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사람의 조건

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12

by 최영훈

아빠의 패션을 지적하다.

2학년 들어서, 아내가 탄력 근무를 하면서 등교는 엄마가, 하교는 아빠가 동행하는 패턴을 유지했다. 2학년 가을학기에는 아내가 바빠져서 등하교를 아빠가 책임졌다. 아빠가 사무실에 출근하거나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에는 외가에서 맡아주셨다. 가을에는 은채 운동도 시키고 나도 유산소 운동할 겸 일부러 빨리 걸었다. 때마침 아내가 스마트 워치를 사줘서 워킹 숫자를 헤아리는 재미까지 생겨서 열심히 걸었다. 덕분에 은채도, 나도 살이 좀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홈쇼핑을 보고 있을 때였다. 허리에 밴드가 있는 청바지 3종 세트를 팔고 있었다. 청바지는 뻣뻣한 데님으로 만들어진, 리바이스 501처럼 허벅지에 딱 맞는 바지여야만 하고, 가죽으로 된 벨트를 꼭 해야만 하는, 심지어 그 벨트엔 큼직한 버클이 있으면 더 좋다는 고집이 있었다. 미군 부대 앞에 살면서 카우보이처럼 하고 다니는 백인 젊은이들을 많이 봐온 탓이다. 그러나 이날은 무심결에 “야. 저거 편하긴 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저런 거 애들 등하교시킬 때, 마트 갈 때 딱이지.”하고 아내가 거들었다. 아내는 저런 청바지를 많이 입어왔기 때문에 저런 바지가 얼마나 편하지 알고 있었다. 옆에서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딸이 불쑥 끼어들었다.


“엄마 주문할 때, 아빠 것도 주문해줘. 아빠 맨 날 추리닝 입고 다녀.”

“당신 정말 그래?”

“아냐. 저번에 당신이 사 준 그 바지 입고 다녀. 뭐 조거 팬츠인가?”

“여보, 조거 팬츠가 추리닝이야.”

“아, 그런가?”


말이 추리닝이지 제법 좋은 브랜드고 태도 나서 자주 입고 다녔다. 아이 학교까지는 집에서 걸어서 십오 분 정도니 빨리 걸으며 운동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옷이었다. 그 바지가 딸의 입장에서는 거슬렸던 모양이다. 결국, 아내가 그 청바지 3종 세트를 주문해줬다. 입어 보니 편한 데다 핏도 좋았다.

“아빠, 이제 학교 올 때 그거 입고 와.”라고 딸이 콕 집어서 말할 정도였다.


카피라이터, 교회 그리고 코트

다들 그렇겠지만 나 또한 때와 장소에 따라 옷을 가려 입을 줄 안다. 십 대 시절부터 20여 년간 교회 갈 때 옷차림만큼은 누구보다 까다로운 어머니와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 나 또한 일요일마다 정성 들여 차려입었다. 대학에 입학할 땐 어머니가 교회 후배 아버님이 운영하시는 양복점에서 양복도 몇 벌 맞춰 주셨다. 운동을 좋아하니 운동복도 넘쳐 났다. 게다가 한 종목만 좋아하는 게 아니고 농구, 축구, 달리기까지 좋아했으니 종목별로 운동화며 운동복도 별개로 있었고, 지금도 몇 벌 남아 있다. 이렇게 때와 장소에 따라 옷을 갖춰 입는 건 어머니의 엄한 교육과 좋아하는 운동 덕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버릇이다.


카피라이터가 되고 나서는 다른 회사원들처럼 옷을 입지 않아도 된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새삼 감사했다. 처음 카피라이터 일을 시작한 곳은 AE가 열 명 정도 되고, 서울, 마산, 대구에도 지사가 있었고, 라디오 녹음실, 영상 제작 편집실, 촬영 스튜디오까지 갖춘, 부산에서 제일 큰 회사였다. 광고회사는 대행수수료를 기준으로 매달 순위가 나오는데, 그 당시 전국 50위 정도 했었다. 회사에선 영업을 하고 광고주를 만나는 AE들에겐 단정한 옷차림을 요구했다. 그러나 나와 감독, 조감독 등이 속한 기획실엔 이런저런 말이 없었다. 그래서 매일 면바지에 티셔츠 따위를 입고 다녔다.


