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과 혐오

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08

by 최영훈

색깔 얘기가 나와서 생각난 건데, 쉰이 되면 너그러워질 줄 알았다. 아이를 키우면 마음이 넓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쉽게 철드는 존재가 아니다. 스님과 수도사님들이 그 외딴곳에서 긴 세월 수련하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였다.


처음 만나는 감정 ; 연민

애를 낳고 키우다 보니 연민의 감정이 생겼다. 은채가 태어난 후에도 대학에서 강사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난 뒤 강의실의 학생들이 달라 보였다. SKY를 다니든, 카이스트를 다니든, 지방의 이름 모를 대학을 다니든 다 소중한 자식이다. 나와 아내가 밤 잠 설쳐가며 아이를 키웠듯이 모든 학생들의 부모님들도 자기 자식을 애지중지 키웠을 것이다. 밥 먹듯이 강의를 빠지고 F를 줄줄이 달고 연애는 매번 죽을 쒀도, 어찌 됐든 스무 해 넘게 건강하게 살아서 대학까지 다녀주는 자식이다. 내 자식 귀한 줄 알면 남에 자식 귀한 줄 안다는 말이 이런 말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젊은 친구들한테 짠한 마음이 생기니, 그 마음이 그들의 부모 세대로 이어졌고, 그런 마음의 파장은 점점 더 넓어져 갔다.


있던 성질이 더 나빠질 때

그렇다고 부처 같은 마음만 충만하겠나? 애를 키우다 보면 의외로 열 받을 때가 많다. 미세먼지와 황사 예보 넘쳐나는 일기 예보는 혀를 차게 만들고,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스쿠터와 골목을 꽉 채우며 다가오는 자동차를 보면 자연스레 혈압이 올라간다. 애들 먹는 거를 함부로 만드는 인간과 애들 장난감과 옷 갖고 장난치는 기업도 많다. 그런 사람과 기업이 만든 제품 때문에 탈 난 애들 데리고 병원을 찾는 부모들의 뉴스를 볼 때마다 함께 눈물을 흘린다. 없던 정의감도 생기고, 악덕 기업을 응징할 방법을 찾게 된다.


