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11
딸은, 예전에도 말했지만 하고재비 성격을 갖고 있다. 애들이 다 그런지 몰라도, 자기가 못하는 거, 틀리는 걸 들키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자기가 남보다 더 많이 안다는 사실에 어떤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숙제나 과제를 할 때 틀린 걸 지적하면 발끈하기도 하고, 분해서 울기도 한다. 2학년, 1월(2020년 1월 16일)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아내가 금요일 밤에 우연히 은채의 수학 과제를 보고 공식을 착각했다는 걸 발견했다. 다음 날 아침 그걸 말해줬더니 아내가 동그라미 친 걸 가리키며 자기가 한 것 마냥 말하며 정답을 썼다고 발끈하며 우겼다. 당연히 엄마한테 혼이 났고 딸은 분한 눈물을 흘렸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이 부모와 갈등이 생기는 걸 좋아하지 않는 딸은 어떻게 하든 엄마와 화해하고 싶었지만 그 방법을 모른 채 자기 방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내가 들어가서 대화를 했다.
"딸, 책은 왜 읽어? 공부는 왜 해?"
"똑똑해지려고."
"그건 두뇌의 상태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너 책은 왜 읽어? 어제 식물도감 왜 샀어?"
"식물에 대해서 몰라서. 알고 싶어서."
"그렇지. 자 그럼 책을 왜 읽어? 공부는 왜 해?"
"몰라서."
"맞아. 모르기 때문에 공부하는 거야.
그래서 모른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 절대로 공부를 시작할 수 없어.
네가 모르는 거, 틀린 거를 알게 되거나 지적당하는 걸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마. 숨기려고 하지도 말고. 학년이 올라가서 과목이 많아지면 친구들마다 차이가 생겨. 어떤 친구는 이걸 잘하고 어떤 친구는 저걸 잘해. 그럴 때 네가 모르는 걸 그 친구에게 물어볼 수 있어야 공부를 잘하는 거야. 선생님한테도 마찬가지고."
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네 의사를 전달할 때는 표현을 골라야 돼.
네 기분대로 말해버리면 상대방 기분이 나빠질 수 있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들지 말고 머리에서 생각하고 말을 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은채야,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하는 거야.
도서관에 있는 수십만 권의 책을 다 읽고 죽을 수 있어?
우주의 별을 다 알 수 있어?"
"아뇨."
"그래서 평생 공부하는 거야. 그래서 아빠도 엄마도 계속 공부하는 거야.
그래도 모르는 건 모르는 거야. 죽을 때까지 공부해도 아는 거보다 항상 모르는 게 많아."
이런 대화 끝에 엄마한테 사과를 하라고 했다.
“엄마한테 어떤 말로 사과할 거야?
은채는 주춤거렸다.
“천천히 생각해 봐. 말이 정리되면 엄마한테 가서 사과해. 알았지?”
그렇게 대화를 끝내고 방을 나왔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은채는 주방에 있던 엄마에게 다가가서 사과를 했다. 물론 눈물 섞인 목소리로. 아내도 그 사과를 끝까지 듣고 안아주고 엄마가 걱정하는 것을 말해줬다.
내년이면 카피라이터 20년 차다. 그 덕에 다양한 분야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학교도 오래, 여기저기 다녔고 대학에서 강사 노릇도 했다. 그 동안 무식하지 않은 척하다가 무식한 게 탄로 나는 사람을 많이 봤다. 사장이든 교수든 젊든 늙었든 이런 사람은 흔하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무식한 게 탄로 나는 사람 대부분은 자신의 무식을 인정하지 않거나 그 사실을 모른다.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다.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주변에서 그의 무식을 덮어줬던 사람들이 제법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의외로 대기업 사장님이나 고위 공무원 중에서 깜짝 놀랄 만큼 무식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모름을 투명하게 인정하지 않으면 배움의 발전이 더디거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 나와 아내의 공통된 생각이다. 그래서 딸이 클수록 진짜 무식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진짜 무식한 건 자신이 무지하다는 현상에 무지하다는 거,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는 거라는 걸 가르친다. 더 나아가 하나의 책을 읽으면 그 안에 열 가지 모름이 있다는 걸 가르친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알 수도 없고, 심지어 다 알 필요도 없다는 것도 가르친다. 지금 알아야 될 지식은 교과서에 있으니 그 밖에 있는 걸 몰라서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는 것도 가르치고 있다. 은채 친구들 중에는 주산을 배우고 있는 덕에 계산이 빠른 친구도 있고 미술학원에 다녀서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도 있다. 음악 학원을 다녀서 악기를 잘 다루는 친구도 있다. 타고난 재주가 다르고 관심사가 다르다 보면 당연히 관련 지식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런 개별적 차이를 모두 극복해서 모두를 앞지르겠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과욕이라는 것도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은 종종 이런 과욕을 당연시하면서, 모든 걸 배워서 모든 친구를 앞서겠다는 생각을 한다. 은채도 어린이집 때부터 그랬다. 애들의 사교육이 생각보다 일찍 시작하다 보니 어린이집 때부터 자기보다 한글을 잘하는 애, 셈을 잘하는 애, 음악을 잘하는 애가 눈에 띈 것이다. 그때부터 자기도 이걸 하고 싶다, 저걸 하고 싶다고 했다. 그중에서 은채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장하는데 도움 될 만한 거 몇 개를 골라서 시켰다.
아내는 늘 자기 목이 짧다고 아쉬워했고, 여자는 자세가 예뻐야 한다고 생각해서 딸과 함께 문화센터에서 발레를 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주산을 배워두는 게 좋다고 해서 그것도 배우게 했다. 한글은 내가 가르쳤고 학교 들어가서는 미술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해서 다니게 했다. 나머지는 학교 방과후 교실을 바쁘게 오갔다. 방송 댄스도 배우고 음악줄넘기와 3D펜, 바이올린도 배웠다. 심지어 근처 공원에서 열린 구청이 주관한 평생학습 행사를 구경하다 목공예 교실도 신청해서 다녔다. 물론 이 중 어느 걸 계속할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3학년부터는 아빠한테 통기타도 배우기로 했고, 농구도 배우기로 했다. 배우고 싶은 건 계속 늘어날 테고 시간을 더 없어질 것이다. 결국 은채 스스로 선택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 순간, 그러니까 무엇을 더 하고, 무엇은 그만둬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은채가 생각해줬으면 하는 것이 바로 모든 걸 알 필요도 없고, 모든 걸 알 수도 없고, 모든 걸 잘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는 사실이다. 마음을 비우고 내가 뭘 잘하고 뭘 좋아하고 어떤 것에 열정을 쏟기를 좋아하는지 스스로 깨닫기를 바란다. 그 과정에서 엄마, 아빠와 길게 대화하고 오래 상의해주는 딸이길 바란다.
물론 지금은 앞서가고 있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한다고 선생님도 친구들도 칭찬한다. 그러나 그런 칭찬만이 공부와 학교생활의 동기로 작동되지 않기를 바란다. 천천히 알아도 깊이 알고, 느리게 가도 꼭 다다라야 할 곳에는 도달하는, 그런 의지와 성실을 갖춘 학생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