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같이 일했던 후배에게서 톡이 왔다.
오래 연락이 끊긴 터라 '결혼하나?'라는 생각으로 톡을 열었다. 안부를 주고받은 뒤에 그녀의 본격적인 용건이 등장했다.
"선배, 저는 어떤 후배였어요??"
"일 잘하고 열정적인 후배였지, 문제 생기면 여기저기 의견도 많이 물어도 보고."
사실 그 후배는 팀장이 제시하는 대안을 듣고도 스스로가 납득이 안 되면 끝까지 제 의견을 굽히지 않는 고집 있는 후배였다. 팀장의 말에 무조건 네네하는 예스맨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때문에 팀장이었던 동료가 정말 고집 세고 말이 안 통한다는 푸념을 하기도 했다.
반면 본인 일은 똑부러지게 하는 면도 있어서 맡은 일이 있으면 밤을 새서라도 마치는 열정 만랩의 후배이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아마 내가 그 팀의 팀장이 아니라 옆 팀 과장이었기에 직장생활에 대해 더 편히 물어보기도 했던 듯싶다. 그 열정적이던 후배는 활활 타오르다 몇 년 전 징그러운 이 업계를 떠나 대기업의 인사팀으로 이직을 했단다.
"요즘 팀원이랑 관계가 안 좋아요. 문득 제 예전 회사 생활을 돌아보다가 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해서요."
팀원이 저를 대놓고 싫다는 티를 팍팍 내고 옆팀 팀장과 비교한단다. 생각해보니 나도 비슷한 일을 겪은 듯하다. 짧은 팀장 생활이었지만 팀원이 다른 팀으로 옮기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팀원이 다른 팀으로 가고 싶다고 한다고 하니 결국 드는 생각은 내가 부족해서구나라는 자책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이미 틀어진 관계를 다잡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멀어졌다. 이를 후배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팀장과 팀원의 관계 역시 그 회사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오히려 상처를 주고받지 말고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는 생각부터 버리는 것이 먼저였다. 자책이 깊어지면 결국 서로 실망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걸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예전에 팀장님이 늘 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지금이 가장 좋을 때다. 팀원이었을 때가 차라리 낫다는 이야기였다. 중간에서 팀원들 일정 관리 및 의견 조율하느라 속이 탄다는 이야기였다. 누구나 때가 되면 경력자가 되고 그 경력에 걸맞는 관리를 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그 관리가 결국은 관계의 관리였다.
회사 생활 가운데 가장 힘든 게 역시 관계의 문제가 아닐까. 회사가 크든 작든 여기나 저기나 그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보고서나 매출계획, 기획서를 제출할 때도 내가 의견을 준 것과 임원들이 준 방향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데이터를 명확하게 따르는 것도 아니고 일종의 '감'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업계 특성상 더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팀원 입장에서는 다시, 또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많았을 터. 그럴 때마다 상사를 의심하게 되고, 불신하게 되고 그 불신이 모든 일에 뻗어나가 '팀장이랑 밥도 먹기 싫어''팀장 너무 싫어','팀원이 너무 되바라졌다'라는 어이없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결국 그 팀원도 나도 그 회사를 나왔다. 강압적인 분위기에 일이 어그러지는 경우가 많았으니 너도 나도 견디지 못한 것이라 스스로를 위로했다. 온 힘을 다했으니 결과가 좋지 않아도 후회는 남지 않았다. 한발만 떨어져서 보면 한끗차이다. 상대방이 부족하다는 것만 생각하다보면 내 문제에 대해서는 보이지 않게 마련이다.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팀장으로서 부족하다는 현실에만 빠져 이도저도 아니게 어그러졌다. 돌아보면 우리는 회사에서 일하는 관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거기에 감정이 뒤섞여 상황은 겉잡을 수 없어진다.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냉혹한 평가와 부족하다면 어떻게 채울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부족했고 노력했으나 도망쳤다. 그리고 조직에서 오래 견디는 자가 승리하는 자라는 속설은 맞았다. 하지만 오래 남으면 결국 주위에 사람이 남지 않는다는 것은 좀 서글픈 일이기도 하다.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아직도 그 고민은 영원한 숙제다. 그러나 늘 진실인 명제는 회사는 회사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