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버라이닝 May 24. 2024

이제는 써야 할 시간

목차 없는 글쓰기

글을 쓰려면 어떻게 쓸 것인지, 무엇을 쓸 것인지부터 정해야 한다고 배웠다. 당연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철저하게 분량과 내용 의도를 맞춰서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기획의도는 있었지만 쓰다 보면 쳐내거나 덧붙이거나 아예 다른 내용을 써야 하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글을 쓰려면 '목차' 때문에 겁부터 먹는 사람들이 많다.


쫄지 말고 일단 써보자.


우물쭈물하다가 어느 순간 나이 들고, 모든 걸 다 놓칠까 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얼렁뚱땅 목차 없는 글쓰기를 시작한다. 의식의 흐름대로 혼자 말하듯이, 하루하루 성실하게 쓰는 것, 이것이 목차 없는 글쓰기의 최종 목적지다.


살면서 제일 황당한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결혼하고 직업을 갖고 애를 낳아 키우면서도,
옛날 보았던 어른들처럼 나는 우람하지도
단단하지도 못하고 늘 허약할 뿐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늙어버렸다. 준비만 하다가.


-황현산,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나는 모르는 것이 참 많다. 심지어 열심히 산다고는 하지만 막상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이, 손바닥 안에서 모래 빠져나가듯이 시간만 흘렀다. 완벽함을 꿈꾸지만 늘 대충이었다는 생각이 들 때, 그때가 '써야 할 시간'이다. 하루하루 성실히 나만의 시간을 모으면 '우람하고, 단단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매일 하나의 질문을 나에게 던져 볼 예정이다. 그 질문에 대한 목차 없는 글쓰기를 하다 보면 잘 늙어갈 '준비'가 되지 않을까?


1.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


제일 좋아하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순간순간이 달라지고 하루가 바뀐다. 그런 하루하루가 모이면 내 삶도 달라지는 거라 믿으며 살아왔다. 버스에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여행 가서 빨래 널려 있는 풍경,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일이 좋아 오랜 시간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방송작가를 할 때의 일이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할아버지의 주름 곳곳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세월을 이야기해주었다. 17살에 장가 들어 내리 7남매를 낳고 살았다는 할아버지에게 문득 질문을 하나 던졌다.


"할배, 뭐 필요한 거 없어요?"

"하루 꼬시를 담배 하나만 있으면 됐제. 머가 더 필요하노."


할배는 때 되면 밥 먹고 어두워지면 자면서 그곳에서 평생을 살아왔다 말씀하셨다. 하루하루 같은 날이 없고 하루하루 특별한 날도 없다 말씀하셨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언제나 '지금'을 살고 '지금'에 만족해야 온전한 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늘 미친 듯이 바삐 일해도 잔고는 0. 카드값을 막으면 한 달 잘 살아냈다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방송은 자주 죽고 돈 나올 구멍이 없어서 방송작가일을 그만할까도 생각했던 시점이었다. 촬영이 끝나고 할아버지에게 담배 한 보루를 사다 드리고 집에 오면서 생각했다. 왜 자꾸 사고, 산 걸 또 사느라 늘 불안하고 불만족했을까.


서른이나 되었는데 왜 나는 명품 가방 하나 없을까 하는 마음에 덜컥 백화점에 달려가 명품 가방을 질렀던 어리석은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보상심리처럼 명품가방을 하나 사서 돌아오는 길. 왜 그랬을까.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난 이모양이냐고 자책했던 어리석은 시절이었다. 그런 과정을 거쳤기에 '물욕'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체험하지 않았을까.


출근 시간이 다가온다. 오늘은 어떤 사람을 또 만나게 될까. 어제 버스에서 우연히 보게 수신자이름을 '뱅갈호랑이'로 해둔 사람이 궁금해졌다. 뱅갈호랑이와 술 마시러 가던 그 사람, 해장은 했을까.



작가의 이전글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 매일 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