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딸의 선배가 된다.

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10

by 최영훈

셜록 홈스는 아직 무리였다.

그러나 부모의 욕심과 은채의 욕심이 성장을 앞설 때가 있다. 은채는 두세 살 때부터 서재의 책을 탐냈다. 말을 제법 재잘거리게 됐을 무렵, 서재에 들어와 나중에 이 책들을 자기한테 달라고 몇 번이나 다짐받았다. 그때는 아주 먼 훗날의 일이라 여겨 생각 없이 오케이 했었다.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애니메이션 <엉덩이 탐정>을 보기 시작하더니 탐정에 대해 궁금해했고 소설 속의 탐정 중 가장 멋진 탐정은 셜록 홈스라는 말에 아빠 서재에 꽂힌 셜록 홈스 전집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2학년 때 <에밀과 탐정>과 <수상한 바리스타와 사라진 금괴>를 읽은 후부터는 더 궁금해했다. 결국 코난 도일의 <주황색 연구>를 빌려줬다.


며칠 후, 딸은 다 못 읽었다며 갖고 왔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복잡한 눈물이었다. 책을 끝까지 못 읽어서 아빠를 실망시켰을지도 모른다는 자책감, 아직 이런 책은 쉽게 읽어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원망과 책망 등이 뒤 섞인 눈물이었다. 괜찮다고 말해줬다. 애초에 다른 소설들을 버릴 때도 4,50 권의 재미있는 추리소설과 셜록 홈스 전집을 남겨 둔 건 다 너 때문이라고 말해줬다. 언젠간 이런 소설들을 너에게 물려준 뒤, 네가 읽어나갈 때 아빠도 다시 읽어가며 같은 소설로 얘기하고 싶어서 남겨뒀다고 말해줬다. 그제야 딸은 눈물을 그쳤다. 책은 서재에 늘 있을 테고, 언젠가 때가 되면 자기도 읽을 수 있으리라는 안도감이 생겼던 것 같다.

소설과 드라마는 다르다.

지금 딸의 수준은 <시공 주니어>와 <13층 나무집 시리즈> 정도다. 사라진 금괴나 물건을 찾는 정도의 이야기, 한 두 개의 단서로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 내 이웃과 친구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이야기, 친구와 함께 모험을 하고 집과 현실로 돌아오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이 현재 딸의 수준이다. 물론 <도깨비> 같은 드라마는 이야기의 복잡성만 놓고 보면 이런 소설들보다 훨씬 수준이 높다. 그러나 그건 드라마다. 드라마의 이야기는 영상과 대사로 이어진다. 장면 전환과 음악, 효과 등으로 이야기 전개와 그로 인해 발생한 감정의 성격과 농도까지 미리 알려준다. 또 대부분의 드라마는 소위 클리셰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엄마 옆에서 몇 년간 드라마를 봐온 은채 같은 딸들이라면 당연히 엄마처럼 다음 장면과 이야기의 전개를 예측할 수 있다. 늘 똑같은 내용인 일일 막장 드라마가 아니어도 가능하다.


책은 조금 다르다. 특히 추리소설은 다음 장을 예측할 수 없다는 데서 그 재미가 보장된다. 본격 추리소설에선 독자와 게임을 한다. 책 곳곳에 단서를 흩어놓거나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죽음을 제시하고 함께 문제를 풀어보자고 게임에 끌어들인다. 나도 중학교에 접어들어서야 아가사 크리스티의 <구름 속의 죽음>이나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 <오리엔트 특급 살인>, 그리고 가스통 루루의 <노란 방의 비밀>, 존 딕슨 카의 <화형 법정> 등을 읽었다. 은채가 이런 본격 추리물을 읽기 위해선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지식의 완성을 향한 욕구

은채 친구들 중에서도 이런 친구들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알고 싶은 욕심이 가득한 친구. 이런 욕망은 <Why> 시리즈 같은 것으로 촉발된다. 여기에 <신기한 스쿨버스>와 같은 시리즈물이 합세해서 그야말로 백과사전파 같은 지식의 총람에 대한 열망에 불을 붙인다. 은채도 1학년 즈음부터 사전류와 도감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식물도감과 동물도감을 갖고 싶어 했다. 식물도감은 나도 은채가 걷기 시작할 때부터 하나 갖고 싶었다. 은채가 이런저런 꽃과 나무의 이름을 물어볼 때마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딸이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구입한 스마트 폰 덕에 이미지 검색을 해서 말해주곤 했지만 학습의 모양새로는 영 아니다 싶어서 이 바람은 없어지지 않았다. 원하는 정보를 찾는 게 쉬워진 세상에서 그 찾음의 과정과 시간 속에서 얻어지는 그 무엇의 결여를 체감했기 때문이다.

KakaoTalk_20220315_223856148.jpg 딸은 이제 원하는 책은 알아서 찾는다.

