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09
대한민국의 평범한 어린이라면 인생에 한 번은 뽀로로와 만난다. 첫 번째 스타다. 나 또한 은채가 어린이집 입학 전, 뽀로로가 없었으면 집에서 믹스 커피 한잔 마실 시간 내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은채도 여느 아이들처럼 뽀로로로 시작해 EBS의 스타들을 거쳐 애니 채널로 넘어갔고 초등학교 입학 즈음부터는 <캐리와 친구들>과 <흔한 남매>와 같은 애들만을 위한 버라이어티 쇼의 애청자가 됐다. 그 사이 <에그 박사>라는 프로그램에서는 다양한 자연 분야의 박사들과 마주했고, <보니하니쇼>의 애청자로서 애플리케이션을 깔아 실시간으로 방송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은채는 TV와 패드를 접했고 아빠가 쓰던 노트북과 엄마가 쓰던 스마트 폰도 다룰 수 있게 됐다.
이 콘텐츠와 미디어 소비의 궤적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항간에는 거실에 TV를 없애고, 긴 탁자와 벤치를 들여온 뒤 한쪽 벽을 책으로 채워서 공부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하는데 그런 분위기를 만든다고 애가 갑자기 책을 읽는 건 아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애는 부모를 닮는다. 우리 감독의 딸은 초등학교 때 이미 친구들을 데리고 이런저런 연출을 했다. 어부의 아들이 어부가 될 확률이 높고, 농부의 아들이 농사를 잘 지을 확률이 높다.
8,90년대, 왜 사법고시에만 합격하면 강남 부자들의 선이 줄을 잇는지를 놓고 이런저런 설들이 나왔었다. 알다시피 강남은 70년대 와서 본격적으로 개발됐다. 그전까지 그야말로 논밭이었다. 강남을 개발했는데 4대문 안의 부자들이 이사를 안 가서 좋은 학교를 강남으로 강제 이전시켜버렸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덕분에 강남의 인구 지형은 농사짓다가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사람과 학군을 따라온 강북의 전통적 유지와 학자 집안이 뒤섞여 버렸다. 여기에 80년대 들어 강남에 유흥가가 본격 성장하면서 말 그대로 물장사로 돈을 번 사람도 등장했고, 건물주들이 신흥 부자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그랬듯이 돈을 벌면 명예나 권력이 탐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선 그게 돈으로는 한계가 있다 보니 자식만은 좋은 대학 보내고 싶고 이런저런 고시공부를 시킨다. 공부를 시켜보니, 어디 원하는 데로 결과가 나오겠나?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인데 그 머리가 누굴 닮겠나? 누굴 탓할 것 없이 자신 탓임을 알게 된다. 결국 경제 자본은 대를 이어가며 그대로 유지하는 동시에 다른 자본, 그러니까 사회적 자본이나 문화 자본, 권력 자본 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똑똑한 식구를 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적 자본이 차이가 나는 사위를 들이다 보니 이래저래 다른 자본으로 균형을 맞춰줘야 한다는 압박이 생겼고 그 압박은 시장을 탄생시켰다. 열쇠 세 개를 줘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 아래 오피스텔 시장, 자동차 시장, 아파트 시장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판검사, 변호사, 교수 사모님 외모라는 것이 따로 있을 리 없지만 어쩐지 자기 딸 외모는 아닌 것 같아 졸부 아버지들이 하나 둘 딸 성형을 시키다 보니 강남의 성형외과 시장이 성장했다. 여기에 내조를 잘하기 위해서는 요리도 잘해야 할 것 같아서 요리도 배우게 한다. 여기서 소위 청담동 며느리 요리 선생님의 수요가 탄생한다.
이렇게 저렇게 균형을 맞춰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다. 학교를 보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애가 엄마 머리를 닮았다. 결국 사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다. 그렇게 대치동 학원가가 탄생한다. 그래도 도저히 인서울 대학을 보낼 수가 없다. 그런데 마침 중국과 수교가 되고 소련도 무너진다. 해외 여행 자유화가 되면서 유학의 문턱은 낮아지고 선택의 폭은 넓어진다. 중학교 때부터 다른 나라로 보내 버린다. 동유럽의 처음 듣는 나라의 낯선 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하게 하거나, 미국의 이름 모를 주의 주립 대학이라도 나오게 한다. 그렇게 한국의 어느 대학의 교수 자리라도 차지하고 앉으면 저 긴긴 세대 갈이의 작업은 얼추 완성된다.
