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에 눈을 뜨다.

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06

by 최영훈

검은색 항공점퍼

초등학교 2학년(2020) 추석이었다. 어느 해처럼 추석빔을 사주러 삼촌과 함께 외가 근처의 아웃렛에 갔다. 시외버스터미널과 붙어 있어서 제법 붐볐다. 아내와 딸은 자연스럽게 아동복 코너로 스며들었고 삼촌은 그 곁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여자와 쇼핑하는 데 익숙해져야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한다고 잔소리를 해 봐도 한결같다. 은채는 잠시 한 브랜드 매장을 둘러보더니 검은색 항공 점퍼를 골랐다. ma-1 스타일로 깃이 없는 야구 점퍼 스타일의 항공 점퍼였다. 디자인은 그렇다 쳐도 검은색을 고른 건 의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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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채는 화려한 색을 즐겨 입어 왔고 지금도 반에서 가장 화려한 색을 입는 애다. 선생님이 올리는 수업 사진에서도 딸을 애써 찾을 필요 없다. 그냥 보인다. 아내가 해외여행에서 사 오거나 미국에 사는 이모와 친할머니가 한국에 들어올 때 선물로 사 오는 옷, 그리고 크리스마스나 생일 때 소포로 보내오는 옷들은 일관되게 화려했다. 종종 근처에서 사는 옷들도 색이 선명한 걸 골라 입혔다. 그러니 본인도 그런 색 옷을 입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2학년에 올라가서 한 학기를 보낸 후부턴 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단 여름 방학 끝 무렵 헤어스타일을 숏 컷으로 바꿨다. 아내가 십 년 넘게 숏 컷 스타일을 유지해서 여자가 짧게 머리를 자르는 것에 대해 딱히 호불호가 없는 편이라 부추기지도 말리지도 않았지만 내심 놀라긴 했다. 그전까지는 단발로 자를 때도 고민하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근래 자주 보는 TV 프로그램인 <밍꼬 발랄>의 주인공의 숏 컷이 멋있게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찢어진 청바지, 혹은 톰보이

소년 같이 자른 머리에 검은색 항공 점퍼를 입고 거울 앞에 서고는 제법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톰보이처럼 입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바지도 하나 고르라고 했더니 찢어진 청바지를 골랐다. 아내나 나나 아이가 자기 옷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여간해선 토를 다는 성격이 아니어서 일단 입어보라고 했다. 난 그저 앉았다 일어나 보라고만했다. 스판이 들어가 신축성이 좋고 잘 맞았다. 두말하지 않고 사줬다.


은채가 청바지를 고른 건 의외였다. 은채는 청바지를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이다. 은채한테 청바지를 입히려고 시도한 건 서너 살 때부터였다. 미국에서 보내오는 옷들 속에 꼭 청바지가 두 세 벌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 사는 사촌 언니도 청바지를 좋아해서 디자인과 색도 다양했다. 그런데 은채는 이상하게 청바지만은 꺼려했다. 아마도 레깅스의 편안함에 익숙해서였을 것이다. 아무리 스판을 넣어도 청바지는 청바지니까 말이다. 막 입었을 때의 데님 특유의 차가운 느낌과 약간 뻑뻑한 느낌도 별로 안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옷장에 청바지 몇 벌은 꼭 남겨 놓곤 했다. 어린이집이나 학교 행사에서 단체복을 입을 때 종종 청바지에 흰색이나 빨간색 상의를 입혀 달라고 하곤 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외엔 은채가 청바지를 입은 적은 없다. 아내나 나나 청바지를 사준 적도 없고. 그러니 이 추석 때 고른 청바지가 은채가 최초로 고르고 사 입은 청바지였다. 영락없이 소년 같았다. 지는 맘에 드는 모양이었다. 삼촌은 가타부타 말없이 쿨하게 결제해줬다. 조카가 좋으면 삼촌도 좋다.


