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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라이닝 May 24. 2022

일 없이 산다는 것

반백수 1년차의 자가발전 기록

일이 없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조직을 나와 산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이름만 프리랜서지 반백수다.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은 바쁘지만 통장은 한가하다. 제2의 인생을 위해 자격증 사이트, 방통대 사이트를 기웃거리기만 하다 시간만 줄줄줄 훌쩍 지나버렸다.  


처음에는 너무 많은 시간을 어디다 쓰지 했다. 드라마를 보는 것도 하루이틀. 그러다 어딘가에 출근하지 않는 내 자신의 모습에 한없이 가라앉게 된다. 애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늘어져 있다가 급하게 체육복을 찾아서는 뒷산에 올랐다.

마침 눈도 오고 핑계도 생긴 김에 뒷산을 천천히 걸었다. 오래된 골목을 통과해서 오른 산에는 나무마다 눈과 함께 새들도 깃들어 살고 있었다.


어디선가 나무를 부리로 타타타타 쪼는 소리가 나서 보니 딱따구리다. 눈이 오는 와중에 저리도 바삐 벌레를 찾아 나무를 쪼고 있었다. 다들 먹고 사느라 애쓴다. 부지런한 딱따구리 소리를 듣고 나니 뭔가 부끄럽기도 하고 마냥 처져 있는 내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할까. 그 불안은 어디서 오는 걸까? 통장?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 무엇보다 돈을 벌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나란 존재가 쓸 데가 없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이를 키우고 있고 아버지의 병원 간병도 하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생산적인 활동은 하고 있지 않다. 다른 사람의 말과 시선이 두려워 호기로운 나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지는 않나. 돌아보았다.  

나는 어딘가에 속해서 수레바퀴 속의 바퀴처럼 돌았고 누군가에게 너도 나처럼 돌라고 빡시게 재촉하는 사람이었다. 너도 나처럼 돌다 보면 그게 인생이라는 걸 알게 돼라는 무책임한 말로 팀원을 다독였다. '밥벌이니까 견뎌야지'라고 패배자처럼 말하는 나도 어쩔 수 없는 직장인이었다. 그렇다고 믿고 살았지만 조직을 나와서 바라보니 나는 꼭두각시처럼 보이지 않는 실에 매달려 울고 웃는 사람이었다.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부터 숨이 찼다. 물론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느라 옆으로만 커진 몸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팀장이라는 내 자리에 앉으러 가는 출근길이 숨이 막혔다. 손에 땀도 나고 심장이 너무 나대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내 자리가 아님을 인정하고 '살아야겠다 좀 더 사람 노릇하면서 살자'며 나온 조직이었다.  

많은 이들이 퇴사를 하면 설렘과 불안 사이를 헤맨다. 여러 회사를 전전하고 22년간의 오랜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나오면서 '이제 나를 옭아매는 것은 없을 것'이라며 홀가분해했다. 이제 그 홀가분한 마음이 불안으로 바뀌고 있는 순간이다. 이게 다 돈 때문인가? 왜 이렇게 빨리 텅장이 되어가는가?


누군가 인생의 1/3을 고민만 하며 시간을 보낸다 했는데 내가 그짝이다. 걱정만 하느라 아무것도 하고 있지는 않다. 앞으로 무엇을 할까.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을 시작으로 조금씩 좋은 날들로 채워가야겠다. 애엄마가 되니 겁이 없어졌다. 안 되면 또 다른 거 하면 되고, 이런 일 한두번 겪는 거 아니잖아. 프로 이직러인 경력을 되살려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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