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 가장 무서운 재능

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26.

by 최영훈

어느 일요일 저녁나절, 셋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을 때, 엄마가 딸에게 말했다.

"뭘 쓸지 생각 정리하고 좀 있다 일기 써."

"응. 근데, 아빠도 생각 정리하고 글 써?"

"뭐 한몇 년 전에는 그랬지. 그런데 요즘엔 생각 정리하다가 뭘 생각했는지 까먹어서 일단 생각난 거 단숨에 쓰고, 그 글을 오랫동안 정리하지."


꾸준함의 가치

주말엔 되도록 놀게 하고 쉬게 하지만 일요일 저녁이 되면 다음날 학교 갈 준비를 하게 한다. 일기 쓸 게 있으면 쓰고, 독서록 쓸 게 있으면 쓰라고 한다. 가방도 미리 챙겨 놓고. 말 안 해도 잘 하지만 이 날따라 은채는 쉽사리 안 움직였고, 결국 엄마가 가볍게 옆구리를 쿡 한번 찌르듯이 한마디 하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며칠 후엔 수학 학습지가 밀렸다. 참고서도 미리 사서, 스케줄을 짜서 공부하는 은채에게 수학 학습지가 밀린다는 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몰아서 하는 건 더 싫으니 스트레스도 엄청 받는다. 그렇게 스트레스 가득 찬 얼굴을 한 채 엄청난 분량의 수학 숙제를 앞에 두고 있는 딸과 이런 대화를 했다.


"은채야, 넌 똑똑하잖아. 얼굴도 예쁘고 키도 크고. 그런데 똑똑한 사람보다 더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 누군지 알아?"

"열심히 하는 사람."

"그렇지. 그런데 아빠는 지금 열심히 뭔가를 하는 사람보다 성실한 사람이 더 그렇더라. 성실이 뭔지 알아?"

"몰라."

"매일매일 정해진 것을 꾸준히 해나가는 걸 성실이라고 해.

은채는 혼자서 공부 잘하잖아. 그 혼자서 잘하는 걸 오늘만 잘하고 내일은 안 하고, 다음날 또 하고 이렇게 드문드문 잘하는 게 아니라 조금 양을 줄이더라도 매일매일 꾸준히 하는 게 더 중요한 거 같아.

그게 되면 은채, 네가 지금 생각하는 거보다 십 년이나 십오 년 후에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 돼 있을 거야.

아빠는 열심히 글을 쓰고 책을 읽은 지 몇 년 안 됐어. 그러니까, 성실하게 된 지 말이야.

네가 지금부터 성실하면 훨씬 잘되겠지? 그렇다고 너무 열심히, 막 아등바등하지는 말고.

대신 요만큼 매일 하기로 했으면 매일 요만큼을 반복하는 게 중요해. 알았어?

운동도 그래. 농구도, 축구도... 공부도 수학도 사회도...

이런 미루는, 사소한 실수 때문에 은채가 게으른 사람이라고 오해받으면 좀 그렇잖아."


결국 본인이 선생님과 통화를 해서 오시는 날을 하루 미뤘다. 그러나 이 날 다 하기로 스스로 약속을 했으니 학습지는 오늘 다 하라고 했다. 앞으론 학습지 위에 날짜와 시간이 있으니 매일 하고 날짜를 쓰라고 했다.


최선을 다하진 않았다.

카피라이터에겐 이름이 없다. 광고 글은 주인 없는 글이다. 주인 없는 밭에 성실함이 부재하듯 주인 없는 글을 쓰는 동안 적당히 썼다. 안 나오는 카피 한 줄 때문에 밤을 지센 적도 없고 위장이 탈 나도록 커피를 마신 적도 없다. AE들이 광고주한테 언제까지 카피를 가져가야 한다고 하면 그날까지 카피를 써 줬다. 카피의 질보다 그 약속이 일단 중요했다. 또 어차피 사수 없는 시작이었기에 이 카피가 좋은 지 어떤지 봐줄 사람도 없었다. 선배 AE들이 좋다고 하면 좋은가보다 하고 계속 썼다.


그러다 시안이 통과됐다고 하면 안도하고 다시 다른 AE와 광고주를 위한 카피를 썼다. 부산 본사에만 AE가 열 명이 넘고 마산과 대구에도 지사가 있었기에 카피 주문이 몰릴 때도 있었다. 이럴 땐 한글 창을 여러 개 띄워놓고 동시에 여러 개를 쓰기도 했다. 20초에 다 읽을 수 있도록 글자 수를 맞추고, 심의기준에 신경 쓰면서, 광고주가 돈을 잘 벌어야 광고 대행 기간도 늘어나고 그만큼 수수료도 늘어나니 어떻게든지 광고주 사업에 도움이 되는 카피를 쓰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며 썼다.


라디오 카피 시안이 필요하다고 하면 최소한 두 개 이상을 썼고 지역 내에서 누구나 아는 기업이라면 다섯 개, 여섯 개도 써서 줬다. 그러나 이 모든 카피에 전력을 쏟아부었거나 온 마음을 다하지는 않았다. 나를 포함해 회사와 동료들, 광고주와 그 밑에 딸린 직원들, 그 모두가 굶어 죽지 않을 만큼, 딱 그 정도의 에너지만 카피에 집어넣었다.