결국 3학년을 코앞에 두고 중고 서점에 가서 보리 출판사에서 나온 <세밀화로 그린 어린이 식물도감>과 <세밀화로 그린 어린이 갯벌 도감>을 샀다. 나도 몇 년 전부터 사고 싶었던 책이었다. 사고 보니, 당연히 내가 더 신이 났다. 그림들을 어찌나 실감 나게, 공들여 그려놨는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또 식물도감의 경우 과일, 곡물, 숲 등을 주제로 식물을 구분해 놔서 교육용으로 손색이 없었다. 함께 구매한 책도 아빠가 원하는지 딸이 원하는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맘에 드는 책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어떤 보물이 있을까?>라는 책이다.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서울 여행 중에 직접 보고 온 유물들을 중심으로 그 유물들의 역사적 배경과 발굴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예전에 읽었던 조유전 선생님의 <한국사 미스터리>의 어린이 버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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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독학 팔자, 아빠

난 혼자였다. 형도 없었고 누나도 삼촌도 없었다. 중학교 즈음부터 내가 구성한 지적 세계는 학교와 친구와 부대끼며 온전히 내가 만든 것이었다. 헤르만 헤세와 아가사 크리스티도 나 혼자 찾았다. 책을 살 돈도 없었기에 많이 읽지도 못했다.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미군부대 앞에서 십 대 이십 대를 보냈기에 음악의 폭은 무지하게 넓었다. 광범위한 흑인 음악, 록, 메탈, 초창기 힙합까지 편견 없이 들었다. 대학에 들어갈 때쯤엔 바로크 음악에도 잠시 심취해 있었고 미샤 마이스키와 요요마의 팬이 되어 첼로 선율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패트릭 브뤼엘과 파트리샤 카스의 팬이 되어 대학 교양 수업으로 불어를 듣기도 했다. 물론 두 학기 모두 C를 맞았지만.


기타도, 베이스도, 악보 보는 법과 작곡하는 법도 그렇게 혼자 뚝딱거리며 배웠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고통스러운 배움이었다. 인터넷도 없었고, 유튜브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교회 형들이 코드 몇 개 가르쳐 주면 포크송 전집 같은 걸 펴 놓고 하루 종일 기타를 괴롭혔다. 맨 몸 운동도, 농구도, 축구도, 마라톤도, 심지어 카피라이팅도 그렇게 사수 없이, 선배 없이, 스승 없이 혼자 터득하며 나이를 먹었다. 이 고독한 독학의 시간은 카피라이터로 안정을 찾기 시작한 후 스포츠 클라이밍과 수영을 배우면서 막을 내렸다.


이런 나를 가까이서 지켜보던, 대학 때 사귀었던 여자 친구가 어느 날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오빠의 마음의 상처는 오빠를 닮은 아들을 낳고 키우면서 오빠가 혼자 배운 걸 그 아들에게 가르쳐 줄 때 치유될지도 모르겠어.”, 그 친구는 내가 대학원 다닐 때 시집을 갔는데, 최근 건너 듣기로는... 흠.. 그만하자..


아빠의 가르침을 원할 때

불과 십여 년 전 딸의 아빠가 됐다. 늦게 본 딸, 은채는 아빠가 뭔가 가르칠 새도 없이 스스로 알아서 잘 배우면서 눈 깜짝할 새 커버렸다. 세상은 늙은 아빠의 속도로는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빨리 변해 돌아가고, 자기가 원하는 정보는 스마트 폰에서 기가 막히게 정확하고 빠르게 찾아 습득하는 딸이지만, 그런 딸도 아빠의 가르침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 그때, 딸이 원하는 존재가 되어주며 함께 크다 보니 어느덧 딸은 열한 살, 아빠는 쉰한 살이 됐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내가 가르쳐 준 건 한글과 몇 개의 꽃 이름뿐이었다. 그러다 은채가 초등학교 들어간 후부터 아이와 나는 독서라는 세계의 선후배 관계가 됐다. 농구를 배우고 싶어 해서 코치와 선수의 관계도 됐다. 글을 잘 쓰고 싶어 해서 광고 대행사의 사수와 부사수 비슷한 관계도 됐다.


이제는 함께 요리도 하고 책도 보고 영화도 본다. 은채는 지성과 감성이 균형 잡힌 아이다. 표현력은 날카롭고 야무지게 단어를 골라 문장과 대화 속에 나열한다. 대화의 상대로도, 카피라이터 후배로도 나무랄 데 없다. 키는 나보다 더 클 수 없을지 몰라도 그 지성의 세계, 그 사고의 날카로움은 아주 빠른 시일 내에 나를 능가할 것이다. 셜록 홈스 전집이나 에드거 앨런 포우의 전집인 <우울과 몽상>, 이이화 선생님의 <한국사 이야기>가 내 서재에 꽂혀 있을 날도 얼마 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