그러니까, 결론은... 하늘에 뚝 떨어진 게 아니라면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는 말이다. 갑자기 무슨 전집을 사들이고 TV를 없애고 한쪽 벽을 책장으로 장식한다고 아이가 수재가 되거나 독서가가 되지 않는다. 단지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종종 TV를 보다 보면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법 같은 걸 말하곤 하는데 그런 법들을 모두 지키기만 하면 애들이 다 부모가 원하는 아이로 큰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어린이집 졸업반부터 최근까지 은채 친구들 이야기와 그들 부모 이야기를 건너 듣다 보면, 다시 말하건대, 결국 애는 부모를 닮는다는 걸 확인했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먹는 거, 자는 거, 노는 거 등등 태어나서 지금까지 선택의 여지없이 부모와 함께 해 왔는데 부모와 다른 취향을 갖고 성장하는 게 더 이상하다.
애들은 어른보다 훨씬 미디어 이용에 능수능란하다. 특히 나 같은 늙은 아빠들은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적응력에 실로 감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문자도 척척 보내고 어플을 이용해 사진도 재미있게 찍는다. 이런저런 게임도 어디서 듣고 깔아달라고 한다. 이런 통제는 주로 엄마가 한다.
아내는 나보다, 소위 디지털 리터러시가 높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한 것도 있지만 새로운 기계를 다루는데 겁이 없다. 디지털카메라도 몇 번을 바꿨고 스마트 폰도 새로 사면 금방 적응한다. 나 같은 경우는 2G 폰으로 버티고 버티다 애가 초등학교 들어가서야 스마트 폰으로 바꿨다. 의외로 스마트 폰이 없으면 학교와의 소통이 쉽지 않아서였다. 어찌 됐든 아내는 은채가 갖고 노는 스마트 폰이자 자신의 옛 기기에 게임을 딱 두 개 밖에 깔아주지 않았다. 은채도 더 이상 요구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게임을 하고 싶으면 기존의 게임 하나를 지우고 깔아야 했다. 그 원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내의 허락 없이는 뭐 하나 깔기 어렵게 해 놓은 탓이다.
게임 시간은 아이가 스스로 조절한다. 애초에 IT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삼촌한테 게임을 배워서 기본적인 태도가 좋다. 게임하는 시간, 자세 등이 말이다. 삼촌은 게임을 오래 하고 싶으면 눈도 건강하고 몸도 건강해야 하니 폰이나 모니터와 거리를 잘 띄우고 어느 정도 하면 쉬어줘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 가르침은 은채가 처음 삼촌 집에서 게임을 하기 시작한 대 여섯 살 때부터 지속됐다. 또 애초에 게임 시작이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닌텐도 윌 같은, 몸을 움직이는 거의 운동에 가까운 게임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모니터와 거리를 두는 것, 시간에 제한을 두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삼촌은 그렇게 은채의 게임 멘토이자 IT 멘토가 됐다. 지금도 은채는 삼촌과 함께 주말이면 <모여 봐요. 동물의 숲>을 한다. 삼촌이 사 준 게임기를 통해 삼촌네 섬에도 놀러 가고 다 같이 모여서 낚시 대회니 곤충 채집 대회도 한다. 내가 볼 때는 뭐가 재미있나 싶은데 엄마까지 셋이 거실에 앉아서 심각하게 할 때 보면 애 어른 구분 없이 영락없이 게임 폐인이다.