연고 없는 부산에서 후배 AE의 강력 추천으로 부산의 한 대학에서 시작한 대학 강사 생활도 그랬다. 카피라이팅 수업 16주 커리큘럼을 내 마음대로 짰다. 설득 커뮤니케이션이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같은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수업을 맡았을 땐 일단 대형서점에 갔다. 거기서 16주 강의에 맞게 목차 배열이 된 대학 교재들을 몇 개 골라 그중 맘에 드는 것의 목차를 따라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2007년부터는 모교에서도 강의했다. 그렇게 몇 학기 지나고 붙은 별명이 “완판남”이었다. 수강신청이 열리자마자 마감된다고 해서 학생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나중에 교수와 강사들이 모인 회식자리에서 은사님이 그러셨다. “영훈이 넌 수강 신청 같은 거 걱정도 안 하지? 인기 있는 거 너도 알고 있지.” 은사님 앞이라 “아이. 아닙니다.”하고 손사래를 쳤지만, 당연히 알고 있었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첫 주 강의 때마다 수강 신청을 더 받아달라는 학생들로 강의실과 복도가 넘쳐났고 분반을 더 만들지 말지를 조교와 심각하게 고민하곤 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카피라이터로, 대학 강사로 가장 바쁘게 살던 이 시기, 전력을 다하며 애를 썼던가? 30대의 십 년을 그렇게 보냈던가? 그 시간을 사는 동안엔 당연히 이런 질문을 할 여유도 없었고, 그럴만한 철도 들지 않았다. 최근에서야 이런 질문을 하게 됐고, 담담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아마, 어쩌면 그때도 어렴풋이 그걸 느끼고 있었기에 강의나 카피에 대한 칭찬을 받을 때마다 겸연쩍어했던 건 아닐까?


앞에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어머닌 무용과를 다니셨다. 그러나 졸업을 못하셔서 그런지 대학도, 전공 이야기도 거의 하질 않으셨다. 그저 어머닌 "야, 그때 무용과는 그냥 소 한 마리 팔아서 돈만 가져갔으면 들어갔어."라고 말하시곤 했다. 어디 대학이냐 물어보면 "야 그냥 정문 몇 번 들어갔다 나왔다 한 게 다인데 무슨 대학까지 알려고 하냐." 하셨다. 아마 요즘엔 발이 문드러질 정도로 연습을 해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무용과라는 걸 아시기 때문에 더 그 시절 말을 삼가셨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삼십 대 때 갖고 있었던 그 겸연쩍은 감정이 어쩌면 어머니가 갖고 있었던 그 민망한 감정과 비슷한 감정이지 않을까?


뒤늦은 성실함

성실함을 받아들인 건 딸 때문이다. 딸을 낳고 키우면서, 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이에게 남겨 줄 것이 없는 아빠인 것을 불현듯 깨달은 뒤다. 그래서 아빠 이름으로 나온 책을 보여주고 싶었다. 딸의 이야기, 그러니까 자기 자신의 1학년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성실함과 꾸준함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매일 조금씩 성실히 딸의 1학년 생활을 기록했다. 1학년 겨울에 수십 곳의 출판사에 출판 기획서와 원고 일부, 그리고 출판을 바라는 마음을 담은 메일을 보냈다. 가장 처음 메일을 보낸 출판사로부터 계약을 하자는 연락이 왔다.


출판을 기다리다 코로나19가 터졌고 마침 그 출판사의 경영진도 바뀌었다. 새로운 경영진은 자신들이 오기 전에 계약했던 원고를 폐기하라고 명령했고 이에 항의하던-부산까지 내려와 나와 계약했던 두 편집자 중 한 명-부장은 사표를 던졌다. 그 몇 달 후, 그래도 원고를 건져보려 했던 다른 편집자도 내게 사과의 메일을 보낸 뒤 사표를 던지고 나갔다. 결국 계약은 파기됐고 다시 여러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지만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 아쉬움이 남아 시작한 것이 브런치다.


그 사이, 그러니까 저 원고를 보내고 기다리고 하는 사이 칼럼을 쓰게 됐고, 그렇게 카피라이터와는 다른 성격의 쓰는 삶을 살게 됐다. 그 삶을 더 잘 살고 싶어 매일 적당량의 책을 읽고, 한 두 페이지라도 쓰고 메모했다. 2019년부터 감독의 운이 트여 우리 팀의 일도 엄청나게 많아져서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졌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다. 아마 다른 사람이 보면 태연자약하다 할지도 모르겠다.



만화 슬램덩크에서 무서운 선수 중 하나가 해남의 홍익현이다. 재능도, 신체적 능력이 없어도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걸, 슛은 연습으로 가능하다는 걸, 그걸 보여준 선수다. 솔직히 딸은 타고난 것만으로도, 큰 사고만 안 치면, 별 탈 없이 무난히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으로 적당히 해도 그럭저럭 살아지게 돼서, 노력하고 성실했으면 만났을 다른 수준의 자신을 만나지 못하게 될까 걱정이 됐다.


성실하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를 혐오하는 순간이 오기 전에 어떤 재주나 기술은 애를 써서 무수히 반복해 익혀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으며, 그 후에도 꾸준히 갈고닦아야 계속 발전시키고 나아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래서 농구와 축구도 가르치고 두꺼운 책도 가끔 읽히는 것이다. 또 매일매일 조금씩 반복해서 하는 루틴의 중요함도 가르치는 것이고. 그 어떤 재능보다 성실함과 꾸준함이 무서운 재능임을 알게 해 주기 위해.


*사진은 울산 북구 강동 오토캠핑장 앞 해변이다.

*AE(Account Executive)는 광고대행사의 직군으로 주로 영업, 광고주 관리 등을 맡으며 그 능력에 따라 기획의 첫 단추를 꿰어주는 역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