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닮지 않은 딸

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14

by 최영훈

선생님의 걱정

은채는 2학년 때부터, 3학년이 되면 과목이 늘어난다고 종종 걱정스럽게 말하곤 했다. 팬데믹 시기, 2주간의 짧은 겨울방학이었지만 학력 격차를 걱정한 선생님들은 이런저런 과제를 내주셨다. 물론 대부분의 과제는 학생과 부모의 재량에 맡기는 거지만, 그 면면을 찬찬히 뜯어보니, 그 과제들엔 선생님의 걱정이 담겨 있었다. 그 과제 중 하나가 3학년 과목 미리 예습 하기였다. 특히 수학을 콕 집어서. 딸은 워낙에 선생님 말씀이라면, 죽으라면 죽는시늉까지 하는 녀석이라 방학을 하자마자 예습을 해야 한다고 했다.


참고서를 고르자

사실 그전부터 참고서를 사달라고 했다. 애들은 거의 모든 광고를 열심히, 유심히 보는데 설마 학습지 광고까지 꼼꼼히 볼 줄은 몰랐다. 방학이 다가오니까 불쑥 참고서 브랜드 몇 개를 얘기하며 미리 사달라고 했다. 딸과 나란히 앉아 서재의 컴퓨터로 몇 개의 브랜드를 검색해 봤다. 은채는 미리 검색을 해 봤는지 이건 이렇고, 저건 어떻고, 나름 자기 의견을 갖고 있었고, A 브랜드로 이미 마음이 기울어 있었다.

“학습지는 이렇게 보는 것보다는 실물을 보는 게 나을 것 같으니까. 주말에 아빠랑 서점에 가보자.”

그렇게 약속을 하고 간신히 컴퓨터를 껐다.


주말에 딸과 집 근처 대형 서점에 가서 몇 종류의 참고서를 놓고 살펴봤다. 은채는 전체적인 구성에서부터 단원마다 정리해주는 만화까지 꼼꼼히 살핀 끝에 한 브랜드를 선택했다. 원래는 수학만 사고 싶다고 했는데 눈치를 보니 전 과목을 다 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아빠가, 아빠 용돈으로 사줄게. 저 세트로 살래?”

“응.”

결국 빨간색 가방에 든 참고서 세트를 사서 집으로 왔다. 그날부터 은채는 과목을 오가며 참고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보다가 모르는 게 있거나 신기한 게 있으면 어김없이 아빠한테 와서 물었다.


아빠 사전에 예습이란 없었다.

“굳이 말 안 해도 알아.”라고 할 사람이 많겠지만, 새삼 말하자면 딸은 날 별로 안 닮았다. 외모와 성격 모두 나를 닮은 걸 꼽으라고 하면, 딱히 콕 집어 말할 게 없다. 외모 중 하나를 굳이 꼽자면 발과 걸음걸이는 나와 아주 똑같다. 특히 약간 안짱다리로 걷는데, 그것도 왼발이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는 건 아주 비슷하다. 이런 사소한 거를 제외하면, 인간 그 자체로는 나하고는 딴 판이다. 공부의 맥락에선 더 그렇다. 난 예습 따윈 대학원 가기 전까지 해본 적도 없고 참고서는 물론이고 책도 번듯하게 산건 스물넷, 대학 이후였다. 가난도 그 이유가 되겠지만, 공부를 적당히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딸의 공부 성향은 엄마나 외삼촌에 가깝다. 우직하게 앉아 있을 줄 안다. 한마디로 엉덩이가 무거운 타입이다.


그렇다고 마냥 공붓벌레 타입도 아니다. 하고 싶어 안달 나 했고,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는 방과 후 교실의 목록을 보면 방송 댄스와 음악 줄넘기, 바이올린이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카피라이터 아빠와 의료 사회복지사 엄마의 조합으로 나올만한 이상적인 딸일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은채는 창의적이면서도 체계적이고 계획적이며, 꼼꼼하고 엄격하면서도 어떤 부분에선 한 없이 느슨하다. 이렇게 참고서를 서둘러 사달라고 하면서도, 중고서점에 가면 구스 범스 시리즈나 공포 버스 시리즈에 손이 간다.


은채의 조화로운 십 대를 위해 3학년이 되면 농구와 기타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은채가 하도 졸라서 애 보는 앞에서 몇 년 만에 기타 튜닝을 했다. 세상이 좋아져서 튜너 앱으로 하니 금방 끝났다. 농구는 이 사태가 좀 진정되면 근처 대학의 코트에서 가르쳐 주기로 했다. 벌써 농구공을 사야 한다고 들썩이긴 하지만 말이다.

KakaoTalk_20220328_125516013.jpg 은채 취향대로 바뀐 기타

돌아보니, 혼자가 아니었다.

난 혼자 이리저리 들이박으며 습득했다. 축구와 농구는 친구들과 하면서 늘었고, AFKN으로 NBA를 보면서 마이클 조던 흉내를 냈다. 기타는 교회 형들이 가르쳐줬지만 나중에 시작한 베이스나 작곡 같은 건 혼자 터득했다. 대학에 갔을 땐 그 학과의 1기였고, 석사 시절엔 동기 및 선배들과 출신 대학이 달랐다. 카피라이터 일을 시작할 때는 회사에 사수가 없어서 몇 달간 관련 책을 독파하고 과거의 심의 자료를 들춰가며, 그 와중에 틈틈이 성질 더러운 사장이 던지는 재떨이를 피해 가며 일을 배웠다. 카피라이터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해 마라톤을 시작했을 땐 일단 달렸고 그 후 관련 사이트를 찾아가며 훈련법을 익혔고 유명한 마라톤 책들을 섭렵했다. 대회는 아내가 데려다주거나 지하철을 타고 가서 혼자 참가했다. 흔한 말로 독고다이 인생이었다.


딸은 친구와 더불어 가는, 가족에게 조금은 기대는, 소위 부르디외식으로 말하면 엄마 아빠의 사회적 자본에 힘입어, 나보다 좀 더 풍요롭고 편안한 유년기를 보내길 바랐다. 실제로도 그렇게 크고 있다. 부모 마음이 다 같을 거다. 딸의 참고서를 사서 서점을 나오면서 불쑥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들이 생각나서 잠시 콧등이 시큰했었다. 국어를 가르쳤던 1학년 담임 신난숙 선생님, 요즘 말로 꽃중년인 수학을 가르쳤던 2학년 담임 조용현 선생님, 미술을 가르쳤던 3학년 담임 이정자 선생님. 이 분들 덕에 끼니를 걱정하면서도 그럭저럭 중학교는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