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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라이닝 May 25. 2022

누구나 불발탄을 끌어 안고 산다

중년의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나는 '안 되면 말지 뭐'가 한결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20대 때는 안 되면 정말 안 되는 거였다. 연애도 절실했고, 상사의 인정도 고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인정받고 싶고 회사에서도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믿었다. 

지나고 보니 다 아무 짝에도 쓸모 없다. 연인의 말과 연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나의 낮은 자존감 때문이었다. 끌려가는 관계는 언젠가 쫑난다. 그것도 아주 대차게 까여서 마음을 다친 후에.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그 사람이 날 떠날까봐 먼저 사과하고 더 잘해주고 눈치 보느라 힘들었다. 그게 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마음 때문인 것을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었다. 당시 감정에만 매몰되어 있어 제대로 나를 돌보지 못했다. 얼마나 내가 귀한 사람인지 내가 나를 돌보아야 상대방을 더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마흔 가까이에 들어서고 나서야 깨달았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사의 인정 때문에 날밤 새우다 내 자궁은 탈이 났다. 프로젝트를 세 개 한꺼번에 진행하다 하혈하던 날, 그때야 알았다. 건강을 잃으면 승진이고 나발이고 다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말이다. 왜 그렇게 미련에 궁상을 떨었을까. 최선을 다하는 건 나를 갈아넣어서 희생하는 게 아니었다. 인정받기 위해 나를 갈아넣다 더 일찍 번아웃이 찾아왔고 결국은 더 나아가지도 못하고 중도하차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이루어지지 않은 꿈, 이루지 못한 것들을 끌어안고 우리는 모두들 살아간다. 시장에서 꽃밭에서 지하철에서 너도나도 얼마나 애를 쓰며 살아가는지를 깨달으면서 많이 내려놓았다. 

 

누구나 열정적인 삶을 살아갈 필요는 없다 

누구나 불발탄을 끌어안고 산다. 하지 못한 일, 이루지 못한 일, 말하지 못한 솔직한 내 마음. 그것을 터트리지 않은 건 잘한 것인가, 아닌 것인가.  

이제 조직에서는 더 이상 내 자리가 없다. 팀원들은 슬슬 내 의견보다 자기 의견이 더 맞다고 압박하고 나를 패씽하고 바로 상사에게 보고하는 일도 생기기 시작했다. 

조직에서 더 이상 내가 필요하지 않구나를 알게 되면, 나 스스로 존재를 깎아내린다면 월급의 달콤함을 버려야 하는 순간이라 생각한다. 마음 저편에는 월급 루팡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얼마나 편한가. 하던 대로 하고, 매달 월급이 입금되면 그래, 그냥 버티자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내 나이, 직업, 돈이 사라진다고 하면 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내가 맺은 수많은 관계가 나를 증명할 수 있을까. 남들의 시선 때문에 나의 선택을 부정하지는 말자. 내 주변에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지지해주는 사람 하나만 있으면 내 삶이 불발탄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내가 선택한 사람, 내가 선택한 일, 내가 선택한 모든 일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안 되면 말자'로 사는 게 나의 중년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그리고 내가 하던 일에서 잘할 수 있는 일을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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