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스와 양미리

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22

by 최영훈

너에게 줄 것들

전에도 말했듯이, 딸은 말문이 트이면서부터 서재의 책을 탐냈다. 제목도 못 읽으면서 아빠의 책이 언젠간 자기 것이 될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학교에 들어가서 탐정이 나오는 몇 편의 만화를 본 뒤 저 사진처럼 탐정 흉내를 내며 놀곤 했고, 이후엔 셜록 홈스까지 알게 됐다. 아빠한테 셜록 홈스 전집이 있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했다. 네가 원하면 언제든지 물려주겠다고 약속도 했다. 2학년 가을, 딸은 드디어 1권을 읽어보겠다고 나섰다. <주홍색 연구>.


셜록 홈스 전집은 아내가 연애할 때 사줬다. 내 기억이 맞으면, 어느 해 크리스마스 선물일 것이다. 십 대 시절, 코난 도일의 소설을 파편적으로 읽던 내게 이 전집만큼 좋은 선물은 없었다. 서지 정보를 보니 2002년에 발행됐다. 이 전집을 이십 년 가까이 새것처럼 보관했던 것은 언젠간 자식에게 물려주리라, 그래서 그 자식과 셜록 홈스 얘기를 하리라 꿈꿨기 때문이다.


책을 가져가면서 딸은 새것 같다고 했다. “언젠간 물려줄 거라 생각하고 고이 모셔놨지."하고 말해줬다. 내가 셜록에게 빠졌을 때보다 몇 년 일찍 그에게 빠지길 바라면서 책을 건넸다. 그렇게 몇 주 지났을까, 딸이 책을 반납했다. 한두 장정도 읽은 듯했다. 글씨는 작은 데다가 내용도 어렵고 그림까지 없으니 읽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딸은 쉽사리 포기하지 않고 책을 며칠 동안 품고 있었던 모양이다. 딸은 책을 돌려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뭔가를 포기했다는 사실에 분함을 느껴서인지, 아빠를 실망시켰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 눈물의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다. 어찌 됐든 분함이 느껴졌다. 어른이 될 때까지 서 너 번은 읽는 것이 셜로키언의 미덕이니 너무 서둘지 말라고 했다.


양미리가 다르게 기억되길

그 몇 주 지나서 집에 양미리 한 두름이 도착했다. 아내가 먹고 싶다고 봄부터 구시렁대며 겨울을 기다려 주문했다. 양미리 맛은 겨울이니. 그날 딸은 처음으로 양미리를 먹었다. 양미리는 내 어린 시절, 그러니까 파주와 의정부를 거쳐 살 던 시절에 연탄불에 구워 먹고 양은 냄비에 지져먹던 것이다. 그때는 먹을 생선이 없어서, 딱히 이렇다 할 군것질 거리가 없어서 먹었었다.


그런 양미리를 에어 프라이어에 구워 먹었다. 흔한 말로 세상 좋아졌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딸에게 "꼭꼭 씹어 먹어"라고 말하며 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이 양미리 맛만 대물림하고, 내가 겪은 가난은 대물림되지 않기를 바랐다. 아비가 양미리를 먹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제대로 없는 것과는 달리, 딸은 수많은 추억들로 가득하기를 바랐다. 이런 아비의 복잡한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딸은 맛있게 먹었다.


먹기 전 아내에게 굽기를 부탁하고 주당인 아빠의 맥주를 사러 딸과 편의점에 갈 때 딸이 물었다.

"아빠. 양미리는 어떤 맛이야?"

"부산에서 태어난 네가 먹어본 생선으로 순위를 매긴다면 거의 바닥이지.

의정부에 살던 엄마나 아빠에겐 추억의 생선이고."


딸은 빨간 고기로 생선에 입문했다. 부산과 울산, 마산, 거제까지 이 고기를 다 빨간 고기라 부른다. 공식 명칭을 찾아보니 눈볼대다. 흰 살 생선인데 구워 먹으면 감칠맛이 좋다. 나도 부산 와서 처갓집에서 처음 먹었다. 은채가 밥을 먹기 시작한 이후 외갓집에 놀러 갈 때마다 할머니는 은채의 손을 잡고 가까운 시장에 가서 이 빨간 고기를 사 오셨다. 은채는 이 빨간 고기만으로도 밥 한 공기를 먹었다. 이후엔 제사 때마다 올라오는 민어와 조기를 먹기 시작했고, 문어와 전복으로 확장됐다. 오징어와 동태는 초등학교 들어갈 때쯤에나 먹었을 것이다. 굳이 그런 걸 안 먹어도 고급 생선이 넘쳐났으니 말이다. 이런 딸에게 양미리는 어떤 맛으로 기억될까?


잘만 구우면 통째로 먹을 수 있고, 짠맛이 오래 남아 소주 좋아하는 가난한 술꾼의 생선이자, 무를 넣고 지져먹으면 밥 두 공기는 거뜬한, 가난한 집에선 귀하게 올리던 생선이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 했다. 그렇게 양미리를 먹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오늘 딸의 입맛에 남은 건 추억이 되겠지. 그러면서 내 가난의 기억은 어디론가 보내버렸으면. 어머니는 바람 든 무로도 맛있는 양미리 조림을 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