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25
2학년 겨울 방학이 끝나고 봄방학이 시작되기 전 격일로 대면 수업이 진행됐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편지를 받아 왔다. 사과데이에 받은 감사편지다. 사과 데이는 미안했던 친구에겐 사과를, 고마웠던 친구에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쓰는 날이다.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은채야, 내가 2-2반에 올 때 반의 규칙을 잘 설명해줘서 고마워. 그때부터 내가 너의 도움을 많이 받았잖아. 나도 네가 도움이 필요하면 나도 도와줄게.”
몸이 안 좋아서 1학기를 통째로 날린 태용이라는 친구가 더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을학기에 출석을 했는데, 딸이 그 친구의 학교 생활을 좀 도와줬던 모양이다. 그 소년이 그때 고마웠던 마음을 이렇게 조리 있게 쓴 것이다. 내용에 군더더기가 없고 문법도 깔끔하다. 고마운 마음, 답례를 약속하는 마음도 잘 표현됐다. 심지어 글씨도 잘 썼다. 나나 아내나 그 친구 엄마가 써준 줄 알았더니 수업시간에 썼다고 한다. "태용이, 아버지 뭐하시노?" 농담처럼 말한 뒤, 진지하게 부모님 뭐하시냐고 물어보라고 했다.
예전엔 가정 조사가 철저(?)했다. 일단 집부터 시작했다. 전세, 월세, 자가를 포함해 어디 아파트 사는지도 물었다. 예전엔 아파트가 흔치 않았으니 아파트에 산다는 거 자체가 계층의 절대적 구분점 역할을 해줬기에 다들 아파트 사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지금은 믿기지 않겠지만 집에 무슨 가전제품이 있는지도 물었다. 지면에 적어 내거나 항목에 동그라미를 쳐서 내는 건 그나마 나았다.
“냉장고 있는 사람, 손들어.”
선생님이 교탁에 서서 물으면 있는 애들은 손을 들었다. 이 무슨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올법한 시추에이션이냐 싶겠지만 실제로 그랬다. 부모님의 학력도 꼭 물었다. 초등학교 중퇴부터 시작해서 대학원쯤에서 끝나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특이한 게 꼭 중퇴 여부도 물었다. 졸업 여부와 함께 말이다. 왜 그랬는지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당연히 소득 수준도 빼놓지 않고 묻는 항목이었다.
저 질문 중 맘 편히 대답한 건 거의 없다. 그나마 아버지와 어머니가 당시엔 흔치 않던 전공인 미술과 무용 전공으로 대학 문턱을 넘어 봤다는 것이 유일하게 내세울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두 분 다 다니다 말았고 전공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기에 두 분 다 자신의 대학 시절에 대해 자세히 말하시지 않았다. 그래서 나 또한 어디 가서 부모의 학력을 자랑한 적도 없고,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기재한 적도 없다.
알다시피 요즘엔 부모의 정보는 블라인드다. 어린이집에서부터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지 않는다. 물론 상담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직업이나 직장 얘기가 나오지만 더 깊이 알려고 캐묻지는 않는다. 최소한 아이가 다녔던 어린이집에선 그랬다. 그러나 다섯 살 때부터 학교 입학 전까지 3년을 내리 다녔고, 그중 2년은 한 선생님의 반에서 같은 아이들과 공부하다 보니 각 가정에 대해 얼추 알게 됐다.
또 어린이집의 특성상 집도 근처이다 보니 누구는 식당을 하고, 누구는 편의점을 하는 등의 정보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지들끼리 얘기하다 보면 “우리 아빠, 경찰이야.”, “우리 아빠는 부두에서 일하셔.”와 같은 정보들이 반복해서 노출되다 보니 각 가정의 부모들도 원하든 원치 않던지 간에 서로에 대해 알게 됐다. 더 나아가 부모와 함께하는 어린이집 행사에서 아이들을 앞세워 서로 인사를 하고 안면을 트다보니 더 깊이 알게 됐다. 그런 식으로 세민이네는 족발 집을 하고, 정화네 아빠는 건축가이며, 지우네는 삼대가 경찰 집안인 것도 알게 됐다.
그러나 초등학교는 블라인드 상태가 오래간다. 학부모 면담 때까지 선생님은 아이의 부모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내가 아는 한 그렇다. 또 1, 2학년 아이들이 친구 부모님의 직업과 학력을 캐물을 리가 없으니 당연히 친구들 부모님에 대해서도 서로 간 블라인드 상태가 된다. 그러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한 두 친구와 계속 엮이다 보면 자연스레 그 친구의 집안에 대해서 알게 된다. 또 선생님 같은 경우엔 학생이 어떤 분야나 과목에 특출한 재능을 보이면 궁금증을 못 이겨 무심결에 묻게 된다. “부모님, 뭐하셔?”
