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조금만 천천히 크면 안 될까?

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20

by 최영훈

어느 날, 돌아보니 커 있었다.

딸은 이미 145다. 내가 175가 안 되고, 엄마는 160이 좀 넘으니 이거야말로 혁신이다. 딸 키우는 모든 아빠들이 공감할 테지만 어느 순간부터 비율이 달라진다. 어린이집 다닐 때만 해도 그저 동글동글한 3등신 유아다. 7등신이 될 조짐은 어디에도 안 보인다. 샤워하고 종종 거리는 아이를 수건으로 닦아 줄 때도 한두 번 스윽 닦으면 물기는 없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순간부터는 제법 오래 닦아 줘야 한다. 다리가 길어지고, 팔도 길쭉해진다. “클 때 좀 잘 먹였으면 우리 아들이 180은 넘었을 텐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던 어머니의 말씀에 기대어, 아이의 이 놀라운 비율이 나를 닮아 그렇다고 우겨보고 싶지만, 그렇게 단순한 우김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신인류의 비율이다. 지구인이 <아바타>의 나비족을 보는 느낌이다.


아기? 어린이? 소녀?

이렇게 어깨동무를 해도 제법 편할 만큼 컸지만 딸은 여전히 어린이와 소녀 사이 어딘가에서, 아직은 어린이 쪽에 더 가깝다. 샤워를 하고 몸을 가리지 않고 나와서 아빠한테 엉덩이를 보여주며 실룩대기도 한다.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면 자기 방에서 옷을 챙겨 나와 운동하라고 사 준, 거실에 놓인 작은 트램펄린 위에서 갈아입는다. 뒤뚱거리며 옷을 벗고 낑낑대며 바지를 입는다. 잘 안 들어가는 후드 풀오버를 입을 때면 아빠한테 와서 입혀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이럴 때면 아직 아기다. 어린이도 아직 안 된 것 같다. 아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작은 아기다.

KakaoTalk_20220410_093751952.jpg 4학년이 된 딸은 올리브영을 "올영"이라 부른다. 어린이날, 쓸만한 화장품을 사달라고 선포했다. 지난한 협상 중이다.

예감은 있다. 언젠간 옷은 제 방에서 입고 나올 것이다. 아빠 손을 빌리는 건 원피스의 뒷단추나 끼워 달라고 할 때이거나 운동화 끈이 풀렸을 때 정도 일 것이다. 샤워를 하면 엄마처럼 목욕 가운이나 수건으로 가리고 나올 것이고, 어쩌면 옷을 다 입고 나올지도 모른다. 그때가 언젠간 올 것이다. 조만간. 어쩌면 3학년에 대해 쓰고 있는 이 해 어느 계절에 그 순간이 닥쳐와서 씁쓸하면서도 놀라운 어감으로 그 순간을 기록할지도 모른다. 내가 3학년의 시기를 기록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딸이 아기에서 어린이, 어린이에서 다시 소녀로 성장하는 격변의 순간, 마치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나비로 변하듯 그 전 단계의 모습과 완전히 결별하는 그 순간을 알아차리고 싶다. 어느 계절,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날 그 불가사의한 변화의 순간을. 터지기까지 그 안에서 천천히 끓어오른 후, 느닷없이 터져버리는 화산 폭발과 같은 그 순간을.


변화의 속도가 다르다.

사십 대가 끝난 아빠는 천천히 쉰을 받아들이고 있다. 다른 삶의 방식을 고민하며 서서히 중년이 되어간다. 이런 나와 다르게 아이의 변화는 그렇게 급작스레 올 것이다. 내 변화의 속도가 느리기에 딸의 변화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놀랍도록 빠르게 느껴질 것이다. 그 과속을 목격해도 놀라지 않도록, 그 급격한 변화 후에 결국은 아빠와 조금 거리를 두게 되는 소녀가 되더라도 조금 덜 상처받게 하는, 이 글은 예언서이자 치료제 역할을 해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