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07
검은색 점퍼와 찢어진 청바지, 그리고 숏컷의 머리를 보면서 감정의 진폭이 커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당연하다. 어린 마음도 기쁨과 슬픔의 간극을 오간다. 사춘기나 돼서야 몇 초 만에 온탕 냉탕을 오가는 게 아니다.
분명 2학년 1학기 때까지는 매일 밝고 기운찬 모습, 그저 마냥 애 같은 모습만 봤는데 2학기 때부터는 속상한 모습, 우울한 모습, 힘없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어쩌면 1학년 때보다 여러 친구와의 관계 형성과 유지, 같은 반 누구보다 공부를 잘하고 싶은 승부욕, 더 복잡하고 정교해지고 강해지는 자기의식과 주장 등이 한 유아의 내면을 어린이의 내면으로 만들어 가는 중인 것 같다.
물론 어린이집 시절이나 1학년 때도 받아쓰기에서 어쩌다 한 두 문제 틀리면 속상해했다. 하지만 아빠가 보내는 격려나 위로의 말로 그 속상함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핫초코 한잔을 앞에 두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나 2학년 때는 제법 오래갔다. 2학기 때 한 번은 받아쓰기를 90점 맞은 적이 있었는데 하루 종일 그것 때문에 우울해해서 실패를 격려하는 용돈을 줬을 정도였다.
어느 순간이 오면 아이와 부모 모두 실패와 슬픔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 같다. 아이는 심각하고 심난하데 “야, 괜찮아. 그만하면 잘한 거야.”나 “야, 애들은 괜찮아.”라고 함부로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는 건 아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는 나름대로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받아쓰기 연습을 열심히 했기에 당연히 그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옆에 짝꿍이나 같은 반 친구가 맘에 안 들거나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있는데 상투적으로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야지.”라고 말하는 건 무책임하다.
이런 경우, 아내는 일단 맞장구를 쳐준다. 아내는 병원에서 업무상 상담을 하는 일이 많아서인지 그런 쪽으로 노련하다. 맞장구를 쳐주면 아이는 술술 얘기한다. 난 그냥 지나가듯이 묻는다. “오늘 00이 그랬다며?” 그럼 딸은 자분자분 얘기한다. 이런저런 의견을 첨삭하지 않고 가만히 들어준다. 사람 사는데 늘 좋은 일만 있을 수 없고, 25명이 모여 있는데 다 맘에 들 수 없다. 좋은 날이 있으면 나쁜 날도 있고, 통하는 사람이 있으면 답답한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물론 아이가 기분이 안 좋으면 집안 분위기도 안 좋다. 나 같은 경우는, 그걸 워낙에 불편해해서, 예전엔 어떻게 하든 풀어주려 했지만 그것도 내 욕심이라는 걸 알았다. 아이는 자기만의 감정 오븐이 있다. 나하고는 뜨거워지는 시간과 차가워지는 시간이 다르다. 우리 모두 다르다. 온도뿐만 아니라 켜지고 꺼지는 상황도 다르고, 그 스위치의 위치도 다르다. 그러니 그 온도를 올리고 내리고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심지어 그 오븐은 내 맘대로 끌 수도 없다.
모든 이가 그럴 것이다. 난 풀렸기에, 난 이미 잊었기에, “이제 그만 잊을 때도 됐잖아. 뭘 아직도 그렇게 꽁해”하며 말하거나, "뭔 사람이 그렇게 뒤끝이 길어."하고 말하는 사람은, 내가 풀릴 때 남도 풀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감정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요즘엔, 아무리 내 자식이지만 내 오븐과는 애초에 다르게 생겨 먹었으니 풀릴 때까지 기다린다. 시간을 주면 그 오븐을 차분히 식히고 끈 뒤, 평상시로 돌아온다. 다시 기운을 차리고 아빠한테 안아달라고 한다.
이제 은채는 밝은 색 옷뿐만 아니라 어두운 색도 입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아빠는 검은색, 흰색, 회색은 색도 아니니 그런 색 옷은 돈 주고 살 필요 없다고 늘 말해줬지만 그것 또한 내 생각, 내 고집이고 스타일이다. 아이가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어가면서 무채색 옷을 쿨하게 여긴다면 그 또한 말릴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그저 어두운 색에 함몰되어 밝은 색의 화려함을 어색하게 여기는 일이 없기만 바랄 뿐이다. 마음의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일부러 화려한 색을 요란하게 억지로 입거나 사람들 속에 조용히 묻히기 위해 무채색 옷을 고집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어떤 색, 어떤 옷을 입든 누가 봐도 “최은채”스러운 모양새를 갖게 되길 바랄 뿐이다. 비싼 옷, 비싼 차, 큰 집, 명품, 화려한 옷이나 액세서리가 없어도, 그저 맨 얼굴에 청바지에 티셔츠 하나만 입어도 나는 그저 나일 뿐임을, 그 자신에 대한 확신을 자신의 그 어디 바깥에 두지 않는 어른으로 커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