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18
TV로는 주로 뉴스와 스포츠를 본다. 또 가끔 영화 채널에서 어쩌다 보고 싶었던 영화나 좋아했던 영화를 하면 본다. TV는 대부분 은채 차지다. 물론 은채도 하루 종일 TV 앞에 앉아 있는 스타일은 아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해서 뭔가를 만들면서 놀거나 자기 방이나 큰 안방에서 어떤 역할을 설정을 해서 1인극 비슷한 걸 하기도 한다. 은채는 친구와 어울려 노는 것도, 아빠와 이런저런 놀이를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도 만끽할 줄 안다. 개인적으로 혼자만의 시간, 고독한 시간을 보내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어른이 되기 힘들지 않나 하는 생각이라 은채의 다양한 시간 보내기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우리 부녀도 일주일에 한두 번, 함께 TV를 볼 때가 있다. 유재석이 나오는 주말 예능이나 노래를 듣고 가사를 맞추는 <도레미 마켓>을 볼 때다. 주중엔 열심히 삼시세끼 밥을 챙겨 먹으려 노력하기에 주중 저녁은 담백한 백반이 주 메뉴지만 주말엔 좀 느슨해진다. 치킨을 먹거나 요즘 상당히 다양해진 밀 키트를 요리해 먹곤 한다. 여기에 아빠와 엄마는 맥주를 곁들이고 딸은 차 음료를 마신다. 가끔은 사이다 같은 탄산수도 마신다. 아이의 건강을 위해 유기농과 집밥을 고집하는 부모는 아니다. 은채가 이유식을 먹을 때는 제법 그런데 신경 썼지만 지금은 적당히 타협하고 있다. 좋은 건 학교 급식에서 제대로 먹이고 있으니 주말 하루 정도는 입이 즐거운 걸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서로를 설득한 결과다.
그렇게 주말 저녁을 느슨하게 보내는 시간, 은채는 유재석과 그의 무리들을 보며 킬킬 댄다. 물론 나도 킬킬 댄다. 그러던 어느 주말 저녁, 내가 TV를 안 보고 은채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은채는 유재석을 보고, 난 은채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은채 한번 보고, 맥주 한 모금, 은채 한번 보고 맥주 한 모금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다 자기 엄마와 이모를 빼닮은 웃음소리를 내며 웃으면 나도 덩달아 웃고 있었다. 유재석한테는 미안한지만 유재석이 날 웃긴 게 아니라 유재석을 보며 웃고 있는 은채가 날 웃기고 있었던 것이다.
은채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걸 보면서 알게 됐다. 어느새 턱 밑까지 큰 딸이 아침에 잠자리에서 나와 눈도 못 뜬 채 엄마한테 아침 인사하러 가는 걸 볼 때마다 자식이 먹는 것만 봐도 배 부른다는 의미를 분명히 알게 됐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세상에 없던 존재가 십 년 동안 한 장소에서 먹고 자라서 말도 하고 공부도 하고 예능을 보면 킬킬 댄다. 엄마랑 투닥거리고 아빠가 장난치면 “에헤이”하며 정색도 한다. 아빠가 살짝 안아주면 자기가 힘을 줘서 아빠가 숨 막힐 만큼 꼭 안아버린다. 치킨 다리를 맛있게 뜯으면서 아빠에게 맥주 좀 적당히 마시라고 잔소리도 한다.
이 거짓말 같은 존재감, 그러니까 없었던 존재,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 집을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는 건 경험 없던 포만감을 준다. 물론 그 포만감은 위장으로 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신적인 포만감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아마 마음으로만 느껴지는 포만감이라고 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가까운 표현이지 않을까?
그런 포만감을 주는 사람을 딸이라고 부른다. 하루 종일 은채랑 같이 있을 때가 많은 요즘, 대부분의 부름은 딸이다. 딸을 딸이라고 부르면서 아들을 아들이라고 불렀던 어머니의 심정이 어떤 심정인지 이제 조금 이해 간다. 대학 시절, 기숙사에 있다가 주말을 맞아 집에 오면 저녁을 먹는 나를 식탁 맞은편에서 물끄러미 보곤 하셨던 어머니의 시선과 그 시간이 이제 조금은 이해 간다. 이름은 누구나 부를 수 있지만 아들을 아들이라, 딸을 딸이라 부를 수 있는 건 부모뿐이다. 그 부름은 부모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그 부름은 세상에서 오직 나에게만 허락된, 은채 아빠에게만 허락된 영광스러우면서도 운명적인 특권이다. 글을 쓰다가, 방금 “딸”하고 불러봤다. 온라인 수업을 끝내고 거실에서 잠시 TV를 보던 딸이 바로 대답한다.
“네.”
“응, 아냐.”
“왜요?”
“아냐, 그냥 불러 봤어.”
“아~”
딸은 아주 쉽게 납득하고 더 이상 왜 불렀냐는 추궁 없이 TV를 본다. 아빠는 그렇게 딸을 그냥 불러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이유 없이 그 부름의 울림을 만끽하기 위해 소리 내어 딸을 불러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세상의 사람들이 이유가 있어서 딸을 은채라고 부를 때, 아빠만큼은 아무 이유 없이 그 존재의 거기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거기 있음이 주는 행복함을 또 느끼기 위해 그저 딸을 불러 그 대답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다.
아들이 없는 곳에서도 아들을 부를 수 있다. 딸이 없는 곳에서도 딸을 부를 수 있다. 어머니는 교회 사람들과 내 얘기를 할 때마다 항상 나를 아들이라 칭하며 얘기하셨다. 그래서 교인들이 늘 아들 없는 사람 어디 서러워서 살겠냐고 말하곤 하셨다. 그러나 그분들도 다들 아들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20대를 보낸, 평택에서 다녔던 그 교회에는 유독 아들들이 많았다. 친한 교회 형님들은 다 형제였거나 남매였다. 재영이 형네도 삼 형제가 있는 4남매인가 그랬고, 구섭이 형네도 형제가 있는 4남매였다. 날 대학까지 쫓아온 교회 후배도 남매였고, 서 씨 집안도 형제가 있는 삼 남매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들 없는 집안이 없었다. 그런 어머니들, 집사님과 권사님들 중에서도 유독 어머니가 심하게 아들을 아들이라 부르셨던 모양이다.
그분들하고 어머니하고 달랐던 건 어머니에겐 내가 유일하게 부를 수 있는 자식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눈에 보일 때나 안 보일 때나 그 부름을 통해 아들의 현존을 확인하고, 그 확인을 되새김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자식들이 여러 명인 것이 당연한 시골 교회에서 부를 수 있는 자식이 하나 밖에 없었던 어머니로서는 그 부름을 통해 자식의 존재를 재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어머니가 아들과 떨어져 미국에서 사신지 20여 년이다. 그동안 서 너 번 봤을까? 화상통화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복감이 있으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