장편 애니메이션도 자연스럽게 접했다. 오래 앉아 있을 만한 때가 돼서 보기 시작한 거다. TV 만화 채널에서 하는 긴 영화도 꼼짝 않고 보기에 엄마가 시험 삼아 영화관에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동 연극도 보러 다니고 뮤지컬도 보러 다녔다. 어디 한 군데 진득하게 앉아 있는 건 나보다 낫다. 두 시간 가까이 되는 공예 체험 프로그램도 끈기 있게 앉아서 잘한다. 목공예를 체험할 때는 선생님이 “자네 목공예 한번 해보지 않겠나?”하고 스카우트 제의를 했을 정도다. 따지고 보면 체험이든 공부든 노는 것이든 그 진미를 알려면 진득하게 맛을 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약간 산만한 아빠를 안 닮은 건 천만다행이다. 진득한 건 아마 삼촌과 엄마를 닮은 것 같다.
난 웹툰 1세대 소비자다. 강풀의 일상다반사와 마린블루스로 웹툰을 접했던 시대다. 그러다 안 챙겨 본 지 한 십몇 년은 넘은 듯하다. 드라마도 안 본다. 영화관도 잘 안 간지 십몇 년 됐다. 어찌나 광고가 많은지. TV로는 다큐멘터리나 뉴스, 스포츠만 좀 본다. 그나마 스포츠도 다 보는 게 지겨워서 요즘엔 유튜브에서 하이라이트로 본다. 드라마나 요즘 관찰 예능은 결국은 남에 삶을 들여다보는 것인데 이 나이쯤 되면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어서 중간에 심드렁해진다. 연예인도, 유명인도,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부부 싸움하는 것 비슷하고 연애의 양상도 거기서 거기다. 차라리 <순간 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것이 더 드라마틱하다.
남에 삶에 대한 관심은 내 삶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아니면 관음증일 수도 있고 오지랖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드라마를 보면서 훈수를 둔다. 아마 많은 드라마 팬들이 비슷할 것이다. 헤어지지 말라고 훈수 두고, 이혼하라고 잔소리하면서 그런 극 밖에서의 말들이 극에서 진짜 실현될 때는 연대 의식을 느끼고, 실현되지 않을 때는 분노하면서 볼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TV 드라마가 시청자와 호흡하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아내는 자기 스스로 대한민국 표준의 드라마 시청자라고 자부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드라마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드라마고 가장 화제가 되는 드라마라고 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언젠가부터 그런 아내 곁에서 딸도 함께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도깨비>부터 엄마 옆에서 훌쩍 거리며 보더니 <구미호>도 같이 봤다. <여신 강림>도 같이 봤다. 본방은 워낙 늦게 하다 보니 주말이나 평일 낮에 재방송을 챙겨봤다. 볼 때마다 어찌나 감정 이입해서 보는지, 지가 주인공이다. 웃긴 건 딸은 이미 이 드라마의 스토리 전개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봤다는 것이다. 그전에 이미 웹툰으로 봤으니 말이다. 캐릭터며 갈등 전개까지 다 아는 데도 재미있게 봤다. 언제부터 웹툰을 보기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소녀 취향의 웹툰을 본지는 꽤 된 듯하고 그런 내용을 종종 나와 엄마에게 얘기한다.
딸은 가족과의 담화에서 시작해서 친구와 선생님의 담화를 거쳐 더 넓은 학교라는 담화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뽀로로라는 한정된 공간, 한정된 숫자의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여러 공간, 다수의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복잡한 이야기 소비자로 성장해 갔다. 우정과 화해, 공공질서를 잘 지키라는 뽀로로와 타요 등의 만화 내러티브는 딸에게 담화의 알파벳 같은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통해 어린이집 이전에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사회적 상호 작용의 기본 도구를 습득했던 것 같다. 딸이 크면서 이야기의 복잡성은 증가했고 그 복잡성과 함께 딸이 신경 써야 할 감정들, 질서들, 규칙들, 상호작용의 대상도 늘어갔다.
이런 복잡성의 증가는 동화책에서 시작해서 최근의 어린이 소설에 이르는 여정에서도 발견된다. 당연히 극장 애니메이션에서도 발견되고 말이다. 그래서 딸이 과거의 만화와 이야기를 유치하게 생각하는 건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이다. 지적으로, 육체적으로, 감성적으로, 사회적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