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32 .
"오늘 또 그거 입었어?"
"응, 왜? 이상해 아빠?"
"아냐. 요즘 은채가 하는 짓 중에 맘에 드는 짓 중 하나가 이거야."
"뭐?"
"옷 고르고 입는데 시간 낭비 안 하는 거.
그냥 좋아하는 후드 티에 편한 바지 슥~. 아빠가 몇 번 말했지?
너 같이 예쁘고 키 큰 애는 옷 잘 입고 꾸밀 필요 없다고."
"응. 화장도 안 해도 되고."
"맞아. 그리고 또...학교는 뭐하는데다?"
"공부하는 곳."
"응 그러니까 공부하기 편한 옷 입고 가면 돼.
나중에 아빠 옷장 열어봐. 똑같은 옷 수두룩해."
"진짜?"
"응. 폴라 티만 한 열개 넘을 걸? 똑같은 자켓도 세 개고.
뭘 입을지 고민하는 거 자체가 피곤해.
차라리 네 가방처럼 가방을 요란한 거 들고 다녀.
옷은 맨 날 갈아입지만 가방은 일 년 내내 들고 다니잖아.
자기 개성을 표현하는 데는 차라리 화려한 가방이 나아."
"목련이 좀 있으면 피겠다."
"그러네. 아빠. 오동통 해졌어."
"그러게. 목련이 피고나면 좀 있다 벚꽃 피고...
야..저 매화(유엔묘지 후문)가 우리 동네에서 제일 예쁘다."
"와 진짜네. 나무줄기도 그림 같이 뻗었어."
"그러게 말이다. 꽃이 다 피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다."
"아빠 그 치즈 꽃은 언제 피지?"
"응? 아...그 스노잉 치즈 ..이팝나무? 박물관 앞에?"
"응."
"보자...이제 좀 더워지려나 할 때쯤? 오뉴월쯤?
그러다 일기예보에서 장마철 어쩌고저쩌고 할 때쯤 아빠가 좋아하는 능소화가 피고
그 능소화가 장맛비에 떨어지기 시작하면 가을 오는 거고, 가을오면 뭐 코스모스 피고"
"아빠, 해바라기는?"
"여름이지. 여름에는 무궁화도 피고 작약도 피고 박물관 정원에 배롱나무 꽃도 피고."
"아...가을에 또 뭐가 피지?"
"보자..국화도 피지."
"아..국화축제!!"
"응..."
"꽃 얘기하다보니 학교 다 왔네. 아빠 이제 가방 줘."
초삼이의 등교 첫날...
딸은 미국 할머니가 보내주신 여러 벌의 후드 티 중 하나와 좋아하는 검은색 조거 팬츠를 골라 입었다. 점퍼는 미국의 사촌언니가 입던 카키색 야상. 몸에 착 붙는지 혹한이 아니면 교복처럼 입는다.
등굣길 내내, 꽃 이야기를 했다.
기온은 영하를 겨우 면했고 하늘은 폭우의 뒤끝인데 목련의 겨울눈은 오늘 터져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부풀었다. 그 겨울눈으로부터 시작 된 꽃 이야기가 매화를 거쳐 가을꽃에 다다랐다. 옷차림으로, 쇼 윈도우를 보고 계절의 변화를 알지 않고 꽃이 피는 시간으로 계절의 변화를 가늠하고 달력을 그려 나갈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크길.