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15
3학년이라고, 과목수가 많아져 봐야 사회, 과학, 도덕 정도 추가되고 여기에 영어가 들어간다. 받아온 교과서를 보고 알았지만 사회 안에는 지리와 문화 등 지역 사회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는 내용들이 들어 있었다. 과학은 과학적 사고를 시작하는 첫 단추 정도이고 도덕도 그 수준이었다.
정작 나를 당황시킨 건 영어였다. 내가 처음 알파벳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건 중학교 들어가서부터였다. 물론 미군 부대 앞에 오래 살았으니 대강의 알파벳은 알고 있었고 AFKN으로 스포츠를 즐겨 봤으니 그럭저럭 듣는 귀도 있었고, 익숙한 단어도 제법 됐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 영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중학 시절에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을 겪었지만 글로벌이라는 단어는 아직 우리 앞에 오지도 않았을 때였다. 이후 해외여행 자유화도 겪었고 대학 때는 심심치 않게 해외여행 가는 동료 학생도 있었다. 교회에선 90년대 중반부터 성지 순례가 유행이었고 대학 졸업 여행도 해외로 가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난 서른 중반까지 가까운 일본도 안 가봤고, 중국과 수교를 한 92년 이후에도 중국은 물론이고 나라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외국어에 대한 필요성도 못 느꼈고 여권도 없었다. 그나마 대학원에 다니면서 영어를 좀 공부했고, 여권을 만든 건 아내와 결혼한 2006년이 처음이었다. 이미 서른 중반이었다.
은채가 처음 비행기를 탄 건 세 살 때였다. 그 비행기를 타고 미국의 친할머니를 보러 갔다. 그 이후로 일본, 베트남, 제주도 등지를 갔다 왔고, 6살 때 미국에 또 가서 친할머니도 보고 플로리다에 있는 디즈니월드까지 갔다 왔다. 세상이 글로벌화됐다고 해도 나에겐 그저 구호에 불과하지만 아이에겐 현실이었고 당연한 것이었다. 게다가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하나밖에 없는 이모 때문에 다른 나라에 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자체가 없다.
그래서인지 은채는 종종 미국으로 유학 갈 거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이지 않을까? 나름 스스로 결심과 다짐을 했는지 엄마가 쓰던 옛날 스마트 폰을 주자 여기에 파파고를 깔아 영어 단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혼자서 알파벳도 공부하고 궁금한 표현이나 단어는 파파고에게 물어봤다. 심지어는 짧은 문장도 만들어서 반복해서 듣고 따라 하기도 했다.
아빠가 붉은색과 파란색 선으로 이뤄진 네 줄의 선이, 마치 오선지처럼 자리한 영어 공책에다가 조심조심 대문자와 소문자의 정해진 크기를 지켜가며 손으로 써가며 “문자”인 알파벳을 배웠다면 은채는 파파고를 통해 “언어”인 영어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아빠가 Hi Jane과 Hi min-ho로 대화를 읽기 시작했다면 은채는 자기가 말하고 싶은 내용을 알아가는 것으로 영어를 시작하고 있다. 아빠가 영희와 철수와 함께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을 나이에 은채는 영어를 일상처럼 접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간 미국에 유학 가야지, 다른 나라에서 공부해 봐야지 하는 생각, 나도 이모나 친할머니처럼 다른 나라 사람과 편하게 대화해야지, 아빠나 엄마처럼 미국 소식이 궁금하면 CNN을 자연스럽게 찾아봐야지, 다른 피부색을 갖고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 속에서 한번 살아봐야지 하는 생각, 그런 모든 생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을 굳건히 지켜나갈 만큼 나이가 들수록 더 커지는 용기, 이런 것들이 은채로 하여금 영어를 공부하게 하는 것 같다.
3학년이 되면서 공부에 대해 여간 신경 쓰는 게 아니다. 아빠도 엄마도 아닌 딸이 말이다. 물론 아내도 제법 신경을 쓴다. 분명 나보다 열 배는 신경 쓴다. 직장이 대학 병원이다 보니 똑똑한 사람 넘쳐나고 안정된 중산층이 흔하다. 게다가 병원 위치가 부산의 강남이라는 해운대에 있다 보니 이런저런 정보의 유통도 빠르다. 가만히 있어도 고급 교육 정보들이 아내에게 들어온다. 한 직장을 20년 이상 다니면 싫든 좋든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심지어는 우정 비슷한 것을 나누는 동료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 동료들의 자녀들은 대체적으로 우리 아이보다 나이가 많기에 자의든 타의든 자녀교육의 정보의 누적이 상당하다. 그렇게 취합된 정보 중 몇 개는 종종 내게로 전해진다. 자세히 보진 않는다. 그저 참고하라고 보내줬으니 참고하는 것이고 권장도서 목록이니 그 권함을 감사히 받을 뿐이다.
받아쓰기는 늘 백점을 받아야 하고, 수학도 잘해야 하며 수업 시간에 손도 제일 많이 들어야 하며 발표도 가장 많이 해야 학교에서 하루를 알차게 보낸 것이고, 여기에 급식까지 맛있으면 금상첨화라 여기는 딸에게 적당히 하라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조금은 느긋한 마음을 갖도록 농담 섞인 말을 건넨다.
“어이 딸, 초딩은 말이야, 아빠가 늘 말하지 3잘,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일어나기만 해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 거야.”
“그래? 그건 이미 잘하는데.”
“그렇지. 가리는 거 없이 잘 드시고, 화장실 들어가면 3초 똥이시고, 누우면 주무시고 일곱 시면 일어나시니까.”
이런 초딩의 덕목을 심각한 순간마다 가볍게 말해준다. 받아쓰기 때문에 고민하거나, 방학 숙제를 좀 더 잘하고 싶어 한다거나, 학교에서 하는 모든 걸 다 잘하고 싶어 할 때. 이럴 때 딸은 엄마가 집중할 때처럼 눈썹을 찌푸리며 아빠에게 심각하게 말하곤 한다. 과목이 어쩌고 저쩌고, 시험이 이러쿵저러쿵, 숙제가 이러니 저거니 하며 아빠한테 털어놓으면 그 끝에 꼭 저렇게 말해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그거 세 개만 잘해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 거라고 말해준다. 그러니 공부 스트레스는 받지 말라고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