 때문이 아닐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 제일 절실한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 매주 주말 오전에는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목욕탕에 다녀온 후 그 앞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는 것이 나만의 힐링 코스였다. 협박과 투쟁, 이해 그리고 합의 끝에 얻어낸 소중한 시간이었다.   

2시간여를 홀로 보내고 집에 오면 아이와 노는 것도 아이와 남편 밥을 짓는 것도 조금은 수월했다. 어쩌면 일주일을 살아내기 위한 최소한의 투자였다.

 오랜 직장생활과 타고난 갑갑증 때문에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내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에너지가 되는지 퇴사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직장생활 20년이 준 교훈인 셈이다.


무얼하든 혼자가 있는 시간이 필수다.
팀장은 혼자 있을 수가 없다.


팀장이 되고나니 혼자가 되는 시간은 극히 적었다. 팀원들의 보고서, 회의 자료, 팀장회의 자료를 만들다 보면 회의실과 회의실을 오가다 하루가 다 갔다. 팀원들의 작업을 함께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된다. 팀원들이 퇴근하고 나서야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내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야근을 해야 하는데 아이는 집에서 나를 오롯이 기다릴 터였다. 일거리를 싸들고 집에 가서 저녁을 먹이고 목욕을 시키고 밤 12시 가까이가 되어서야 업무 자료를 펼치지만 체력과 능력의 한계로 30분을 채우지 못하고 일을 미룬 채 그제야 진정한 퇴근을 했다.


무엇을 위해 이리 달려왔을까. 산소가 부족해 질식할 듯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시간 배분과 우선순위를 잘 따져서 효율적으로 일을 한다고 귀에 피딱지가 앉을 만큼 들었다. 그럼에도 집중력은 떨어지고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퇴근을 해도 퇴근을 하는 것이 아닌 일상이 누적되고 일은 점점 더 숨통을 죄어왔다.


아는 선배에게 '팀장이 원래 이런 거냐'고 톡으로 물었더니, 전화가 왔다.


"사람 좋고 일 잘하고
위에서도 인정받는 사람이 있니.
잘하려고 애쓰는 것도 병이다."


팀원들이 나를 믿고 따르며 위에서도 인정받고 싶었다. 매출도 성과도 팍팍 내고, 다른 팀에서도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선배의 충고를 가만히 듣다 보니 '애쓰지 말자'는 말이 와닿았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해보기로 했다. 나도 팀장은 처음이니까 차근차근 까이면 까이는 대로 해보기로 했다.   

그럼에도 회사 생활에서 '숨통'을 찾아야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려고 했다. 그래야만 일할 힘도 육아할 힘도 생기는 거니까.   

위에서 까이고 팀원이 치고 올 때면 산란해진다. 그럴 때면 약속 있다는 핑계로 점심시간이라도 혼자 회사 근처 산을 찾고는 했다. 아니면 혼자 카페라도 가 있다 보면 마음이 잦아들곤 했다. 그래야만, 혼자 있는 시간이 있어야만 충전이 되더라.


혼자 사무실 근처를 산책하다 보면 모든 게 별일 아닌 게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일만 하던 팀원이 아니라 팀장이 되고 나니 아무도 내 편이 없는 듯, 혼자 큰 태풍 앞에 선 마음이었다. 내 문제는 나밖에 해결할 사람이 없었다. 너무 애쓰지도 말고 그 시간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더 힘을 내보자고 다독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누군가의 기대에, 마음에 들기 위해 나를 버리고 애쓰는 것만큼 소모적인 일은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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