엄마는 니트 마니아

아내나 나나 여유롭지 않게 컸다. 그래서 유년기 내내 꾸미거나 옷을 차려입는데 크게 관심이 없었다. 특히 아내는 교복을 입고 중 고등학교를 다녔고 나름 모범생이었던 사람이라 꾸미는데 더 관심이 없었다. 외모에 자신 있어서 그랬다고 농담을 하곤 하는데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집 앞까지 따라오는 남학생이 많아서 장인어른이나 장모님이 마중 나가곤 했다고 하니 말이다.


아내가 나름 꾸미기 시작한 건 이십 대 부터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병원에 취업한 뒤, 자기 말로는 간호사들과 밤늦도록 어울려 다녔다지만 옛날 사진을 보면 명품을 휘두르지도 화려하게 옷을 입지도 않았다. 의외로 대학 병원은 보수적인 직장이라 그런지 옷차림도 나름의 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여곡절을 거쳐 현재 대학 병원의 부서장이 된 지금도 아내의 옷차림은 전문직 여성으로만 보일뿐 이렇다 할 화려함은 없다. 연말 병원 행사 때 입을 정장 몇 벌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옷들은 일하기 편한 옷들이다. 굳이 특징이 있다면 니트를 엄청 좋아한다는 건데, 모르긴 몰라도 스무 벌은 되지 않을까?


아빠의 최카피 스타일

내 경우엔, 십 대 후반까지 옷을 얻어 입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그럭저럭 옷을 사 입히신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난해져서 운동화도 구멍 날 때까지 신고 그걸 기우고 신은 뒤, 그게 또 구멍 나도 신고 다녔다. 무슨 한국전쟁 직후 이야기 같지만 80년대에도 그렇게 가난한 집들이 있었다.


옷다운 옷을 산건 스무 살이 다 됐을 때였다. 그러니 그날까지 무슨 취향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고 그저 어머니가 사 주시는 데로 입었다. 취향이 생긴 건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서였고 사람들이 “최카피 스타일”이라고 대번에 알아보기 시작한 건 삼십 대 중반도 넘어서였다.


난 개인적으로 한 사람의 스타일이란 멀리서 봐도 그가 누군지 알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몇 번 그 사람을 봤던 사람이 공항이나 터미널, 마트 같이 혼잡한 데서 그 사람을 스쳐봐도, “어, 최카피가 여긴 웬일이지?”하고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고유의 두드러짐이 있어야, 그 사람이 나름의 스타일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거다. 그건 명품을 입거나 화려하게 입는 걸로 얻어진 뭔가를 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삶과 직업과 가치관이 은연중 드러나는 차림새를 찾아낸 뒤, 세상의 유행 바람에 흔들림 없이 그 차림새를 일관되게 지켜온 세월로 얻어진 뭔가를 말한다.


내 경우엔 10월부터 3월 사이엔 같은 차림이다. 한 브랜드의 하이넥 필드 재킷, 소위 야상을 닮은 재킷을 세 가지 색 모두 사서, 그 세 벌을 번갈아 입는다. 이너로는 실켓 소재의 터틀넥을 번갈아 입는다. 이 역시 같은 브랜드로 예닐곱 개의 색이 있다. 사실 봄도 비슷하다. 깃이 세워진 트렌치코트에 셔츠나 터틀넥을 받쳐 입는다. 좋아하는 아우터인 피쉬테일 파카가 계절별로 세 개 있고, 청바지도 같은 브랜드로 색색 별로 세 개, 여름 바지도 겨울 바지도 그렇게 개별 브랜드로 색만 다르게 서너 개 있다. 브랜드마다 사이즈가 다르기에 내 체형과 맞아떨어지는 브랜드가 있으면 계속 그 브랜드만 입는 게 편하다. 게다가 이렇게 스타일이 정해져 있으면 아침마다 뭘 입어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운동할 때나 등산 갈 때, 딸과 아내와 가볍게 외출하거나 산책할 때를 제외하면 내 사회적, 대외적 스타일은 정해져 있다. 나만 이런 게 아니라 같이 일하는 감독도, 조명 감독도, 디자이너를 비롯한 관련 업계 사람들도, 심지어 자주 보는 공무원들 중에도 이런 사람이 의외로 많다.