위험하지 않던 것이 위험하게 느껴지고, 의심스럽지 않던 것이 수상쩍다. 애가 어린이집에 가고 밖에 활동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아빠의 경계 지수도 올라가고 그와 동시에 분노지수도 올라간다. 우리만 그러냐고? 미국에 사는 처제의 남편은 미국 사람이다. 그 집 식구들하고 텍사스의 한 동물원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함께 점심을 먹다가 아빠들이 너무 과민하다는 엄마들의 투정이 나왔다. 그러자 우리 딸보다 네 살 많은 딸을 키우는 처제의 남편, 그러니까 동서와 함께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가며 이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 위험성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내가 하는 한국말을 기가 막히게 알아듣고 나 또한 동서가 하는 영어를 기가 막히게 알아듣는 덕에 한미 양국의 평범한 아빠들의 맞장구가 동물원 카페테라스에 울려 퍼졌다. 그쪽도 나이 들어 딸을 본 터라 말 그대로 금지옥엽 같은 딸이고, 이쪽도 사는 동안 뉴스로 본 대통령 이야기를 하면 박정희 때부터 시작해야 하는 옛날 사람이라 그 걱정의 진폭이 딱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편견을 키우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러저러한 친구는 사귀지 말라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은채는 동네에서 제법 인기 있는 어린이집을 다녀서 6세 반, 7세 반 모두 스무 명 가까운 친구들과 어울려 지냈다. 한 명이 이사로 빠져나가면 두 명이 들어오겠다고 기를 쓰는 어린이집이다. 한 반의 정원이 그 정도 숫자가 되면 소년 소녀 안 가리고 별종이 있기 마련이다. 부모의 직업도 다양해서 부산의 해양 경찰부터 학교 선생님은 물론이고 나 같은 한량 카피라이터까지 있다. 물론 학교 또한 그 정도 애들이 모이면, 역시 소년 소녀 막론하고 돌+I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미 어린이집에서 3년간 다양성에 적응했던 터라 교실에서 만난 스물다섯 명 정도의 다양성에도 그럭저럭 적응했다. 어쩌다 딸이 그런 애들 이야기를 하면 “야, 그 친구 진짜 독특하구나. 재미있다. 야.”, 뭐 이 정도 추임새만 하고 적당히 넘어간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타자를 혐오하는 건 교통질서를 안 지키는 사람을 혐오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친구 중엔 조개류를 전혀 안 먹는 승유라는 녀석이 있었다. 다른 동네 사람들은 의외라 여길지 모르지만 부산 싸나이들 중에서도 회나 어패류를 안 먹는 이가 있다. 가깝게는 내 처남, 은채 외삼촌도 회는 물론이고 생굴과 과메기도 안 먹는다. 구운 생선만 좀 먹는다. 이 소년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어디 어린이집 식단이 그런 도련님 취향에 딱 맞춰 나오겠나. 종종 홍합이나 조개가 들어간 국이 나오면 어김없이 그 조개들은 은채 차지가 됐다. 자기야 그런 걸 좋아하니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초등학교에서도 매운 걸 못 먹는 친구, 채소를 못 먹는 친구, 나물을 못 먹는 친구 등 식성이 다양하다. 은채는 순대국밥이나 돼지 국밥이 급식으로 나오면 리필해서 먹을 정도로 먹성 좋은 녀석이라 그런 친구들이 신기할 뿐이다. 딸이 그런 친구들 이야기를 집에 와서 하면 “야. 어떻게 사내 녀석이 그런 것도 못 먹냐?”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그저 “야. 그놈, 은채랑 데이트하긴 힘들겠는데.”하는 정도의 멘트만 하고 넘어간다. 그럼 은채도 한번 깔깔대고 넘어간다. 어린이집 시절부터 선생님들이 다양성 교육을 위해 얼마나 애쓰시는지 봐왔던 터라, 그 공들인 교육을 집에서 무너뜨리지 말자고 늘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시절엔 한쪽 다리가 불편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지금도 은채와 같은 학교에 다닌다. 어린이집 시절, 선생님들은 발표회를 준비하면서 그 친구에게 맞는 율동과 동선을 특별히 마련해 주셨다. 은채한테 그 과정을 들었을 때도 대단하다 싶었는데, 실제로 공연을 보니 그 감동이 남달랐다. 은채의 학교엔 장애 학생을 위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는데 이 친구가 입학하면서 계단의 난간이며 경사로 같은 것들이 새로 정비 됐다. 그렇다. 단 한 명의 신입생을 위해 학교에 새로운 시설이 설치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친구의 이동을 돕는 선생님도 따로 배정 됐다. 그 과정을 건너들으면서 참 세상이 변하긴 변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또 어찌보면 세상이 가야할 당연한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닌가도 싶었다.


연민은 늘고 혐오는 준다.

인생을 살아낸 사람과 그 삶의 무게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된 게 연민이라면, 그 삶의 누적으로 인해 형성된 각자의 기준과 그 다름으로 인해, 또는 공동체와 사회에서 체득된 문화의 다름으로 인해, 더 나아가 타자에 대한 기대와 바람의 배신으로 인해, 이런 것들로 인해 혐오가 생겨난다. 역설적이지만 인간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커질수록 한 인간이 제대로 구실을 해줬으면 하는 내 나름의 바람도 커진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사람이 나이를 먹는 다고 다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고, 설령 어른이라도 다 어른 구실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버지와 어른이 되어가면서 절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서툰 인생임을 깨달아가면서 사람에 대한 연민이 더 커지고 있다. 그 사람이 내가 싫어하는 뭔가를 하는 것은, 내가 혐오하는 삶의 행태를 보이는 것은 그 또한 나처럼 서툰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걸 알고, 나 또한 그에게 혐오스럽게 보일 수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혐오의 불길은 줄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