늘 보던 아빠의 모습

그 후 공부도 하고 프리랜서 일을 하면서 복장은 더 편해졌고, 최근엔 은채를 학교를 보내면서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작업실에 출근하거나 감독과 미팅 자리에 나가고, 대부분은 집에 있다 보니 옷차림이 더 편해졌다. 여름엔 혼자 있을 땐 거의 벗고 있다시피 하고 다른 계절에도 늘 추리닝 바지에 허름한 티셔츠 차림이다. 나갈 일 없으면 머리도 안 감고 세수도 안 하고 면도도 안 한다. 하루에 몇 잔 커피를 마시면서 글을 쓰고 일을 하고 은채가 집에 있으면 밥을 챙겨주는 게 일과의 전부다. 이틀에 한번 정도 운동을 하지만 그마저도 집에서 하고 어쩌다 밖에서 걷기나 달리기를 할 때는 당연히 운동복을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쓴다.


그런 아빠를 계속 봐 온 은채는 그런 차림에 익숙해진 탓인지 아빠의 외모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한 적이 없었다. 여서 일곱 살이 되자 아빠가 염색을 하면 좋겠다는 말은 했다. 마흔쯤 되면서부터 새기 시작해서 겨울 대숲에 서리가 내린 것처럼 희어졌다. 애를 마흔에 낳았으니 은채가 보아 온 아빠의 머리칼 색은 늘 그러했는데, 어린이집 가서 딴 집 아빠들의 머리칼 색과 비교하여 보다 보니 아빠의 머리색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고, 그 후 아빠도 좀 젊어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는지 종종 엄마와 함께 슬쩍 염색 압박을 넣곤 했다. 개인적으로 지금의 머리칼 색이 맘에 들어서 일부러 그 색이 돋보이도록 헤어스타일도 짧게 바꾼 터라 그 압박을 정중히 거절했다. 대신 은채가 사춘기가 될 때까지 식스팩을 유지하기로 했다.


15년 묵은 스타일: 아빠 패션의 짧은 역사

어느 순간부터 은근슬쩍 아빠 차림새 중에서 더 좋아하는 차림새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빠의 반팔 티 중에서도 은채가 좋아하는 티가 생겼고, 가을 겨울 아우터 중에서도 좋아하는 게 생겼다. 예를 들어 은채는 아빠의 하이넥 점퍼를 좋아하는데 군대의 야상과 헌팅 재킷의 특징을 적절히 섞어서 큼직한 포켓 네 개로 장식한 재킷이다. 나도 이 재킷이 맘에 들어 색깔별로, 세 개 다 샀다. 은채는 그걸 입고 사무실에 가거나 미팅하기 위해 나갈 때마다 멋있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이젠 은채도 알지만 난 일 년 중 따듯한 5, 6개월 정도를 제외하곤 늘 같은 차림새다. 터틀넥에 재킷, 여기에 회색이나 검은색 데님이나 옅은 브라운 계열의 면바지를 주로 입고 다닌다. 아주 추워지면 바지만 좀 두꺼워지고 하이넥 재킷 안에 경량 다운재킷을 라이너로 입을 뿐이다. 그렇다고 무슨 스티브 잡스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한 건 아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카피라이터에겐 이렇다 할 복장 규정이 없었다. 그러니 옷을 살 일도 없고 튼튼한 신발만 있으면 출퇴근도 문제없었다. 그러다 카피라이터 2년 차인가, 3년 차에 한 대학에서의 강의 의뢰가 왔다. 지금이야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만 해도 부산에 광고홍보학과가 생긴 지 얼마 안 됐고, 지역 내에서 실무를 가르칠만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알다시피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서는 석사 이상의 학력이 요구되니 말이다. 그 대학의 광고홍보학과에서는 지역의 KOBACO, 즉 한국광고공사에 지역 내 카피라이터 중에서 석사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 의뢰를 했고, 늘 그곳을 드나드는 후배 AE가 나를 추천했던 것이다. 그래서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교수님의 전화를 받고 덜컥 승낙을 해버렸고 그다음 해부터 카피라이팅 강의를 시작했다.