물론 모양새의 두드러짐이 있으면 나쁜 짓하기엔 불편하다. 하지만, 어찌 됐든 그건 수년에 걸쳐,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정착된 모양새다. 이것도 입어보고 저것도 입어보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입어보다가 어느 순간 거울을 보니 이거 참 나답다고, 이렇게 입는 다면 언제라도 불편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게 외출할 수 있겠다고, 사람을 만나도 마음이 편하겠다고 여겨지는 모양새다.


그러니까, 남자는 단순하다. 만약 어떤 남자가, 그러니까 내 나이 정도 돼서도 어떤 장소나 상황에 뭘 입어야 할지 몰라서 아침마다 우왕좌왕하거나 아내한테 옷을 골라달라고 하면 그건 아내 말을 잘 드는 게 아니라 아직 자기 스타일에 관심이 없거나 자신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일지 모른다.



자기 스타일을 찾아가는 나이

모양새에 관한 교육을 언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런 정보나 조언을 들은 적도 없다. 그러니까 <패션 감각, 5세에 결정 난다.>라든가, <10세 이전에 완성되는 패션 교육>, <부모의 옷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 뭐 이런 책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아동 교육학이나 심리학에선 취향이나 성향이 언제 생긴다는 나름의 기준점이 있겠지만 말이다.


딸을 기준으로 보면 대체적으로 대 여섯 살 때부터 자기 옷 중에서도 더 입고 싶은 옷이 생기는 것 같고, 친구가 입고 있는 옷 중에서도 부러운 옷이 생기는 듯하다. 그러다 초등학교 들어가서 선배들을 만나게 되면 옷차림의 새로운 지경이 열리고 말이다. 말이 나와서 그런데 어지간한 초등학교 5, 6학년 여학생은 아내만 하다. 지금 딸이 140 정도 되니 말이다. 150 정도만 돼도 아동복에서는 가장 큰 사이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어린이의 패션 세계를 졸업하고 십 대의 패션 세계로 입문할 수 있는 사이즈는 되는 것이다.


2학년 겨울에는 롱 패딩을 사달라는 성화에 시달렸다.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고, 그마저도 영하 5도 언저리인 부산에선 그런 패딩은 필요 없다고 했지만 아이는 의외로 완고하고 집요하게 졸라댔고, 결국 아내는 온라인에서 한 아웃도어 브랜드의 핑크색 롱 패딩을 주문해줬다. 뭐 그렇다고 요즘 십 대들이 입는, 김밥 같은 모양새를 낼만큼 마냥 긴 건 아니고, 무릎 언저리에서 길이가 멈춰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놀랍게도 그 해 겨울에 말 그대로 북극한파가 몰아쳐서 부산도 영하 십도 가까이 떨어졌다. 딸의 고집이 합리적인 요구였음이 입증되고, 그 롱 패딩이 빛을 발할 때였지만 아쉽게도 짧은 겨울방학과 겹쳐서 자주 입지는 않았다.


알록달록한 어린이의 시간이 그리울지도

부모 마음은 다 같다. 아이가 뭘 입어서 잘 어울리면 기분이 좋다. 영하로 내려갈 일 없어도 두꺼운 점퍼 하나 옷장에 걸어 놓으면 마음이 든든하다. 아이는 덥다고 잠결에 차 내더라도 이불을 목까지 덮어주고, 심지어 그 위에 하나 더 덮어줘야 마음이 놓여서 편히 잠들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빠 마음이야 여전히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불이 번쩍되는 운동화를 신고 다니면서 좀 더 오래 어린이로 남아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건 내 바람의 시계이고 아이의 시계는 이미 십 대로 가고 있다. 몸도 마음도 옷차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