은채도 매 학년 선생님한테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학기 상담 때마다 엄마와 상담을 하게 되니 자연스레 엄마의 직장과 직업은 알게 되지만, 아빠는 계속 베일에 싸인 미스터리 한 존재로 남게 된다. 물론 이런저런 단서로 아버지에 대해 추론할 수는 있다. 예를 들어 요즘 아침 등굣길에 종종 만나게 되는 은채네 반 담임 선생님이라면 당연히 아빠가 딸을 학교까지 데려다준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것도 도보로. 그렇다면 대충 이 근처 사는 사람인 건 알겠는데 옷차림을 봐서는 바로 출근할 행색이 아니다. 오후에도 데리러 오는 걸 봐서는... 아빠가 백수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다른 애들보다 좀 더 책과 글 쓰기를 좋아하는 걸 지켜보던 선생님은 결국 궁금증에 못 이겨 "아버지 뭐하셔?"하고 물으시곤 한다. 그때마다 은채는 “아빠는 카피라이터예요. 칼럼도 쓰시고 그래요.”라고 답한다고. 그러면 선생님은 “아~”하고 납득하신다고 한다. 뭐에 대해 납득하시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일단.
일전에도 얘기했듯이 자식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 이상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 특이한 직업을 가졌다면 그 직업의 길을 가게 한 타고난 재주와 천성도 일부 물려받는다. 요즘 선생님들은 다양한 교과 활동과 아이들의 학습 태도, 좋아하는 과목 등으로 아이의 부모와 가정, 집안 분위기를 가늠하시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이 절대적이진 않아서 판단이 조심스러우실 테지만 말이다.
그래서 오히려 과거보다 지금이 더 가정교육이나 집안 분위기 조성이 더 중요한 시대다. 과거에는 객관적이고 통계적인 정보로 아이를 단편적으로 평가해 버리고 끝냈던 시대였다면 지금은 선생님과의 상호작용, 교실 내에서 다른 급우들과의 지속적인 상호작용과 그 과정의 관찰과 탐색으로 그 아이의 인성과 가정을 판단하니 말이다.
우리가 아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 만큼 선생님도 분명히 아이가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실 것이다. 그 궁금증에 못 이겨,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버지 뭐하시니?” 하고 선생님이 물으셨다고 애가 집에 와서 말했다면 그 질문을 유발한 사태의 성격은 둘 중 하나다. 아이가 뭔가에 탁월하고 칭찬받을 만하거나, 아니면 도대체 집에서 애를 어떻게 키웠는지 의문이 들만큼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거나. 후자라면, 밖에서 새는 애가 집에서도 새는지 궁금한 것일 테다.
난 이 질문에, 그러니까 "부모님 뭐하시니?" 묻는 질문에 제대로 답한 적이 없다. 아버지는 무예가였지만 내가 학교 다니는 동안엔 도장을 차리지도 않았고 무예가로 활동하지도 않았다. 내가 아는 한 그렇다. 그 사이, 초등학교 3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사이에 그가 무슨 직업을 가졌는지 알지 못했고, 여전히 미스터리다. 알지 못했기에 당연히 답 할 수 없었다. 어머니 또한 이런저런 일을 하셨지만 저 질문에 답을 해야만 했던 시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부모의 직업에 대해 제대로 답을 할 수 없었던 시절엔 가난했고, 그나마 답을 할만한 상황이 됐을 무렵엔 아버지와의 인연이 끝났다.
부모를 존경하는 건 당연하지 않다. 종종 방송이나 지면에 자신의 부모님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사람이 등장하곤 하는데, 그들이 그렇게 등장할 수 있는 건 그만큼 그것이 예외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설령 지금 당신이 부모를 존경하지 않더라도 딱히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인간이 인간을 존경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나 또한 딸에게 존경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마흔이 넘어 어머니의 인생에 대해 생각한 후 가지게 된 감정들을 딸도 언젠간 갖게 되길 바랄 뿐이다. 결코 잘 풀린 인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포기하지 않고 꼼지락 거리며 살았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좀 더 나이가 들면 그 알아챔이 연민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자신의 인생조차 제대로 수습하며 살기에도 버거울 정도로 서툴고 이기적인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아비의 역할을 감당하려고 나름 애를 쓰며 살았던 한 남자, 한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더 나아가, 욕심을 더 부리자면 자신의 학창 시절에 “아버지 뭐하시니?”하는 질문을 받으면 답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있었던 그럭저럭 쓸모 있었던 인간으로 기억해주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영화 <친정엄마>의 마지막 대사를 빌려와 말하자면.. 아빠가 세상에 와서 제일로 잘한 것이 너를 엄마와 함께 낳아 키운 것임을 알아주길... 그리고 다음 세상에서도 꼭 내 딸로 태어나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