대학 강사는 교육 서비스 직종

승낙을 하고 나니 수많은 걱정이 오갔다. 평소 내 옷차림도 마음에 걸렸다. 대학 강의는 고도의 교육 서비스다. 일단 학생들의 수강신청 경쟁이 상상을 초월한다. 원하는 수업을 신청하기 위해 수강신청 기간 첫날부터 PC 방에서 성능 좋은 컴퓨터 몇 대를 확보한 뒤, 번개 같이 접속하고 광속의 클릭을 하는 건 기본이다.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컴퓨터에 능숙한 남학생들 중에는 매크로를 돌리는 친구도 있다. 그래도 맘에 드는 강의의 수강신청에 실패한다면 학교나 학과 게시판, 단체 채팅방 같은 곳에서 강의를 사고 판다. 그래도 안 되면? 무조건 강의 첫 주, 강의실 앞에 줄을 선다. 강사와 교수를 붙잡고 하소연을 하기 위해서다.


나 같은 경우, 강의 첫 주 강의실에 들어온 백 여 명 정도 학생 중 절반이 수강신청을 열어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무작정 자리를 차고앉은 학생들인 적도 있다. 그 호소가 절실하면, 결국 담당 강사는 학과 사무실에 가서 수강신청을 열어달라고 하고, 그러면 학생들은 그 잠시의 틈새를 이용해 수강신청의 문턱을 넘는다. 수강신청의 어려움뿐인가? 당연히 학생들 등록금 또한 만만치 않다. 16주 강의를 이 돈으로 나눠보면 정말 금싸라기 같은 서너 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대학 강사는 고도의 교육 서비스 직종인 것이 당연하다. 교육의 질은 물론이고 외모 또한 나름 예의를 갖춰야 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옷장을 보니 넥타이는 유행이 한참 지났고 단정한 셔츠도 없었다. 블레이저 같은 재킷도 없었다. 마침 근처 대형 마트에서 할인행사를 해서 그곳에서 네이비색과 그레이 색 블레이저를 샀다. 여기에 매번 셔츠를 입자니 번거로울 것 같았다. 셔츠는 넥타이를 해줘야 그 단정함이 꽃을 피운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넥타이를 매지 않을 바엔 다른 대안을 찾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침 그 대형 마트에 규모가 큰 SPA 매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얇지만 따듯한 기능성 터틀넥을 샀다. 처음엔 두 개를 샀지만 하나둘씩 사모아서 나중엔 여서 일곱 개가 됐다. 그렇게 블레이저와 터틀넥을 입고 대학 강의를 나갔다. 이렇게 십여 년 강단에 서다 보니 이 패션이 제일 편해졌고, 내 스타일로 정착이 됐다.


터틀넥이 불러온 오해

매번 이렇게 입다 보니 학생들한테 오해를 사기도 했다. 한 번은 나랑 친해진 한 학생이 강의 후 같이 점심을 먹다 불쑥 이런 질문을 했다.

“교수님은 왜 터틀넥만 입으세요?”

“뭐 셔츠 단추 끼는 것도 귀찮고, 적당히 단정해 보이고, 환절기 목 건강에도 좋지 않을까?”

이렇게 가볍게 대답하니 그 친구가 작은 한숨을 쉬며 아이들의 추측을 들려줬다. 봄 학기, 가을 학기 할 것 없이 터틀넥만 입으니 내가 목에 문신이 있을지 모른다는 추측이 시작됐던 것이다. 여름엔 서로 볼일이 없었으니 이런 추측은 굳어졌고, 이런 추측은 안 그래도 창의적인 젊은 친구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펴서, ‘목의 옆이나 뒤로 올라온 문신이라면 아마 용 문신일 것이다.’라는 구체성을 띄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사이자 장차 업계 선배가 될 사람, 게다가 외모 또한 만만치 않게 생긴 남자에게 대뜸 문신을 보여 달라고 할 수는 없으니 진위 여부는 확인되지 못한 채 추측만 차곡차곡 부풀려졌던 것이다.


여하간 이때부터, 그러니까 2004년부터는 거의 같은 옷차림이다. 터틀넥이 낡으면 새것으로 사고 대학 강의를 안 나가게 되면서 블레이저 대신 하이넥 점퍼를 입고 다닐 뿐이다. 맘에 드는 터틀넥 브랜드가 있으면 모든 색을 사고, 하이넥 재킷도 맘에 들면 색깔별로 산다. 물론 여름용도 있다.


편한 옷이 공부할 때 좋은 옷

난 대학 4년 내내 기숙사에 살아서 학교가 곧 집이었기에 무지하게 편하게 하고 다녔다. 심지어 내가 사회체육학과 학생인 줄 알았던 이도 있을 정도였다. 대학 때 깃이 있는 재킷은 다 합쳐서 대여섯 번 정도 입었을 거다. 그중 두세 번은 기숙사 간부로 기숙사 행사할 때 입었던 것이고 나머지 두세 번은 기숙사 동료가 학생회장 선거에 나간다고 해서 홍보 담당자로 도와주면서 같이 움직일 때뿐이다. 이런 학창 시절 경험 때문인지, 은채가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편하게 입고 가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쓸데없이 과하게 옷을 입거나 옷차림에 신경 쓰는 거 같으면 학교에 옷 자랑하러 가는 거 아니라고 말해줬다.


애를 학교에 보내고 나니 의외로 활동하기 불편하게 옷을 입혀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이 제법 많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어른 여자가 사무실에 출근할 때처럼 옷을 입혀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 게시판에는 심심치 않게 “내일은 체육 활동이 있으니 꼭 편한 복장을 입혀 보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공지가 뜨곤 했다. 편한 옷을 당연시하던 은채도 2학년쯤 되니까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화려하게 입고 가고 싶어 했다. 그렇다고 뭐 정장 같은 걸 입고 가고 싶어 하는 건 아니고, 예를 들어 미국 친할머니가 자신의 취향대로 보내주신 붉은색 니트를 입고 싶어 하거나, 여름엔 반바지 대신 멜론색 원피스를 입고 가고 싶어 하는 정도다. 물론, 그 정도라면 나도 말리지 않았다.


브랜드보다 색이 더 중요할 나이

색에는 관대한 편이다. 대학 때부터 한 결 같이 오렌지색과 노란색을 좋아했던 터라 사람이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를 갖고 그 사람을 판단하거나 평가하는 섣부른 짓을 하지 않는다. 지금 이 글도 대학 시절에 산 오렌지색 폴라텍 풀오버를 입고 썼다. 당시, 이걸 입고 학교에 가면 다들 어디 산악부냐 어디에서 샀냐고 산악부 학생들이 물어볼 정도였다. 기숙사 후배들은 형이 그걸 입고 있으면 점심때 학생 식당에서도 1초 만에 찾을 수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축구화도 오렌지색이었는데 당시 7천 학우 중에서 내가 유일했다. 봄에는 노트르담 대학교의 노란색 윈드 브레이커를 입고 다녔고, 가을에는 가죽으로 된 오리지널 파일럿 재킷을 걸치고 주름이 두 개 있는 치노 팬츠를 입고 다녔다. 남들이 어떻게 입고 다니는지 애초에 관심이 없던 터라 마음대로 입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은채도 남에 시선에서 좀 자유롭게 크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 어떤 색을 고르든 절대로 금지시킨 적이 없다. 단지 앞서도 말했듯이 검은색이나 회색을 상의로 고르는 건 좀 말렸을 뿐이다. 덕분에 지금도 은채는 색에 대한 편견이 없다. 지금도 아빠가 오렌지색 윈드브레이커나 노란색 마운틴 파카를 입어도 그러려니 한다. 오렌지색 경량 다운을 입은, 흰머리 성성한 쉰이 다 된 아빠와 중고서점까지 손잡고 걸어가는 걸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빠는 늘 그런 색을 입어 왔고 앞으로도 입어갈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초봄과 가을, 겨울 내내 하이넥 재킷에 실켓 터틀넥을 입고 출근을 해도 그러려니 한다. 아빠가 십 년 이상 똑같은 차림을 해 왔고 앞으로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계속 저렇게 입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런 아빠를 보면서 은채도 남에 시선과 세간의 유행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색이 선명한 삶을 꾸려나갈 취향과 의지가 생겨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뭘 입든 자기가 편하고 행동과 자세가 당당할 수 있는 옷차림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싹트길 바라고 있다. 더 나아가 옷차림새로 누군가를 섣불리 평가하는 실수를 하지 않길 바라고 있다. 더 나아가 외모나 타고 다니는 차로 사람을 평가하는 속물이 되지 않길 바라고 있다. 요즘도, 딸을 데리러 갈 때마다 홈쇼핑에서 주문한 밴드 청바지를 입고 간다. 뭐 여전히 머리를 안 감아서 모자는 쓰고 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